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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



1.신애, 조금은 거짓?

신애는 161번 버스 안을 오늘도 서성였다. 그러나 무소득. 누군가 161번 버스 제일 뒷좌석에 그녀의 남편이 누워 있는 걸 보았다는 것이었다. 벌써 며칠 밤 전의 낡은 정보인데다가 남편은 버스를 탈 줄도 몰랐지만 신애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편이 허름한 스웨터와 조금 얇은 겨울바지만 입고 집을 나가서 실종 된지 벌써 네 달이 넘어가고 있건만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정. 깊은 밤에 잠긴 도시에는 창백한 나트륨등만이 주저리주저리 허공에 걸려 있었다. 신애는 자옥한 어둠이 깔린 거리 위를 마냥 발밤발밤 걸었다. 그녀의 남편이 그 어둠 어느 편에 절지동물마냥 몸을 돌돌 만 채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거리의 어둠을 쓸어내렸다. 신애의 마음까지 고적해졌다. 신애는 비탈길을 올랐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비포장 비탈길이 있었다. 미처 문명의 수혜를 받지 못한 이 길. 그래서 타고난 본래의 얼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신애의 남편은 이 비탈길을 좋아했다. 보드란 흙 알갱이들과 발바닥에 닿는 촉촉한 감촉이 좋다 했다. 그래서 이 비탈을 오를 때 남편은 한 켤레밖에 없는 운동화도 벗어 던지고 네 살 박이 아이 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니곤 하는 것이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자갈이 제 살갗을 파고들어 피를 터뜨려도 남편은 아픈 줄을 몰랐다. 마냥 웃었다. 


비탈길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하늘만이 네모만 스크린처럼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스크린에서는 몇 시간 동안이나 같은 프로를 상영하건만 수 백 번 봐도 지루한 줄은 몰랐다. 신애는 숨이 막혔다. 밤이면 항상 남편과 함께 바라보던 저 우주를 머금은 별들, 반짝이는 생명들. 신애는 소녀시절 시골집 툇마루에 누워 별을 바라보며 이 세상 어딘가 별의 바다가 있어 그곳에 발 담그고 참방참방 자맥질할 수 있었으면 하는 낭만적 소망을 품었었다. 그러던 것이 남편을 만나 이루게 된 것이었다. 깊은 밤 남편과 함께 별을 올려보다 문득 남편의 눈을 바라보면 거기서 수없이 참방이며 빛나던 별들, 해맑게 출렁이던 남편의 까만 눈... 신애는 눈물이 날 뻔했다. 허나 약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이맘때쯤 집으로 돌아오면 저 방 창문엔 봄 햇발인 양 천진하게 불이 켜져 있었지. 신애는 공동처럼 암울한 방을 쳐다보며 떠올렸다. 2층의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터벅터벅 오르는 신애의 뒷모습은 마치 낙엽 같았다. 까닭 없이 그저 뒤채이는 슬픈 생명.

방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켰다. 불빛이 잠시 끔벅이더니 이내 주위가 환해졌다.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전세 단 칸 방이었다. 이 정도 조그만 공간에서는 바닥에 흘린 김치국물 자국이라도 어느날 없어지면 표가 나기 마련이다. 하물며 같이 지내던 사람이 부재하다는 건 섬뜩한 일이었다. TV를 틀었다.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지만 마땅히 볼 것이 없었다. 남편이 좋아하던 프로그램을 녹화해둔 테잎을 비디오에 넣고 재생단추를 눌렀다. TV유치원 하나 둘 셋.



네 달 전 그날 아침은 여느 날과 별반 다름없었다. 굳이 뭔가 특별난 일을 떠올려 보라고 강요한다면, 그 동안 부엌에서 야금야금 음식을 훔쳐먹던 생쥐 한 마리가 죽어 나간 것쯤을 생각할 수 있을 뿐. 평범한 날이었다. 


“요섭씨! 그만 일어나요!”


요섭은 또 늦잠을 잤고, 기상과 동시에 습관처럼 TV를 켜 ‘하나 둘 셋’ 이라는 아동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요섭은 언뜻 진지하면서도 연신 히죽거리며 TV를 본다. 그 모습이 여전히 철없는 소년 같다. 요섭은 자기가 서른이 넘은 중년의 사내라는 걸 알까? TV 속에서 꼬마들이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추는 것을 따라 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착하지∼ 요섭씨. 이불 개세요.”
“흐흥흥. 요섭이 착해. 흐흥 너무 착해.”


요섭은 착하다는 말만 덧붙이면 무슨 일이든 다 했다. 요섭은 종이접기라도 하듯 이불을 반듯반듯 정성을 다해 접는다. 어느새 이불을 다 개어 장롱 안에 가지런히 쌓아 놓았다. 그러더니 신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신애는 이미 저 애 타는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아침밥.


“읍읍 신애야. 읍 나 기..김치.”
“요섭씨. 이제 밥 먹는 거 정도는 요섭씨가 알아서 해야죠. 하나누나가 밥 먹는 건 안 갈쳐 줘요?”
“읍 가…갈쳐 줘. 읍”
“그러엄, 앞으로 요섭씨 혼자 먹어요.”
“읍읍 시… 시러. 시…신애…신애가 읍 먹여줘.”
“요섭씨이, 착하죠요?”
“흐흥. 요섭이 읍 착해. 대빵.”


