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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머리로, 한 걸음 더 왼쪽으로

- 4.11 총선, 그리고 한국 사회의 진로에 대하여


1. 국회의원을 뽑는 기준은 '정책'과 '정당'


  3일 뒤면 총선이 실시된다. 20년만이라는 총선과 대선이 맞물린 2012년이다. 이 두 큰 정치 이벤트로 우리 사회는 크게 요동칠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는 일정 수준 지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을 뽑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지역일꾼'을 뽑는다는 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지역일꾼'이라는 미사여구는 과거 양김 정치 시대에나 어울리는 표현이다. 지역감정에 호소하고,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하기 위한 차양막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은 지역 예산을 잘 타오기 위한 지역 반장을 뽑는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을 뽑는다는 일은 나라에 어떠한 성격의 법을 입법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며, 정책 결정에 있어서 어떤 방향의 정책을 견제하고, 또는 추진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다. 따라서 은평을의 새누리당 이재오가 14년 동안 재미를 보아온 '지역일꾼론'도 최근 안철수 교수가 말한 '인물론'도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데 적절한 잣대가 될 수 없다.


  국회의원을 뽑는 잣대는 명백하게 '정책비전'이 되어야 하며, 그 정책 비전은 반드시 그가 소속한 '정당'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어야 한다. 정책과 정당을 살펴서 선출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 정당 투표도 병행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정책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어떤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 결정하기 앞서 우리는 각자의 마음 속에 어떤 나라를 꿈꾸고 있는가 물어야 할 것이다.



2. 저무는 아메리칸 드림, 세계는 유러피언 드림의 시대로


대한민국 사회가 지금껏 꿈꿔온 사회는 한 마디로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는 사회였다. 여기서 아메리칸 드림이란, 개인이 기회의 균등이라는 자유주의 정신에 입각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숱한 경쟁을 통해 실력을 쌓아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그 성공의 꿀맛을 맛보는 인생의 모델이다.


이는 아메리칸 대륙을 식민지로 점령한 영국인들이 미국이라는 신생국가를 탄생시킨 삶의 모델이었다. 미국은 이 방식으로 수많은 '개인의 성공신화'를 써가며, 오늘날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가장 기본 전제는 '기회의 균등'이었다. 영국에서 천대받던 사람들이 모두가 동일한 '무일푼'으로 미국의 척박한 황무지를 개척해가며 자신의 힘으로 성공을 일구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사회는 더 이상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지 않으며 금융자본가와 각종 불로소득의 혜택을 누리는 신흥 귀족들의 탐욕으로 순수한 시장경제 자체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몰락은 다름 아닌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는 해방 이후 미국의 그림자를 줄곧 쫓아왔다. 미국의 한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였고, 꿈의 나라였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삶의 방식이 그대로 이식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끊임없는 독재로 인해 반쪽도 못되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속에서도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며 한국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어 왔고, 그것은 일정부분 한국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전후 황무지가 된 조국의 상태가 미국의 식민 초기 시절과 동일한 환경 요건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미국의 오늘날처럼 더 이상 '기회의 균등'이 주어질 수 있는 자유주의 사회가 아니다. 이미 모두의 출발선이 심각하게 어긋나 있다. 이런 사회 현실 속에서 전쟁 이후의 환경이나, 프로테스탄트 이주 초기의 환경처럼 '기회의 균등'을 부르짖는 것은 한 마디로 멍청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제레미 러프킨은 최근에 쓴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저서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과 함께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진단하고 그것을 새로운 세상의 비전으로 제시한 바 있다. 미국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 역시, 기존 부시 행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오류를 반성하며 유러피언 드림의 요소들을 상당부분 미국 사회에 이식하려고 애써왔다. 세계 강국 2위 서열을 차지한 중국 또한 미국식 경제 개발 모델을 탈피하여 유러피안 드림의 요소를 가미한 자기들만의 '대동사회' 경제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고, 새로운 정의, 새로운 경제, 새로운 국가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야 할까. 답은 나와 있다. 우리는 적어도 미국의 변화 수준 정도로는 보조를 맞춰야 함은 물론,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 중국의 변화에도 예민해져야 한다. 유러피언 드림, 한 걸음 더 왼쪽으로의 이동은 시대의 이동 방향이다. 


공동체 부활, 복지, 부의 균형, 지속가능한 성장, 생태계 회복, 대안 경제, 인권, 민주주의 확립, 여성적 가치의 실현, 공공성 강화,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등등은 세계 보편의 화두이다. 그리고 이 키워드들이 전통적으로 어떤 정당들의 구호였는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앞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우리는 좀 더 왼쪽의 방향성을 띤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 바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는 이미 서유럽에서 실패한 모델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위상 확대와 세계적 정치사회 변화의 흐름을 살펴보았을 때 세계 일반의 유러피안 드림으로의 이행은 뚜렷하다. 복지국가 모델은 일부 수정이 있을 뿐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전면적인 개편 및 폐기가 일어나는 쪽은 전통적인 아메리칸 드림식 자유주의 국가이다.


대한민국은 사회경제적으로 복지국가의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명백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진보적 국가가 되어야 한다.



3. 왼쪽과 오른쪽, 보수와 진보.


진보적 국가란 무엇인가. 그 전에 보수와 진보의 개념부터 명백하게 해야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 사회에서는 주로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에서는 상대당을 공격할 때 보수, 진보라는 개념보다는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반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는 중도, 진보 진영에서는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을 선호한다. 


