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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수라 修羅 (2006. 4. 5.)

멀고느린구름 2014. 10. 20. 08:59

수라 修羅



엊그제 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던 밤이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없이 큰 거미 한 마리가 후두둑 발자국 소리를 내며 방 안으로 들어온다. 내가 수도 없이 화학병기로 살생한 대왕 바퀴만한 아이다. 차마 거미까지 죽일 수는 없어 까뮈의 책을 가지고 이리저리 휘저어 본다. 거미는 놀란 나머지 온 길로 달아나지는 못하고 점점 더 어둔 길을 따라 방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라 그냥 되어가는 대로 두자고 다시 정좌를 하고 까뮈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거미는 조금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조심스레 한 발짝을 내딛어 본다. 후둑. 거미는 제 발에서 얼마나 큰 소리가 나는지도 모르나 보다. 이쪽으로는 오지 말아줘. 라고 빌며 거미를 흘끔흘끔 치어다 본다. 거미는 내 눈길을 미처 못 보았는지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살펴 본다. 바닥에 놓여있던 비닐 봉지도 무심히 한 번 뒤집어 본다. 나는 그 하는 양이 무서우면서도 어여뻐 바라 본다. 그래도 이쪽으로 오지 말아줘 라고 부탁하며.


들었을리 없지. 그 조그만 거미가. 거미가 서서히 내 쪽으로 걸어온다. 다시 까뮈의 책을 들어 휘휘 저어 본다. 우는 아이를 달래듯 빈 바닥을 책으로 치며 탁탁 소리도 내어 본다.그제야 깜짝 놀란 거미가 제 왔던 길을 찾아 돌아 간다.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거미가 멈출 때마다 나는 무슨 심술인지 그 옆에 가서 으왁! 하고 소리를 지른다. 화들짝 놀란 거미는 다시 달린다. 노구의 거미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테다. 나는 미안함도 모르고 계속 소리를 지른다.


거미는 문틈 사이까지 도착한다. 저러다 틈에 끼이기라도 할까봐 걱정이다.


으왁!


지쳤는지 거미는 꿈쩍도 않는다. 내가 너무 소리를 질러 귀를 다친 건 아닐까.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거미는 몇 분이고 그 자리다. 나도 몇 분이고 거미를 바라 본다. 거미가 안전해질 때까지 아니 좀 더 진실하게는 내가 안전하여질 때까지는 아무 다른 일도 못한다. 거미는 저 문틈에서 삶을 끝내기로 마음 먹었는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두고 볼 수 없어진다.


빗자루를 들어 문틈에 앉은 거미를 콕 찔러본다. 거미는 꺄악! 비명이라도 지르듯 퍼뜩 일어나 문 밖으로 뛰어간다. 재빨리 방문을 닫아버린다. 거미가 방 문 뒤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를 치고 있지나 않을지... 마음이 애잔하다. 방문을 닫고 생각하니 적막한 내 방에 모처럼 찾아온 이방인을 내가 너무 홀대한 것은 아닌지하는 심정이 인다. 또 바퀴에 대해서는 그리 모질게 목숨을 빼앗으면서, 거미에 대하여서는 이리도 조심스러운 까닭은 또 무언가. 거미는 해충을 잡아주지만, 바퀴는 스스로가 해충이지 않은가 하는 짧은 생각이 들자, 인간이란 역시 자기 본위의 이기적 존재이지 않은가 하고 깨닫는다.


달리 수라(修羅)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와 이로움으로 얽힌 것들 외에게는 다정하지 못한 게

결국 다 수라가 아니런가.




2006. 4. 5.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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