요섭은 뾰로퉁하던 얼굴을 동전을 휙 뒤집듯 순식간에 바꾼다. 자기가 하늘나라 천사라도 되는 양 앙글앙글 웃으며 김치를 집어 드는 모습이 얄밉다. 행복에 겨운 요섭의 활짝 벌린 입에서는 우스운 눈물처럼 침 방울이 굴러 나온다. 


“읍 우리 야…야옹이도 바압. 신애야 읍”


아침식사를 끝낸 요섭은 언제나처럼 말한다. 야옹이란 것은 실제 고양이가 아니라 까만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그저 흔한 원통형 저금통일뿐이었다. 요섭은 신애의 바지단을 꼬집듯이 엄지와 검지로 집고 흔들흔들이다. 신애는 빙긋 웃으며 백원 짜리 하나를 저금통에 넣는다. 요섭의 입이 헤 벌어진다. 


신애는 TV에서 눈을 떼고 고양이 저금통을 제 쪽으로 끌어당겨 쓰다듬어 보았다. 이상스레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슬픈 것이었다. 남편이 떠난 이 공간의 모든 것이 갑자기 따사로워지고 남편이 그러했듯, 이 방의 사물들이 영혼을 지닌 것처럼 보게 되는 것이었다. 남편은 사랑하는 것, 사랑 받는 것은 무엇이든 살아있다고 여기는 이였다. 심지어 남편은 가을에 나들이라도 가면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은 죄다 주어다가 흙에 묻어주기까지 했다. 그이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자기의 귀한 이웃이며 벗이었다. 
‘구름구름 지나가요/안녕안녕 인사해요/해님 방긋 나도 방긋/다 같이 인사하구 웃어요’
TV 밑의 서랍 장에서 남편의 공책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 보았다. 남편은 신애가 고아원에 가 일하는 사이에 관공서용 종이봉투를 만들거나 글을 썼다. 정신박약인 데다가, 약간 다리를 절룩거리는 지체 장애인이기까지 한 남편이 글을 쓴다는 걸 사람들은 신기해 했다. 최근에는 고아원으로 모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기까지 했으니 꽤나 진진한 흥미거리가 되긴 하는 모양이었다. 허나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나 ‘신기하다’ 정도에 머물렀다. 남편의 글을 제대로 읽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길가의 가로수도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만히 그늘을 준다. 똑같이 길가의 가로등도 살아있다. 가로등도 가만히 우리에게 빛을 주지 않나.’
‘살아가는 건 결국 언젠간 그칠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놀이를 하는 것 같다. 눈이 금방 그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신애는 몇 번인가 남편의 글을 책으로 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찾아가는 출판사마다 우선 큰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꼭 정신박약아가 쓴 글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돈이 좀 된단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늘 헤헤 거리며 글을 썼고, 그리고 불쑥불쑥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 가끔은 힘들다고 얘기해도 막무가내로 하루종일 생떼를 쓰기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도무지 그 사랑스러운 장애인을 믿어주지 않았다. 


서에서 전화가 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신애는 잠결에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이신애씹니까? 남편 실종 신고 하셨었죠? 오늘도 몇 건 보고가 들어왔는데 신원이 비슷해서요 확인하시겠습니까? ”


신애는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뛰쳐나왔다. 한달음에 비탈을 뛰어내려가 막 출발하고 있는 버스에 기어코 오르는 것이었다. 신애는 좌석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심장이 콩닥거리는 소리가 주위사람에게 들리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급하게 뛰어온 까닭도 있지만, 혹 남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더 컸다. 사실 남편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 것은 이번으로 벌써 열 세 번째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새 네 달이나 지나지 않았는가. 친지들이나 어머니가 재혼 얘기를 꺼낸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허나 신애는 꿋꿋이 남편을 기다려온 것이다. 비록 그것이 시체일지라도. 


서에서의 보고라는 것은 사실 그런 종류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길에서 동사한 부랑자나 신원을 알 수 없는 교통사고 사망자, 익사한 채로 떠올라 얼굴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이들. 서로부터 처음 전화를 받던 날 신애는 천국 행 기차여행을 막 시작하는 아기천사처럼 기쁜 설레임에 연신 함박웃음을 피웠었다. 이제 요섭씨의 천진한 미소를 다시 볼 수 있겠지 하고. 그러나 막상 대면한 것은 깨진 머리에서 검붉은 피를 토사물 처럼 쏟아낸 채 둥그렇게 눈을 까뒤집고 있는 너부러진 시체의 현상사진. 순간 신애는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그리고 십분 가량 미치광이 마냥 울며 웃으며 가슴속의 응어리를 죄 토해내듯 울부짖었다. 


“ 요섭씬 안 죽엇! 안 주거엇! ”


그러던 것이 시간의 물결에 희석되어가고 이제는 시체만이라도 찾길 바라는 심정이 되어 있었다. 물에 휩쓸려가버린 남편의 시체조차 찾지 못하는 백수광부의 아내 마냥, 신애는 남편과 잇닿은 인연의 줄로 구슬피 공후를 켜고 있었다. 제발 그 물을 건너지 말라고, 죽어선 안 된다고.



