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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인한 직장 휴업에 따라 자택 칩거에 들어간 지 5일이 지났다. 칩거 후 지금까지 총 지출 8,000원으로 무난한 선방을 기록하고 있다. 20대 시절 나는 한 달 생활비 3-4만 원으로 살아본 적도 많았다. 내 생존비법(?)은 쌀과 콩나물, 시금치, 그리고 김치다. 비교적 저렴한 이 네 가지 식료품만 구비해 두면 공익광고와 달리 수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에서 굶어 죽을 경우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잔뜩 만들어 놓은 콩나물과 시금치 반찬은 아직 1일을 더 버틸 수 있을 만큼 남아 있으니 '오늘 하루도 무사히'다.
그래도 전생에 동네 고양이 몇 마리 정도는 구했던 것인지, 삶의 고비 때마다 은인들이 출현하여 내 생명줄을 연장해주고 있다. <오리의 여행 2> 출간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될 뻔했으나, 투자금을 지원해주신 익명의 독자분이 계셔서 자금 부족으로 인한 출간불능 상태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전자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원금을 받고, 곧 인쇄를 맡길까 하다가 잠시 멈춰 두었다. 코로나 19가 이대로 잡히지 않으면, 사실상 <오리의 여행 2>가 유통될 독립서점들도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귀여운 오리를 홍보하는 것도 어쩐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곧 총선이라 여러 가지로 어수선해질 듯하다. 여러 사태가 일단락되고, 모두들 좀 으쌰 하고 기지개를 켤 때쯤 오리도 쓱-하고 얼굴을 내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으다. 그리하여 복숭아색 오리 신간은 먼 항해를 기다리며 물가에 앉아 무료하게 참방거리고 있다.
오늘부터는 예고한 대로 중반기 출간을 예정한 장편소설 <연희>(가칭)의 퇴고 및 개정 작업에 들어간다. 표지 일러스트를, 애정하던 화가에게 무리해서라도 맡기고 싶었으나 출간 비용 회수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역시 100만 원 정도의 디자인비 지출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능하다면 남은 칩거 기간 중에 표지화도 수채화로 직접 그려볼 생각이다. 긴 세월을 돌고 돌아 결국 직접 만드는 첫 소설책인 만큼 내가 가진 자잘한 능력들이 총집결된 책으로 만들고 싶다. 경제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 하는 책 한 권이 태어날 수 있다면 그걸로 일단 만족이다.
브런치에 오랜만에 쓴 인테리어 글이 소설이나 에세이 연재 글의 100배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똑같은 내 자식인데, 뭔가 미운 오리아가가 백조로 변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참고로 나는 백조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흥행을 해도 썩 기쁘지 않지만, 그럭저럭 유용하다는 생각은 든다. 별로 의미 없는 구독자수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6,000명대로 만들어 보고 싶은 야망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유명한 이기주 씨보다 내 구독자가 더 많았는데 말이다. 대체 이런 무의미한 구독자수 경쟁을 왜 해야만 하는 걸까 생각하면서 나는 열심히 경쟁하고 있다. 초연하게 살기는 글러먹은 성품이랄까.
늘 라이벌로 생각해온 벗의 일취월장한 감각적인 문장들을 읽으며 정신 차리고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했다. 대체 이 녀석은 그렇게 번듯하게 살아가면서 이런 문장을 어떻게 가다듬어가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감탄하게 된다. 아무튼 시대는 항상 천재를 몰라 보게 되어 있는 것 같으니 벗도 나도 아직 세상의 장막 뒤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은근슬쩍 나도 천재 그룹에 묻어 간다.) 과연, 우리들의 시대가 오기는 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저 알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가능한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오늘의 글을 쓰고, 오늘의 삶을 살고, 오늘의 공기 속에 머문다.
2020. 3. 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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