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번과 지지난 번 글에 하트를 눌러준 분이 많았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여러 사람에게 두루 읽히는 걸 원치 않아서 일부러 아무런 이미지를 붙이지 않고 있는데도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 내용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또 몇 분은 응원의 의미를 담아 눌러주셨겠거니 싶다.
개인적인 고충이나 쓸쓸함을 가급적 아는 사람들과 나누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짐이 덜어지고, 기분이 나아지는 인간 유형도 있겠지만, 나는 그 반대의 인간이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은 나 혼자 짊어지는 게 차라리 홀가분하다. 아주 오래 혼자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온전히 마음을 의탁했던 이에게 철저하게 상처를 입어서 이기도 하다. 인간은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고, 누가 누구를 절대 구원해줄 수도 없다고 여긴다. 자기 몫의 삶을 충분히 감당하는 사람만이 오히려 덜 외로울 수 있다. 구원의 기대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허나 또 이런 식으로 오래 버텨 왔기에 타인이 지고 있는 짐의 무게를 섣불리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상대가 진심으로 전하는 충고의 말을 흘려듣는 일도 잦다. 이러다 고집스러운 꼰대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가 보이지 않는 꽁지머리처럼 뒷통수에 달려 있는 요즘이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들어준다"는 말은 박근혜의 명언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오래 전부터 내가 사랑하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금언이었다. 베스트셀러 <시크릿>의 낙천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때 이 주제로 순회강연을 하기도 했던 나지만, 삶에서 정말로 간절히 바라던 것들은 항상 이뤄지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는 천재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매니악한 팬들을 둔 은둔의 록스타도 될 수 없었다. 넉넉히 돈을 벌어서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이고, 다시 이어졌으면 하고 간절히 간절히 염원했던 인연도 다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 보면 굉장히 쓸모 없는 금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들어준다"는 말의 힘에 희미한 위로를 얻는다. 내 삶은 내가 빌었던 소원들의 그 모습 그대로 빚어지지는 못했으나, 분명 내가 향하고자 하는 강줄기를 따라 온 것임에는 틀림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명성은 얻지 못했으나, 내가 읽기에 제법 만족스러운 소설들이 남겨졌고, 매니악한 팬은 1도 없지만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가난하지만 쉽게 가난에 휩쓸리지는 않게 되었으며, 인연은 영원하지 않았으나 뜻하지 않은 날들에 다시 사랑이 찾아오곤 했다. 우주는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들을 원하지 않던 형태로 내 앞에 보여주었다. 어리석었던 나는 종종 내가 원하던 것이 내 앞에 나타났어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삶은 결국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조금씩 나 외의 세상에 관여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가장 크게 그리고 강하게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라는 우주뿐일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들어준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은, 우주 속에 흩어져 있는 모종의 힘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나 자신의 우주 속에 머물고 있는 희망의 싹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우주가 무너지면, 나 외의 우주도 무너진다. 나의 우주가 견고하고 분명하면, 뜻이 맞는 이들이, 또다른 우주가 자연히 찾아든다. 공자의 말처럼 아주 먼 곳에서도, 아주 먼 시간으로부터도 반가운 벗이 기쁘게 찾아들 것이다. 그 벗은 사람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힘이기도 하리라.
갑작스레 닥친 시련에 인간미를 더해 보고자 평소 마시지 않던 술을 마신 탓에 편두통만 얻어 며칠을 고생했다. 드라마를 보면 다들 그렇게 털어버리던데... 역시 남의 흉내나 내려고 하면 일이 잘 되지 않는 법이다. 우울하고 쓸쓸하면 또 그런대로 잠시 축 쳐져서 살아가면 그만이다. 우주의 신비인 와칸탕카께서 2주로는 소설을 완성하기에 부족하니 한 달을 더 주겠다 라고 하신 것으로 여기며 조용히 복종하고자 한다. 모쪼록 2020년이라는 이 신비한 숫자의 해, 새 봄날에 좋은 문장들이 나를 찾아오기를. 그리고 정부의 예술인 긴급융자 지원 대상에 선정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 _ -;
2020. 3. 10. 멀고느린구름.
'산문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퇴고의 중요성 (0) | 2020.03.21 |
---|---|
헵타포드B와 친절한 담소 (0) | 2020.03.18 |
오늘 하루도 무사히 (0) | 2020.03.02 |
거절할 수 없는 휴가 (0) | 2020.02.27 |
눈이 내리는데 (0) | 2020.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