경찰서는 한산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도 평생 몇 번 쯤은 와보는 데라지만, 신애는 웬만한 전과자보다 더 많이 이곳을 드나들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로서는 신애는 곱살한 양의 얼굴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악질 흉악범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한 번 서에 끌려온 사람이 신애더러 ‘어이구 형수님 또 오셨수’ 라고 빈정거린 적도 있을 정도였다.


“아, 이신애씨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신애에게 형사는 거참 빨리도 왔다는 낯으로 말을 건넸다. 형사는 언제나처럼 신애를 제 취조의자 앞에 앉힌 뒤 캐비넽에서 두툼한 자료뭉치를 꺼내왔다. 또 이만큼이나 죽어나갔다는 얘기다. 텅. 자료 뭉치를 신애 앞에 내려 놓는다. 그 텅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사람 목숨의 무게라는 것이 고작 이 정도 소리밖에 지르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퍼졌다. 겨우 저런 한 장의 종이조각으로 남겨지기 위해 사는 걸까 하고. 허나 그런 신애의 마음과는 달리 형사는 오히려 싱글싱글 웃고 있다. 신애의 섧은 남편 찾기가 그에게는 꽤나 쏠쏠한 흥미거리인 모양이었다. 


신애는 생애 모든 희망과 절망을 포개어 제 오른 손에 걸어놓은 듯 떨며 자료뭉치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넘길 때마다 나는 사스락 소리가 꼭 남편의 뒤척임 소리 같아 눈물샘에 방울방울 물이 고였다. 사진들은 하나 같이 끔찍했다. 사진 속의 남자들은 머리가 깨지거나 몸이 차에 짓눌려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채 창백히 얼어있는 것이었다. 수 많은 30대 남성의 시체 사진을 넘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참 덧없는 인생들이죠. 그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살아있다는 게 가끔은 좋다라는 생각”
신애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형사가 심심했던지 툭 내뱉었다. 


“그렇네요. 하지만 살아있으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 게 사람이다...입니까”
“그 이는 그런 생각을 빼앗아간 사람이었죠”
“죽음 말입니까?”
“네, 그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런 말이 참 우스워져요. 그 이는 갖고 있었거든요. 사람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잊게 만들어 주는 아니 그 자체를 우스운 것으로 만드는 힘. 사랑의 마음”
“하하, 네에 사랑할 땐 모든 게 좋아보이는 법이죠” 


형사는 신애의 말을 가벼운 웃음으로 받아 넘기며 냉장고에서 실론 티 두 캔을 들고 와 하나를 신애에게 건넸다. 신애는 가만히 그것을 받아 들고는 자료뭉치의 남은 몇 장을 마저 넘겼다. 


“오늘도 헛걸음하신 모양이네요. 이거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아뇨, 없는 게 다행이죠. 전 아직 희망을 갖고 있으니까요”
“네에...이제 오개월짼가요?”


신애는 길게 한 숨을 쉬며 창 밖을 내어다 보았다. 모든 사물이 지워진 것처럼 하얗다. 첫 눈이 나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창 밖에는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허나 어린 신애는 별반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창 밖으로 갑갑하리 만치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들은 신애에게 소녀다운 감상을 허락치 않았다. 고등학교 생활은 너무도 따분했다. 신애가 꿈꾸던 도시에서의 고교생활은 얼마나 꿈처럼 달콤한 것이었던가. 전원 속의 파릇한 풀밭들과 푸르른 나무들. 까만 밤하늘에 부스러진 유리알처럼 박혀 옛이야기를 도란이던 수 없는 별무리. 우주바다에 펼쳐진 그 아스라한 별의 나라. 별자리의 전설들로 풋풋한 소녀의 감수성을 키운 신애였다. 촌에서 태어나 자라오며 한번도 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신애에게 도시라는 것은 이미 그 어휘의 어감서부터 심장을 콩닥거리게 하는 것이었다. 신애의 가슴 속에 가득한 자연의 내음, 그 너머에 자리한 도시는 무언가 꿈이 있고, 활기에 넘치며 세련된 인텔리들과 각종 문명의 산물들로 축복 받은 꿈의 공간이었다. 신애에게는 다니던 모교가 폐교된다는 것도 물론 슬펐지만, 도시학교로 전학 간다는 사실은 그 슬픔을 천만번 꺾고도 남아 처치 곤란일 기쁨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신애가 도시학교로 전학 와 처음 마주한 것은 숨막힘이었다. 조그만 교실 속에 숨막히게 가득 들어찬 아이들. 사방팔방이 아파트로 도배되어 있어서 창 밖을 내어다 보아도 마땅히 눈 둘 곳이 없었다. 도시는 신애가 꿈에 그리던 인텔리들의 유토피아이기는커녕 돈과 명예에 굶주린 아귀들의 전쟁터일 뿐이었다. 


