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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의 2부에 해당하는 <데미안을 떨어뜨린 날> 두 번째 버전 집필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주인공의 이름도 바뀌었고, 내용도 한 챕터를 제외하고는 전부 새롭게 쓰여졌다. 이제 하이라이트가 될 마지막 장, 9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큰 이야기 구조를 가진 장편소설의 특성상 어느 한 부분에 수정을 가하면 결국 이야기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좋은 일이다. 이야기와 인물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고를 쓰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들여다보면 예전에는 미처 들을 수 없었던, 인물들의 진심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라 이거였어요.
내가 이런 말을 한 걸로 써두셨던데... 사실 그 말이 아니라 이 말을 했어야 하지 않나요?
그 미세한 말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나도 알지 못했던 소설의 내부로 조금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쓰는 사람은 철저하게 읽는 사람인 동시에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소희'라는 제목으로 5년 전(벌써 5년이라니!)에 이 소설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나는 소설의 밖에 있는 사람이었다. 소설의 밖에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사람이었달까. 그러나 지금은 이미 지어진 그 집 안에 들어와서 배치된 가구와 벽지의 색을 살피고 있는 셈이다. 비슷한 이야기 구조의 소설들이 어떤 소설과 다른 소설로 읽힐 수 있는 까닭은 소설의 내부에 있다고 여긴다.
튼튼한 외부 구조에 특히 힘을 쓰는 소설가가 있고, 겉은 허름해 보여도 내부 인테리어에 공을 들이는 소설가가 있다. 나는 후자의 소설가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의 내부가 모쪼록 더 아름다워지길 바란다. <데미안을 떨어뜨린 날>이 마무리 되면 이 새로운 기둥을 중심으로 1부와 3부의 이야기들도 조정을 하게 될 것 같다. 가을에는 꼭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존재'하게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2020. 5. 1.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