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 6점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김영하는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작가이기도 하다. 지금의 김영하가 있게 만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었을 고교생 시절에는 한국에도 유럽 본토에 대적할만한 신인이 나왔다! 고 감격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읽은 <호출>이나 <아랑은 왜>의 경우 그만한 감흥을 받지 못했다. 그 뒤로는 다소 게으르게 그의 작품들을 읽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한 해 동안 국내의 굵직한 상들을 두루 수상하던 시기에 발표해 화제를 모았던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 그가 오랜만에 출간한 단편집이다. 읽기 쉬운 것부터 읽어가는 내 독서 방식 대로 짧은 꽁트들부터 읽었다. 정말 재미가 없었다. 부산에서는 흔히 없는 맛없는 음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니맛 내맛도 없다.

이 단편집 속에 수록된 꽁트들은 딱 그맛이었다. 굳이 읽을 필요가 있었을까가 먼저 떠올랐고, 그 다음에는 굳이 쓸 필요가 있었을까가 떠올랐다. 혹시 꽁트만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 '로봇', '여행'을 순서대로 착실하게 읽었지만 입맛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래 책을 덮어두었다. 책을 산 것이 작년 가을 즈음이니 다시 읽기까지 4개월 정도가 걸린 셈이다.

그의 단편을 다시 읽게 된 계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레이먼드 카버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이상문학상 때문이다. 이해하기 쉬운 것부터 말하도록 하자.

2011년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김영하가 선정되었다. 그가 아직까지 그 상을 받지 않았었나 의아했지만 아무튼 문학사상사는 과감하게 표지까지 세련된 스타일로 바꾸면서 그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물론 수상작은 이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상을 주어도 괜찮은가 하는 의혹이 일었다. 혹은 그가 정말 상을 받을만한 작가라고 한다면 무언가 내가 잘못 읽어낸 것이 아닌가. 승부였다.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황순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신조로 삼고 있는 말이 있다.

"자기 속에 최상의 독자를 키우는 것이 작가가 해야 할 의무의 하나다."

김영하를 제대로 보는 안목을 기르지 못한 나는 작가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다시 책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빼들었다.

기 출간된 장편소설과 동일한 제목인 '퀴즈쇼'부터 읽어가기 시작했다. 재밌었다. 그 다음은 '조', 그리고 '아이스크림'이었다. 이런... 공교롭게도 내가 읽지 않은 세 편의 소설들이 무지하게 재밌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여행자> 시리즈를 통해 읽어서 다시 읽지 않은 '밀회'와 '마코토'도 꽤 재미난 소설이니 적어도 이 단편집에는 다섯 편의 수작이 실려 있는 셈이었다.

다소 밋밋한 꽁트들을 제외하고 일곱 편의 소설 중 다섯 편이 재미난 소설이었으니 최소 2루타 정도는 해낸 것이었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단편집을 발간했을 때 수록작 7편 중 5편 이상을 히트시킬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곰이었다.

김영하의 단편집을 읽게 된 또 하나의 이유.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에 흥미를 붙이고 있는 요즘의 나에게 국내작가 중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용 쓴 티가 나지 않는 단편을 읽고 싶었고 그렇다면 결국 김영하였다. 카버의 간단명료한 문체와 김영하의 문체는 조금 닮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카버가 조금 더 사람 냄새가 나고, 김영하는 조금 더 장난끼가 있다.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제목처럼 대체 이유도 결말도 알 수 없는 소설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말대로 청탁없이 내킬 때 쓴 소설이 대부분인지라 괜한 힘이 들어갔지 않다. 읽는 동안 피식피식 웃게 된다. 대단한 반전이나 심오한 깊이 같은 것은 없지만 - 물론 내가 못 찾았을 수도 있다. 혹시 그것을 찾은 사람이 있다면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신다면 감사하겠다. - 그냥 '음..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퀴즈쇼', '조', '아이스크림' 이 세 작품은 꼭 읽어보길 권한다.

어차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태반은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원인을 알 수도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누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012. 1. 29. 멀고느린구름.





Comments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