신애는 커튼을 치려다 문득 놀이터 쪽에 눈길을 주었다. 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가 이리저리 뒹굴 거리고 있다. 혼자 눈을 하늘로 뿌리기도 하고, 두더쥐 마냥 바닥을 파기도 한다.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사내아이는 얼마간 그런 행동을 반복하더니 갑자기 눈을 동글동글 빚어서는 신애에게로 던지는 것이었다. 눈이 창에 부딪혀 하얀 입김을 뿜으며 바스러져 창 아래로 흘러내린다. 물론 신애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언짢은데.


“너 거기서!”

신애는 현관을 박차고 나가 사내아이가 있는 놀이터로 달음질이었다. 신애는 숨을 헐떡이며 놀이터에 발을 디뎠다. 아무도 없다. 눈이 날아와 미끄럼틀에 부딪혀 설탕가루마냥 흩날린다. 그 위에 겨울 아침 햇살이 미끄러져 형형한 별빛 무지개를 만든다. 신애의 눈동자에, 가슴에 그 무지개가 스며들었다. 


“에헤헤, 에헤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사내아이가 깡총 뛰어나왔다. 신애는 그 사내아이의 웃음소리가 이상스레 경쾌하고 천진하다고 생각했다. 사내아이는 연신 앙글앙글 웃으며, 신애의 또래 답지 않은 포즈들을 철판 깐 양 해대는 것이었다. 신애쪽으로 엉덩이를 실룩대는 가히 도발적인 행위를 하지 않나 싶으면, 또 혓바닥을 입 밖으로 죽어라고 내민 채 도시 집어 넣지 않는 것이다. 제 코를 위로 쿡 올리며 ‘저팔계에~~’ 하는 것도 절대 잊지 않는다. 신애는 첫눈이 오는 이 낭만적 하루에 실로 기상천외한 유치찬란 쇼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신애는 사내아이의 호도깝스러운 행위를 관람하고 있노라니 터져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배를 잡고 웃음을 떠뜨리고 만다. 전깃줄 위의 참새가 깜짝 놀라 호르르 달아난다. 겨울 햇살은 이 하이얀 놀이터에 점점 다사로이 내리 붓고 있었다. 신애로서는 정말 오랜만의 티없는 웃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신애가 그 사내아이를 본 것은 봉사점수를 따기 위해 찾아간 고아원에서였다. 사내아이는 짐짓 진지한 눈빛으로 무언가 쓰고 있었다. 시였다. 그것도 티없는 동시. 신애는 몰래 그것을 건너다 보았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는 사내아이의 눈과 마주친다. 깊고 까아만 별의 바다. 문득 신애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사내아이는 생긋 미소 짓는다. 그 입가에서 하얀 방울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요섭. 나이는 신애와 동갑. 아기였을 때 고아원 앞에 버려진 것을 데려다 키운 아이. 어릴적부터 다리를 조금 절고, 정신박약증세가 있었던 아이. 고아원 원장으로부터 들은 사내아이의 정보였다. 


“엄마, 저 이제부터 토욜마다 고아원 가볼려구요”


신애가 주말만 되면 무엇인가 들떠 고아원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자꾸 가기 시작한 고아원에 아주 정이 들어버려 신애는 대학을 사회복지학과로 가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고아원에 가면 역시 제일 먼저 찾는 것은 요섭이었다. 꼭 요섭을 보기 위해 오기라도 한 듯이. 신애는 점점 요섭에게 이끌리는 제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나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이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요섭은 여러 가지 깊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정신박약이라고 해도 요섭은 10~13세 정도의 정신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가끔 요섭은 신애도 미처 생각하지 못 한 부분까지 생각을 했다. 가령 거리의 흔한 가로수도 우리처럼 자라나고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것이나, 살아가는 건 결국 언젠가는 그칠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놀이를 하는 것이라는 것 같은. 신애와 요섭은 그렇게 하루하루 만나는 사이 서로에게 정이 들었고, 결국 요섭이 신애에게 프로포즈를 한 것이다. 요섭이 고아원을 졸업하고 사회로 첫 발을 내 딛는 날이었다. 



이상이 내가 신애라는 여자로부터 들은 대략의 이야기이다.
 



2. 나는 헌터

‘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


이런 웃기는 문구가 붙은 다 헤져버린 전단지. 귀퉁이에는 웬 얼빠진 사내놈의 사진이 초상마냥 걸려 있다. 놀고 있군. 혼자 중얼거리며 전봇대를 지나치려 한다. 그러다 쨔잔 운명처럼 사례금 300만원에 눈이 휙 돌아가는 것이다. 땡 잡았다


사례금이나 현상금만으로 살아 온지 벌써 어언 7년. 오랜만에 큰 건수를 잡은 것이다. 폰을 꺼내 곧장 전화를 했다. 이신애. 일주일 내로 남편을 찾아주겠다는 말에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꼴이라니. 아마 그 어벙한 남편이 통장이라도 들고 나른 모양이다. 사소한 일이 번져 불붙은 한바탕 부부 활극 끝에 소심한 남편이 집을 뛰쳐나가버린 것일지도. 아아 가련한 중년이여. 


