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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하라

저자
박노자, 지승호 지음
출판사
꾸리에 | 2012-04-1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부유(浮遊)하는 한국사회를 향한 외로운, 그러나 단호한 외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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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본, 그 다음의 삶 



국내의 정치 상황만을 보아서는 박노자 교수의 ‘좌파하라’는 외침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나라가 아닌가. 신자유주의 정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던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낙서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 박정근 씨 사건 - 나라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만큼이나 신성불가침의 용어가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자본주의는 시대의 대세이고, 만국의 표준 가치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나 슬라예보 지젝 등 좌파 지식인이 바라보는 ‘자본주의’는 더이상 시대의 대세가 아니다. <좌파하라>에서 박노자 교수는 자본주의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으며, 지금이야 말로 자본주의 이후의 삶을 지식인들이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근원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한계에 의해 자멸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레닌은 그 자멸의 시기를 한 세기 앞서 설정했고 볼셰비키 혁명을 감행했다. 허나 혁명은 국가주의적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반쪽자리 혁명에 그쳤고, 소비에트 연방(구 소련)은 불완전한 사회주의 국가로 연명하다가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붕괴했다. 


소련에서 태어나 그 몰락을 직접 체험한 박노자 교수는 소련의 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반드시 인민의 진정한 각성(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 민주주의의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가 보기에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발악이며, 최근의 글로벌 금융 위기는 자본주의의 종말이 머지 않았다는 증거다. 지식인이라면 이제 자본 그 다음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며, 그 해답은 역시 ‘사회주의’에서 밖에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박노자 교수나 지젝 등 좌파 지식인이 펼치는 주요 주장이다. 


분명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상적으로 그렸던 사회주의 국가는 ‘소련’과 같은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꿈꿨던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의 노조 조직률 60% 이상의 복지국가에서 더 가깝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주는 애초에 한 국가에서 달성할 수 있는 기획이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한 국가의 사회주의 국가화를 그렸던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될 수 밖에 없다고 여겼으며 그것은 곧 지구 전체의 사회주의로의 대전환을 생각한 것이었다. 미국이라는 강대한 자본주의 국가가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는 한 마르크스가 기획한 사회주의는 불가능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국가는 국가라는 통제의 틀을 초월하여, 전 인민이 연대하고, 전 인민이 적극적인 시민권을 가진 하에서 민주적으로 의사를 개진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자본의 척도로 불공정한 일을 당하지 않는, 인간이 인간 그 자신으로서만 - 혹은 노동의 가치로서만 - 평가되는 이상국가였다. 얼핏 기원전 공자가 꿈꾸었던 ‘대동사회’와 닮아 있기도 하다.  


경제가 한 국가를 넘어 세계화되면서 강대한 한 국가의 경제가 타국의 경제를 지배하는 상황이 되면서 일국의 독립적인 사회주의 국가는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방식으로 확대재생산을 일으키는 자본주의가 어느 한 곳에 성황하는 한, 대중은 그곳에 이끌려 들기 마련이고, 점점 더 부는 자본주의를 추구해가는 국가를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본으로부터의 탈피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부는 점점 더 바닥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소련은 결국 이 구조를 깨지 못하고 몰락했다. 


박노자 교수는 소련을 몰락시켰던 그 신자유주의가 이제 몰락할 차례라고 말한다. 그 징후로 유럽에서도 사민주의로부터 좌파들이 독립해 나오고 있으며, 그 좌파당들이 유의미한 득표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높은 실업률과 심각한 부의 편중 현상을 초래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피로감이 전세계의 민중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전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고 <공산당 선언>에서 외쳤지만, 이제는 전 세계 90%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10%의 자본가와 나머지 90%의 대결이 일어나 조만간 전 세계 곳곳에서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기대인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 박노자 교수나 지젝의 책을 읽고 있으면 사회주의 대혁명의 날이 머지 않았으며, 그 날을 위해 미리 대비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진보 대통합 시에도 끝까지 노동당을 지키며 좌파의 순수한 가치를 강조했던 이들도 아마 유사한 기대를 가슴에 품고 있었을 것 같다. 그들의 순수한 기대와 꿈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나는 박노자나 지젝의 주장들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A.D 1세기의 나자렛과 예루살렘을 떠올리게 된다. 역사적인 예수는 진실로 심판의 날이 머지 않았다고 여겼다. 우리는 예수가 살았던 시대를 기원 후 1세기로 표기하면서 마치 역사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은 순간처럼 여기지만, 기원전으로부터 역사를 생각할 경우 예수가 살았던 시기는 이미 인류가 고대문명으로부터 4,000년 이상 지구에서 산 종말의 시기였을 수 있다. 예수는 인류가 곧 심판을 받으리라 여겼고, 그의 제자들도 길게 잡아 4~50년 이내에 세계는 끝장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00년이 더 흘렀다. 세계는 끝장나지 않았다. 예수가 파기하고 싶었던 옛 약속, ‘구약’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예수가 새로이 맺은 ‘신약’보다 더 중요한 약속으로 읽혀지고 있다. 예수가 긴박하게 예언했던 심판의 날은 수 천년간 유예되고 있다. 공자가 도래하길 꿈꾸었던 ‘대동사회’도 아직 이 세상에 도래한 일이 없다. 공자의 꿈은 예수보다 500년 앞선다. 


나는 본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세상은 정말로 ‘진보’하는가. 세계는 정말로 진보하며, 우리가 꿈꾸던 것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라면 박노자와 지젝의 이상은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세계라는 것이 결코 진보하거나 퇴보하거나 하는 가치의 존재가 아니라, 그저 거기에 있는 것에 불과한 무엇이라면 온전한 꿈은 결코 이뤄지지 못할 것이다. 


우주는 팽창하는 것일까. 수축하는 것일까. 과학적 상식은 우주는 한 없이 팽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팽창하는 우주 속에 속해 있는 우리의 시공관념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팽창의 한계에 도달해 수축해가는 우주 속에 있다면 우주는 거꾸로 플랑크 시간으로 수축해갈 것이다. 


대전제로서의 ‘꿈’, ’이상’은 소중하다. 그것들은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의 좌표가 되어준다. 밤하늘에 북극성이 밝게 빛나는 한 우리는 한 없이 북쪽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로 그 북극성으로 갈 수 있을까. 갈 수도 있겠지. 그러나 언젠가 우리가 도달할 수 있을 북극성이 바로 우리가 수 천년 동안 마음에 그렸던 그 북극성일 수도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나는 자본주의가 조만간 몰락할 것이라고 예견할 수도, 몰락하지 않고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허나 분명한 것은 역사 속에서 영원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분명, 최후의 승리자는 사회주의자가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 자본주의는 끝날 것이다. 그러나 자본, 그 다음의 삶이 마르크스의 예견처럼 사회주의 삶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설령, 사회주의의 삶이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하여도 그 삶 또한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 변화를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고, 운 좋게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체제의 변화는 분명 삶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더러는 좋아지고 더러는 나빠질 것이다. 그리고 나빠졌다고 여기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 세상은 또 한 번 뒤집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진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 3부로 이어집니다



2014. 4. 2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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