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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에는 추억이 없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어느 새 1년이 흘렀다. 긴 인연과의 이별을 마주한 지도 1년이 되어 간다. 작년 여름 이후 두문불출하며 집 안에 머물렀다. 집과 직장을 기계적으로 반복해 오가며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발버둥쳤던 한 해 남짓의 시간은 거짓말처럼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무심코 달력의 한 장을 찢었는데 1년치가 뜯겨져버린 기분이다.
아주 가끔 빈 거리를 걸었다. 떠올릴만한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거리는 마치 재활을 위해 마련된 가상의 공간 같았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구름이 지나고, 바람이 불고, 비와 눈이 내리는 세트장에 홀로 갇힌 사람처럼 살았다.
오늘은 마을에서 가보지 않은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가보지 않은 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잎들은 어느 사이 무성해졌고, 바람은 청량했다. 거대한 구름들이 깨끗한 하늘 위를 무리지어 지났고, 석양은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멋졌다. 현관의 비밀번호는 그대로고, 내 인생도 1년 전과 대단한 차이 없이 그대로다. 이렇게 늘 그대로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끔 보는 친구들은 각자의 삶에 꽤 만족스러워 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그들도 저마다 말하지 못한 번민과 크고 작은 고난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뭐랄까 훨씬 더 그 나이대의 어른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
스무살 시절부터 노래방에 가면 마지막 즈음에 꼭 이적의 '모두 어디로 간 걸까'라는 노래를 목놓아 부르곤 했다.
"말해줘, 난 잘하고 있다고. 나 혼자만 외로운 건 아니라고."
의지할 가족 없이, 돌아갈 집조차 없이 홀로 십수 년의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늘 외로웠다. 친구도, 연인도 없이 철저히 혼자인 시절도 많았다. 그때마다 듣고 싶었다. 잘 살고 있다고. 너 정말 대견하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언제나 최후에는 그 말을 해줄 사람이 나 자신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러 사람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주며 살아온 내 자신을 책망하는 날이 반, 외로움에 휩싸인 채 절망하는 날이 반의 반이었다. 나머지 반의 반인 소설가의 꿈과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로 75%의 어둠을 돌파해왔다. 아직 내 인생에서 그 반의 반마저 무너진 적은 없었다. 이제 그 마저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걸 감지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나는 아직 잘 버티고 있다.
추억이 없는 거리여야만 비로소 새 추억이 생긴다. 본래 있던 추억 위에 새 추억을 억지로 덮으려고 하다보면 결국 옛 추억마저 그르치고 만다. 나는 너무 많은 새 길 위를 걸었다. 하지만 또 새로운 길 위에 서있다. 새해가 밝을 때만 해도 5개월이 지난 후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인생의 불확정성이 늘 나를 여행자로 만든다. 다음 여행지가 두렵고, 기대된다.
2020. 5. 4.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