일단 나는 그 남편을 암호명 얼치기로 규정하기로 했다. 생긴 꼴이 그 모양이니 필연적이었다. 나는 직업을 강조하기 위한 코믹만점의 중절모와 바바리(중절모는 인사동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과거 어느 시인이 썼다던 걸 만 오천원에 구입한 것이고, 바바리는 여름에 동대문에서 단돈 이만원에 구입한 것이었다.)를 걸치고 눈보라를 헤치며 비탈길을 오른다. 이건 똥개 훈련이야. 씩씩 거리며 드디어 이신애라는 여자의 집에 도착했다. 


대충 지은 슬레이트 건물 2층. 여기저기에 벼락 같은 균열이 생겨 있고, 거미줄이 화려하게 둘러져 있다. 자정쯤에 오면 귀신이 나와 반겨줄 것 같은 집이다. 내가 무슨 고스트버스터도 아니고, 귀곡산장 따위에는 들어가기 싫다. 허나 조사를 위해서는 들어가는 수밖에. 어설퍼 보여도 나는 프로니까. 나무 판자를 세워 놓은 것 같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바로 부엌이 나온다. 습한 기운과 함께 오롯이 냉기가 덮쳐온다. 조용하다. 저, 이신애씨 계신가요? 이신애씨이~ 방 쪽에서 잠시 뒤척이는 소리와 ‘탁’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방문이 버럭 열린다. 깜짝이야.


“ 아..네 오셨어요. 죄송해요. 제가 깜박 잠이 들어서.”


여자는 내게 방으로 들어오라는 듯 문에서 자리를 비킨다. 방으로 들어간다. 방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제법 예쁘장하다. 벽지는 예쁜 초록빛 세잎크로바 무늬이고, 장판도 티 하나 없이 깔끔하다. 벽에는 달력과 결혼기념사진만이 어색하게 서로 몸을 맞대고 걸려 있다. 달력과 결혼 기념사진이 맞닿아 걸려 있는 벽면이 조금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값비싼 토토로 인형 따위도 한 쪽에 놓여 있다. 신애라는 여자는 생각과 달리 제법 생긴 얼굴이다. 혼자 무던히도 울었는지 눈이 충혈되어 있고, 조금 피곤해보이는데도 스무 살 후반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이런 여자가 그 얼치기 마누라라고? 새끼 돈은 많은가 보지. 


“ 전에 전화로 얘기는 대충 들으셨죠? 저희 남편이 집을 나간 지 벌써 육개월이 넘었어요. 이제 말씀 드리는 거지만 사실 제 남편은 정박인이에요. 죄송해요. 사실대로 말하면 찾겠다고 아무도 안 나설 것 같아서…”


꽝이다. 정박인이라니. 이게 무슨 헛소린가. 저런 여자가 뭐가 부족해서 똘아이랑 결혼을 했다는 거지. 엽기다 이건. 


“ 제발. 부탁 드릴게요. 꼭 좀 찾아주세요.” 


여자는 제법 비련의 여주인공 흉내를 낸다. 영화 편지에서 최진실이 펼친 눈물 콧물 억지 최루연기보다야 훨씬 리얼하기는 하다. 여자는 짜증나게도 울먹울먹 경위를 풀어 놓는다. 한 시간 쯤 지나서 였을까. 간신히 여자의 러브스토리가 끝난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는 신애라는 여자는 미친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속으로 내린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 땅에 그런 지고지순 청순파가 생존해 있을 리가 없는 까닭이다. 


“어때요? 찾으실 수 있겠어요?”


또 울먹이는 목소리. 조금 귀찮아 진다. 하지만 300만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여자의 이야기에서 몇가지 단서를 찾아낸다.


첫째는 얼치기가 교통 편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
둘째, 꼬락서니가 완벽한 미치광이 거렁뱅이라는 것.
셋째, 얼치기는 어떤 물질이든 생명체로 착각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죽었을(지 딴에는)시에는 철저한 장례의식을 거행한다는 것.
첫째 단서로 얼치기가 그리 멀리 가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납치될 경우도 있지만, 둘째 단서가 그 확률을 극히 낮게 만든다. 이 세가지로 미루어 얼치기가 길거리에서 아사 또는 동사했을 거라는 가정을 내릴 수 있지만, 여자의 말로는 육개월 간 아사, 동사자를 확인하러 다녀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좀 더 다른 단서들을 모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여자에게 내일까지 사건 이후 요섭을 보았다는 사람들을 모두 한 곳에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날씨는 더럽게 추웠다. 세평 남짓한 초라한 사무실. 난로를 켠다. 초저녁이라 불을 켜놓지 않은 사무실이 주홍빛으로 물든다. 창 밖의 눈송이들도 녹아 들 듯 열기가 번졌다. 목격자라는 놈들의 말은 각기 제각각이었다. 


우선 첫 번째 목격지는 비탈길 나무 아래.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에 신애와 요섭의 집(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버스정류장 네 개 정도 거리에 있는 개천(하수구가 연결되어 있다. 몇 일간 계속 그 부근에 모습을 보였다) 그 다음 네 달 즈음 지나 몇일 전 갑자기 엉뚱하게 161번 버스 뒷좌석에 누워 있는 것이다. 제보는 거기서 끝이다. 


