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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연재했던 <데미안을 떨어뜨린 날>의 새로운 버전을 쓰고 있다.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를 썼는데, 이 이야기가 사실은 전에 썼던 이야기보다 더 오래된, 더 본래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이 연작소설의 책을 발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시간을 들여 다시 써야 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삶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나는 상당히 운명론자에 가까운 것 같다.
작년 12월에 초고를 완성한 <오리의 여행 2 - 기억해주세요, 나의 이름을>도 아직 발매를 못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도서 등록까지 마쳤으나, 출간 비용을 모으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2월에 필요한 자금이 모아졌는데,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사태가 터져서 모아둔 자금을 지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오여2'의 행방도 묘연해지고 있다.
예술인복지재단에 창작지원금을 신청해두었는데, 기적적으로 지원금이 나온다면 출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펀딩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고민을 했으나, 역시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고 책을 내는 게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번거롭기도 하고. 하지만 창작지원금이 무산된다면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에서 얘기가 오가고 있는 재난지원금 정도만 주어져도,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책을 낼 수 있을 텐데... 어느 쪽이든 빨리 결론이 나면 좋겠다. 가급적 <오리의 여행>은 4월 중에 발간할 수 있었으면 싶으다.
온종일 소설 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그러면 세상을 뒤집어 놓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고 글 못 쓰는 작가의 뻔한 변명을 나도 늘어놓으며 살아오고 있었다. 엉뚱한 방식이기는 해도 시간이 주어졌으나 호언장담한 만큼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로 고민해야할 일들이 많아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정말 안정적인 상황에서 빈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소설 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역시 아닐 것 같다. 어떤 상황이든, 얼마나 마음이 어지럽든, 결국 쓰는 것만이 길이다. 써내려가서 실체로 남겨진 문장들만이 나를 문필가로서 증거한다.
2020. 4. 8.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