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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별은 빛나건만

멀고느린구름 2020. 12. 27. 05:49

'별은 빛나건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어 별을 보러 나갔는데, 새벽 하늘엔 먹구름뿐이었다. 멀리 산기슭 마을에서 점점이 빛나는 불빛들만 물안개로 경계가 지워진 새벽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풀이 죽은 채 거실로 돌아와 수년 간 식탁으로 쓰던 간이 집필책상 앞에 앉았다. 별을 보지 못한 탓에 쓰려던 말도 모두 우주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별 수 없이 시간을 차례로 거슬러 오래된 내 블로그에 쌓인 글들을 읽어내려갔다.

 

최근 2년 사이에는 제대로된 소설 작품도 없고, 온통 푸념이 섞인 에세이만 가득했다. 글을 쓰던 그 순간순간에는 어차피 나중에 다 지워버릴 글이라고 여기며 썼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 읽어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은 글이었구나 싶다. '프로우울러의 사생활' 이런 제목이라도 붙여서 책으로 내볼까 하는 야심이 잠깐 들었다. 나는 글을 이렇게 잘 쓰는데, 대단히도 비유명하군 이라는 생각을 하며 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다.

 

별은 빛나건만 나는 빛나지 않는다는 문장을 잠깐 떠올렸다가, 지금은 별도 빛나지 않잖아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틀린 생각이다. 먹구름에 가려져 있을 뿐, 지구의 기후와 관계 없이 우주 속의 항성들은 언제나 스스로 빛나고 있다. 태양계에 속한 별들은 우리에게 유명하지만, 은하계 속의 다른 수십 억 개의 별들의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그 이름을 모른다하여 별의 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세상에는 묵묵한 반짝임들이 많다. 

 

'별은 반짝임으로 말하죠' 라는 노래를 사랑한다. 나 역시 아직 나를 가리고 있는 캄캄한 장막 뒤에서 다만 반짝임으로 말한다. 내가 속한 은하가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당신들과는 영 만날 수 없는 거리에 있다고 해도. 100년이 지난 뒤에는 누군가 나에게 도착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다만 오늘도 별은 별의 일을 다할 뿐이다. 

 

2020. 12. 2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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