나는 어떻게 고리를 맞춰야 할지 몰랐다. 집 나간 지 육개월이 넘어간 얼치기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다. 냉장고에 손을 뻗어 맥주 캔 하나를 끄집어 낸다. 창 밖에는 여전히 눈송이가 힘겹게 도시의 잿빛을 지우고 있었다. 문득 과거 언젠가 이렇게 창 밖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던 날이 떠오른다. 지금은 고액의 위자료를 챙겨 떠난 아내와 함께 말이다. 사랑은 아주 웃기는 일이다. 유통기간이 지나면 썩어버리는 빵이나 우유처럼. 세월이 흐르고 뇌에서의 화학작용이 시들해지면 쓰레기통으로 던지는 것이다. 쓸만한 것만 멋지게 재활용하고.


술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답답해.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 뭉치들과 고지서 더미들에 눈이 간다. 삶을 짓눌러 오는 종이 조각들. 세월은 종이조각을 채우고 버리는 일로 이루어 진다. 흘러간다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느 틈에 돌아보면 저만치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쳇, 300만원이나 벌어야지. 나는 늘 그러하듯 퍼즐을 짜 맞추며 추리를 전개해본다.


우선 4절 도화지로 네모난 조각을 여러 개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이것저것 모은 단서들을 써보는 것이다. 다음은 각 단서들을 연관 있는 것 끼리 짜맞추어 본다. 정말 퍼즐 조각을 맞추 듯이. 내가 이렇게 헌터 일을 하는 것은 돈 때문도 있지만. 지금처럼 이러한 퍼즐놀이가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파편화된 조각조각의 삶들. 꼭 신이라도 된 양 그것을 지금 여기서 한가히 짜맞추고 있는 것이다. 


퍼즐을 다 짜맞추고 보니 그림이 하나 떠오른다. 요섭의 이동경로를 생각해보자. 요섭이 집을 나가던 날 분명 집에서는 무언가 요섭에게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요섭은 그 일로 인해 신애가 집을 나간 사이 밖으로 나왔고 비탈길 나무 아래까지 갔다가 무언가 일을 하고, 집으로 왔다가 다시 또 어떤 일을 겪고, 집을 나선다. 한 참을 걸어 개천까지 다다라 하수구에서 무언가 또 일을 벌이는 것이다. 아마 짐작컨대 요섭은 그 하수구 속에서 잠을 자거나 했을 것이다. 흔히 꼬맹이들이 그런 짓을 종종 저지르듯. 그 후에는 분명 신애에게 돌아오기 위해 애를 쓰다가 우연히 버스를 탄 것일 게다. 


일단 하수구 쪽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의 그 우스운 중절모와 바바리를 걸치고 사무실을 나선다. 



제법 넓은 개천이 먼 소실점을 향해 뻗어 있다. 물은 꼭 수돗물 마냥 쪼로록 흐르고 있다. 악취가 난다. 잿빛 하늘을 두 세 번 씻은 물 같다. 개천을 따라 양쪽에 섰는 회색 방 둑. 페인트 칠 하나 하지 않은 건물들. 지짐지짐 내리는 진눈개비에서 회색 빛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옆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개천 바닥으로 내려간다. 악취가 점점 더 심해진다. 주변을 살피다가 하수구관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잿빛 냄새. 세상을 갑갑하게 둘러싸고 있는 흑백영화 같은 빛깔들이 목을 졸라오는 것 같다. 현기증이 잠시 일었다.


“사랑 따위가 아직 있다 생각하는 거야?”


툭 튀어 오르는 아내의 목소리. 아니...중얼거리며, 바닥 쪽으로 시선을 옮겨 본다. 지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하수구관 바로 앞쪽에 올록볼록한 흙덩이 네 개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모래성 같다. 허나 가까이서 보니 나무 막대기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놓았다. 나의 추측으로 그것은 신애가 말했던 간이 무덤이 틀림없다. 예상과는 달리 무덤의 수가 많지만 요섭은 분명 이곳에서 저 혼자 제사를 지내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길을 잃어버렸고. 교통편도 이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친 것이다. 또 밤은 점점 깊어 가니 무서워서 그냥 그 자리에 눌러 앉아 버린 것일 게다. 


발로 그 무덤을 툭툭 차본다. 얼치기의 경건함 따위는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다. 흙 알갱이 새로 회색 빛 동물의 가죽이 보인다. 쥐.



신애의 집 앞, 비탈길 나무 아래에서도 역시 그런 무덤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쥐가 발견되었다. 나는 뭔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 사무실로 돌아와 신애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열 다섯 번째다. 삐이하는 전자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삑삑삑삑하는 신경질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젠장, 내가 더 짜증나. 그녀는 벌써 열 시간 째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실마리가 잡히면 곧장 전화해달라고 눈물콧물 다 짤 때는 언제고. 약속했던 일주일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직접 찾아가볼 수밖에. 창 밖의 하늘이 모처럼 푸르게 보인다. 


비탈길을 올라 신애의 집으로 향한다. 그 집 주인으로 뵈는 노파가 대문 한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다. 


