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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5집 - 가장 보통의 존재 - 10점
언니네 이발관 노래/루오바뮤직(Luova Music)

   어떤 음반의 경우, 그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비틀즈의 <러버소울>, 메르세데스 소사의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 카펜터즈의 <클로즈 투 유>, 레논의 <이메진> 등이 내게는 그런 음반이다. 국내에서는 양희은의 <1991,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30주년, 그대가 있음에>, 이상은의 <아시안 프리스크립션>, <소울메이트>, <외롭고 웃긴 가게>, 한대수의 <멸방의 밤>, 전람회의 <이방인> 등이 그런 음반이다.  

   "20세기에 살던 때에는 훨씬 더 좋은 음악들이 마음을 흔들었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 들어서는 20세기의 음악을 넘어서는 음악을 들어본 적이 많지 않았다. " 

  이런 식의 '20세기 음악 예찬론'을 퍼뜨리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2008년 겨울 군 훈련소에서 바로 이 음반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듣기 이전의 시절 말이다. '명반'이라는 말은 비틀즈나 밥딜런, 마돈나, 한대수, 신중현, 들국화, 산울림... 이런 거장들의 음반에나 어울릴 헌사라고 여겨왔다. 그들 이후의 음악은 그저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21세기의 음악시장 구조에서는 절대로 단언코 명반은 출현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놓고 있었다. 대못이었다. 

   그저 듣기 좋은 모던 록을 하는 밴드 정도로 여겨왔던 언니네 이발관이 그 대못을 뿌리째 뽑아버릴 줄은 몰랐다.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 아트를 닮은 <가장 보통의 존재>는 1번 트랙부터 10번까지 전체가 한 사람의 이야기로 서로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앨범 하나가 통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30여분 분량의 교향곡인 셈이다. 

   사변적이지 않으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사색을 담은 가사, 그 메시지를 100% 구현해내고 있는 담백한 멜로디. 거짓말을 보태지 않고 한국 밴드에게서 이런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난. 내 음악감상의 범주가 좁아서 해외에도 이런 음악이 없는가 하는 점은 알지 못한다. 허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이 한 장의 음반만을 한정해서 말한다면 말이다. 

   이석원 씨가 만든 이 음악의 뿌리가 영국 록이든, 한국 가요이든, 아일랜드의 구전 민요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을 떠나서 이 음반에 담긴 음악들은 그 자체로 순수하게 완벽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더할 부분도 없고 뺄 부분도 없는 완벽한 균형. 트랙과 트랙 사이의 긴장감. 절묘한 플레이 타임의 분배. 사람의 감정을 쥐었다 폈다, 홀렸다 깼다 하는 트랙의 흐름이 참으로 아름답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트랙들 사이에서 1번 '가장 보통의 존재', 3번 '아름다운 것', 7번 '100년 동안의 진심', 9번 '나는', 10번 '산들산들'은 특히 빛나는 명곡들이다. 특히 7번 100년 동안의 진심에서 단순한 멜로디가 들려주는 절절한 마음과 음의 깊이는 놀랍다. 진심으로 100년 동안 들어도 좋을 명곡이다. 음반을 씨디 플레이기에 넣으면 가장 먼저 흘러나오는 '가장 보통의 존재'는 이 음반의 정서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는 곡이면서 동시에 언니네 이발관이 다다른 음악의 경지를 자신감 있게 보여주는 곡이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인다는 노래가 유행했던 20세기를 지나, MP3와 물질에 물든 사람의 마음이 음악을 죽이는 21세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도 <가장 보통의 존재>는 태어났다. 경이롭고 고마운 일이다.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누군가가 심어 놓은 한 그루 사과나무는 피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누군가는 노래를 부를 것이다. 질기고 푸른 희망의 노래를. 아직 음악은 죽지 않았다. 음악을 듣는 우리의 마음이 죽어가고 있을 뿐. 가장 보통의 존재는 가장 보통의 노래로 그런 우리에게라도 손을 내밀어 준다. 일으켜 세운다.

  살아있는 한 좋은 음악을 가장 정당한 방법으로 들을 것이다. 나를 살려주고 일으켜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30원을 지불하고 있는 것은 쓸쓸한 풍경이다. 씨디를 플레이어에 걸고 재생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씨디가 돈다. 그 원으로부터 바람이 공기를 흔든다.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온다.   
 


2012. 2. 1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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