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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저자
유디트 헤르만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1-05-0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잉에보르크 바흐만,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뒤를 잇는 독일 문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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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의 킬리언 사진


유디트 헤르만. 작년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책의 날 행사가 열리던 행사장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리뉴얼판 전집을 살까해서 들렀던 민음사 부스에서 이 책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 모던한 표지 디자인은 도드라졌다. 몇 번이나 다른 곳을 돌아보다 다시 민음사 부스를 지날 때에도 <알리스>는 눈에 띄었다. 결국, <알리스>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왕국>과 함께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내 독서 습성상 그러고도 <알리스>는 몇 달째 읽히지 않고 책장 한 구석에 자리했다. 그러다가 작년 겨울 운정으로 이사하고부터는 먼저 읽어야 할 책들 리스트에 들어 거실 바닥 한 켠에 쌓여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역시 다른 책의 순위에 밀려 읽혀지지 않았다. 


올 봄, 아픈 일을 당하고서야 알리스는 드디어 소파 위에 올려지게 되었다. 표지 속에 눈을 감고 이 세상이 아닌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은 여인이 그를 닮아서 였을까. 그리고 초여름. <알리스>를 '러시안 레드'의 음악과 함께 읽기 시작했다.


미햐, 콘라트, 리하르트, 말테, 라이몬트.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각 장의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죽어가는 남자들의 이름이다. 주인공인 여인 알리스는 자기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남자들의 죽음을 통해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뒤란을 확인해 간다. 데뷔작 <여름 별장, 그 후>로 가볍고 감각적인 문체로 독일문단을 사로잡았다는 유디트 헤르만은 이 책에서는 시종 담담하고 관조적인 어조로 삶을 들여다본다. 그런 작가의 목소리는 어쩐지 이 책을 읽던 시절의 내 감성과 닮아 있었다.


이별과 죽음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유사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어차피 살아 생전 다시 만나지 못할 이별이라면 그것은 죽음과 같지 않을까. 크게 동요하지 않고 주변인들의 죽음을 감내하던 알리스가 현재의 연인 라이몬트의 죽음 앞에서는 크게 동요한다. 거리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그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와 함께 지내던 공간에서 마치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낀다. 곁에 존재하는 것처럼 감각이 작동한다.


킬리언 사진이라는 것이 있다. 정론은 아니지만 모든 존재의 입자들은 자기장처럼 '형태 형성장'이라고 하는 것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즉, 모든 물질의 입자 하나하나는 자기가 조직한 형태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있으며, 입자들은 형태가 사라진 후에도 그 자리를 동일하게 지키려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갑자기 꼬리가 절단된 도마뱀은 자신의 꼬리가 있던 부분에 대한 형태 형성장을 유지하고 있어 손쉽게 예전의 꼬리와 동일한 꼬리를 만들어낸다. 심지어 꼬리가 없는 순간에도 도마뱀의 의식 속에서는 꼬리가 여전히 있는 것처럼 감각한다는 것이다. 킬리언 사진은 그런 형태 형성장을 찍는 사진이다. 킬리언 사진을 통해서 보면 방금 손가락이 잘려 나간 사람의 손가락 자리에 알 수 없는 회색 입자들이 모여 손가락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쟁 기록을 보면 갑자기 미사일에 맞거나 칼에 잘려 신체의 일부가 훼손된 사람들이 얼마간은 자신의 신체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리스>는 우리의 신체가 아닌 우리의 마음에 대고 킬리언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 한 사람에 대해 우리의 마음 속에 형성되었던 형태 형성장에 대해서. 그 존재가 사라지고 나서도 마음의 존재는 일정 시간 사라지지 않고, 그가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하며, 기뻐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한다. 


팔이 하나 잘려 나갔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팔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강변하며 사는 삶이란 그에게 지난한 고통을 선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랑할 사람이 사라졌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사는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알리스>를 읽으며 내가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유디트 헤르만도 어쩌면 이 작품을 쓰면서 자신이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이름들을 하나씩 떠나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가능하겠는가. 소설 속에서 알리스의 삼촌 말테를 사랑했던 프리드리히는 말테가 죽은 지 수 십년이 지났어도 그의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알리스의 친구 마르가레테의 연인 리하르트는 죽으면서 마르가레테에게 자신을 잊는 데 3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 마음의 자연이 자연스레 마음의 형태형성장을 만들고, 그것을 지우는데 고통을 선사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연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좀 더 빨리 지우려고, 혹은 지워지지 않도록 간직하려고 애쓰는 인위가 더 큰 고통을 만들어 낼 것이다. 마음의 자연이 부여하는 고통만큼 물리치지 말고 받아들여 가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의 방법인 것만 같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반드시 잊어야만 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간을 눈돌리지 말고 담담하게 지켜보아야할 의무가 있을 뿐. 설령 그것이 지난한 고통일지라도.



2012. 7. 1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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