“ 이신애씨 집에 계신가요?”
“뭐 할라꼬?”
“아 네, 박요섭씨 일로 왔는데요”
“아 자네가 그 탐정 뭐시긴진가?”
“뭐 일단은...근데 이신애씨는?”
“아따 고 년이야. 지 남편 죽어서 신났제.”
“네? 그게 무슨..”
“요새 통 안 보이잖어. 아 고 년이 맨 날 지 남편 바보뱅시라고 집에 가둬놓고, 복지금이나 타 쓰구 그러잖어.”


노파의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진다. 노파의 입가에 침이 고인다. 그러더니 곧 카악하고 가래를 바닥에 툭 내뱉는 것이다. 


“ 아 결혼허구 한 1년 지나니께 지 남편 뱅신이라고 매 구박하고 안글나. 내 언제 이런 일 일날 줄 알았제. 1년 즌이야 좋았제. 우째 세상에 그래 변하누 쯧쯧.”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남편을 싫어했다는 여자가 뭣하러 300만원이나 사례금을 걸고 남편을 찾는다는 말인가? 뒤에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온다. 하이힐 소리 같다. 이신애가 비탈길 편에서 찬찬히 모습을 보인다. 까맣고 긴 생머리가, 하얗고 청순해 뵈는 얼굴이, 가느다란 목이, 그 목의 반짝이는 목걸이가, 까만 원피스가 차가운 굽 소리를 내는 빨간 하이힐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녀는 나를 보고 놀라는 기색을 언뜻 보이더니, 이내 침착한 표정으로 바꾸고 다가와서는 집으로 들어가 얘기하자고 한다.


“저 할머님하고는 무슨 얘기 하고 계셨어요?”
“아니 뭐 별 얘기는..”
“무슨 말 들으셨는진 모르겠지만요. 믿진 마세요. 저 할머님 치매 걸리셨어요”
“네? 정말요?”
“예. 요즘 누가 정박인 딸린 식구한테 방을 내주겠어요. 서로 딱한 처지니까 할아버님이 안쓰러운 맘에 방을 주셨던 거죠.”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는 기색이 전혀 없다. 마치 늘 하던 얘기를 하듯 표정도 덤덤하고, 진실처럼 들린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요?”
“아… 고아원에 잠깐 일이 있어서요” 
“근데 무슨 일로…?”
“네에, 박요섭씨가 집을 나가게 된 동기를 알아냈습니다.”
“아, 그래요? 아니 정말이요?!!”


여자는 예의 그 호들갑을 또 시작하는 것이다. 눈빛이 아주 초롱초롱이다. 그런데 그 눈빛이 왠지 독을 품은 뱀의 눈빛처럼 뵈는 것은 좀 전의 노파의 말 때문일까. 그녀에게 박요섭이 집을 나간 동기에 대한 나의 추리를 이야기했다. 신애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요섭이 하수구까지 가게 된 경위는 확연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의 행방은? 버스를 이용할 줄 모르는 이가 처음 버스를 탔다면…종점에서 내리게 될 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신애의 방을 나선다.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는데 어쩐지 방의 물건들이 줄어든 것 같다. 집 밖 한 켠에는 노란색 마티즈 차도 보인다. 하늘에 먹구름이 조금씩 끼고 있다. 


사무실로 돌아와 쇼파에 눕는다. 누군가 정수리에다 주사바늘을 꽂고 피를 죄다 뽑아내는 것 같다. 하품이 나고 눈가에 물기가 어리더니 잠이 쏟아진다.

신애는 요섭이 쓴 원고뭉치를 가지고 출판사로 향하고 있다. 주위 풍경은 갓 현상된 필름 음화 같다. 신애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출판사 건물만이 빛깔을 가지고 있다. 신애가 건물에 들어서자 빨간 하이힐이 요란스레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신애는 층계를 얼마쯤 올라가더니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삐이걱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고 들리지 않은 것도 같다. 또각거리는 굽소리는 심장박동처럼 쉼 없이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소리가 끊기면 무언가 숨이 끊길 것 같다. 신애가 들어선 방에는 두 세 사람 정도가 서류 뭉치들이 너즈러져 있는 탁자 곁에 앉아 있다. 신애는 그 중 누구에겐가로 가서는 요섭의 원고를 건네주고 돈뭉치를 건네어 받는다. 탁자 곁의 사람은 입도 벙긋하지 않은 채 나머지는 은행구좌로 넣었어요 라고 말한다. 신애가 씽긋 웃는다. 돌아선다.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또각 또각 또각 똑. 소리가 멎는다. 신애와 건물이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나타나고, 내 발 아래쪽에는 온 몸이 하얗게 질린 벌거벗은 한 사내가 엎디어져 있다. 몸을 숙여 살며시 남자의 머리를 내편으로 돌려본다. 살점만이 너덜너덜하게 골격에 붙어 있다. 뭉개어진 얼굴은 도시 누군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왠지 나는 그것이 요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또각거리는 소리. 또각 또각 똑. 뒤를 돌아본다. 신애가 붉은 하이힐을 거꾸로 쥐어들고 서 있다. 

“으악!”