이는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유래된 현상이다. 한국은 분단국가이다. 북쪽은 '공산주의' 사회를 '표방'하고 있다. 즉, 이미 한국이라는 정치 지형에서 선명한 '좌파'가 설정이 되어 있고, 그 대상은 적대적인 대상이라는 것이다. '좌파'라는 정치적 표현 속에는 이미 미묘하게 '북한 편'이라는 판단이 포함되어 있다. 그 때문에 보수 측에서는 중도 진보 진영을 일컬어 '좌파'라고 칭하기를 좋아하며, 그를 통해 북한에 대한 혐오와 공포심을 지닌 계층을 자기 진영으로 포섭하는 것이다. 반대로 중도 진보 진영은 그러한 혐의를 피하기 위해 '좌파'라는 개념을 꺼려 왔다.


그러나 명백한 정치적 수사로 볼 때는 '보수'와 '진보'는 모호하고 상대적인 개념이다. 오히려 '좌익'과 '우익' 쪽이 정치적, 정책적으로 선명한 개념이다.


'좌, 우'라는 정치개념은 18세기 프랑스 공화정에서 왼쪽 편에 앉아 있던 자코뱅파와 오른 쪽에 앉았던 지롱드파에서 유래한다. 원래 귀족세력에 반기를 들고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자코뱅파의 모임에서 공포정치로 유명한 로베스 피에로의 자코뱅파(농민, 노동자파)와 신흥 부르주아가 중심이 되었던 지롱드파(자본가)가 나뉘어져 나온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 흥미가 많았던 피에로와 자유주의 이론에 방범을 두었던 지롱드파는 이후 좌와 우라는 정치 개념으로 굳어졌다.

좌 = 노동자와 일반 서민 대중의 이익과 경제적 평등에 가치를 둔 세력.

우 = 자본가를 중심으로 자유와 경쟁을 통한 개인의 사유재산 증식에 가치를 둔 세력.

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오랜 냉전 시대를 거치며 '좌'라는 말을 함구해온 우리의 정치사 탓에 보수와 진보라는 말이 마치 '좌'와 '우'를 대변하는 정치적 표현처럼 되어버렸지만, 엄밀하게 말해 보수와 진보는 사회의 변화를 대하는 개개인의 태도의 차이를 가르는 말일 뿐이다. 기존의 사회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자는 쪽은 보수, 기존의 사회가 자신에게 이익을 주지 않으므로 변화 시키자는 쪽은 진보인 것이다. 이는 매우 상대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으며, 좌와 우 양쪽 진영 모두 그 내부에는 보수와 진보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좌파 보수, 좌파 진보, 우파 보수, 우파 진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4. 한 걸음 더 왼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에 한 표를!


커다란 배를 몰아서 항해를 할 때 배의 이동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슬쩍 키를 돌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완전히 왼쪽으로 힘껏 돌려주어야지만 겨우 배가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 국가는 태평양에 떠있는 큰 배와 같다. 국가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키를 힘차게 돌려주어야 한다.


한국정치사는 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양당이 싸워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정당은 수사적으로 각각 보수와 진보라는 표현을 애용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 독재냐 민주냐를 제외한 정책적으로는 양당 모두 보수 정당으로서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은 억울해할 수도 있지만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항상 '좌파'라는 표현에 '억울함'과 '분노'를 표현해오며 자신들은 중도정당이라고 강변해온 정당이며 그 정강과 정책에 소위 진보적인 색채가 가미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새누리당이 지금 간판을 바꾸고 쇄신을 하겠다고 외치면서 정강 정책을 바꾼 것과 커다란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물론, 민주당이 이제라도 떳떳하게 진보를 자처하고 나서겠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해보지 않은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3일 뒤에 있을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찍는 일은 키를 잡고만 있겠다는 것이며, 민주통합당을 찍는 일은 키를 반의 반 바퀴만 돌려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국가의 선명한 변화를 도모할 수 없다.


키를 완전히 돌려보고자 마음 먹은 유권자라면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에게 표를 주는 것이 옳다. 그리고 진보정당에게 비례대표 의석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총선에 나온 정당 중에서 진보정당이라고 공언할 수 있는 정당은 통합진보당, 사회당과 합당한 진보신당, 녹색당 이 세 정당이다.


정당기호 4번

정당기호 16번

정당기호 11번


국회에 진보정당의 원내교섭 단체를 만들어서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진보의 활동을 보고 싶다면 통합진보당에 한 표를, 정통 좌파의 가치를 실현하고 현실 정치에 휩쓸리지 않는 순수한 진보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면 진보신당을, 다가올 미래, 아니 이미 도래한 미래의 위험에 투자하고 싶다면 녹색당에 지지를 보내주기를 권한다. 어느 표도 사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가 선진화된 나라라면 그 정치 세력은 '좌'인지 '우'인지 색깔이 명백하다. 색깔론을 한다고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 그냥 정치적 '색깔로 싸우는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지역이나, 정책과 무관한 후보의 말로 다투지 말자. 내가 꿈꾸는 국가를 명백하게 마음 속에 그리고, 그 방향으로 확실하게 키를 틀어줄 정당의 국회의원을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후보에 대한 평가는 과연 그가 그 정책을 명백하게 실현할 자질과 자격, 진정성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될 것이다.



5. 오른쪽 머리로, 한 걸음 더 왼쪽으로


우뇌는 창조와 감성, 직관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좌뇌는 따지고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는 데 이용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좌뇌가 발달된 사회이다. 오른쪽 머리를 좀 써야한다. 창조적인 변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주는 감성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한 걸음 더 왼쪽으로 가는 선택을 말이다.



2012. 4. 8. 총선을 3일 남기고.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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