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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읊조리다

詩 - 사랑이 떠나던 날

멀고느린구름 2012. 5. 7. 20:44

사랑이 떠나던 날



붉은 산 너머로 지던 태양

붉어지던 잎사귀들

적도 위의 섬들

뜨겁던 여름의 정오들을 떠올립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면

빨갛게 익어가던 내 속의 열매들이

여전히 빈 가지 끝에서

익어가는 듯한데

사람의 속에도 어김없이 겨울은 들어

눈이 내리고, 시나브로 쌓이고,

눈 녹을 때 즈음엔

당신도 거기에 없기를 바랍니다

나는 너무 많은 세월을

당신의 곁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러나 뿌리들이 땅에 닿고 바다에 닿고

당신에 닿기까지에는

보다 잦은 번민과 깊은 울음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나무의 본체는 뿌리일까요 가지일까요

열매나 잎일까요

마찬가지로 사랑의 본체는 무엇일까요

나는 내가 맺은 것들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겼습니다

벚꽃이 만개한 길을 피해

눈이 내리는, 혹은 겨울비가 쏟아지는 카페에 앉아

커피로 정신을 깨우는 날입니다

사랑이 떠나던 날, 이별의 순간들을

불러와 앉은 저녁

감히 한 치 앞의 날도 함부로 예정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2012. 4월 어느 날.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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