나는 온몸에 식은땀을 주렁주렁 달고 깨어났다. 꿈이 생생했다.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 취재 노트를 뒤적여 본다. 제일 중요한 것들이 빠져 있었다. 요섭이 실종된 날 신애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리고 어째서 161번 버스에서 요섭을 보았다는 목격자는 저번에 부르지 않은 것인가? 신애에 대한 의심은 조금씩 커져 가고 있었다. 혼란스럽다. TV를 켠다. 뉴스에서는 최근의 베스트셀러 동향 따위를 얘기하고 있었다. 채널을 돌린다. 그러다 다시 뉴스쪽으로 채널을 옮긴다. 최근 몇 달간 베스트 셀러 1, 2위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시집과 산문집을 엮은 형식으로, 작가는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인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이 남자는 작품을 투고하고 실종이 되어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묘하게 이번 사건과 비슷했다. 나는 그 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연구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노트북을 켜 이런저런 도서 전문사이트들을 뒤적여 본다. 책은 4개월 전에 나왔다. 처음에는 판매실적이 저조하고,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의 책이었으나, 작가가 정신지체 장애인이며 실종되었다는 센세이셔널한 기사가 어느 신문 한 귀퉁이에 보도됨으로써 판매부수가 급상승하게 되고, 표지를 새로 꾸민 재판을 거쳐 베스트셀러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책을 출판한 출판사로 찾아가서, 원고를 가져온 것이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이며, 계약에 따라 돈을 받아간 사실을 알아냈다. (계약조건은 초판 500부를 자비 출판하고, 만약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경우 작가 인세 대신 ‘1억원’을 받는 것이었다. 당시 출판사측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코웃음을 치며 그러자고 승낙했던 모양이었다.)


출판사를 나온다. 하늘은 파랗다. 조금씩 봄이 오고 있었다. 나는 곧장 신애가 일한다는 고아원으로 향한다. 원장실로 가서는 이신애를 찾는다. 그런데 원장은 피곤한 모양인지 약간 졸린 낯빛으로 신애는 어제 일을 그만두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누가 가슴을 확 잡아끌어내리는 듯한 느낌. 


“저 이신애씨 11월 18일날 왔었나요? 남편 실종된 날에”
“왔었죠 그럼. 우리 이신애 선생님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으세요.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딱하죠 참.”
“혹시 그날 기록 같은 거 있으면 좀 볼 수 없을 까요?”
“아..예. 에… 여기 있네요.”


199X년 11월 18일. 신애는 평소보다 세시간이나 늦게 출근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10시에 출근을 해야 하거늘, 신애는 유독 그날만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한다며 1시가 되어서야 고아원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유독 요섭이 실종되었던 그 날에 고아원에 오지 않고 신애는 어디를 간 것이었을까, 정말 병원에 간 것이었을까?


신애를 만나서 다시 자초지종을 들어봐야만 했다. 바바리 코트를 흙 길에 끌며 비탈을 올랐다. 숨이 가빠왔다. 신애의 집 앞에는 여전히 노파가 의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퀭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노파. 다가간다. 


“저 할머님. 저기 버스에서 누가 최요섭씨를 봤다고 하던데. 혹시 누군지 아세요?”
“우리 영감이제.”
“아아…그러세요. 저 그럼 할아버님 좀 잠시 뵐 수 있을까요?”
“뒈졌어.”
“네?”
“아 고마 뒈졌다고 안 카나. 젊은 아가 벌씨 가는 귀가 묵었나?”


노파는 카랑카랑하게 소리를 지르더니, 카악하고 바닥에 가래를 뱉었다. 여전히 믿음이 잘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래도 침착하게 물었다. 


“그럼 할아버님이 본 게 언젠 줄 아세요?”
“알제.”
“그게 언제죠?”
“글마 집 나가삐고 난 바로 고 다암 날이였제. 우리 영감이 수파에 라면 사러 갔다가는 지나는 버스서 글마랑 똑 닮은 놈을 봤제. 아이지, 닮은 것도 아이고 똑 가였제. 그래 우리 영감이 그 가시네한테 안 일러줬나. 근데 그 여시가 밍기적 밍기적 찾아부지도 않고 안 저러고 있나.”
“바로 다음날이라고요? 확실한가요?”
“젊은 아가 속고만 살았나? 아 맞다 안카나.”


심증은 점차 확증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신애는 일부러 요섭이 집을 나가게끔 만든 것이다.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요섭이 아끼던 쥐를 죽이고, 그것을 문밖에다 버린다. 그리고 그 장면을 요섭이 어렴풋이 목격하게 하여, 요섭이 집 밖으로 나와보도록 유도를 한다.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간다. 요섭이 쥐를 찾다가 문이 열려 있음을 깨닫고 밖으로 나와본다. 쥐가 죽어 있다. 요섭이는 무서워서 신애를 찾으러 나선다. 숨어 있던 이신애는 요섭을 따라가서 요섭을 살해하고 쉽게 찾지 못할 곳에 버린다. 곧장 고아원을 가서 알리바이를 만든다. 집에 돌아와서 호들갑을 떨며 경찰에 신고를 한다. 몇일 동안 찾는 시늉을 한다. 출판사에 원고를 준다. 신문에 남편을 찾는 기사를 낸다. 요섭의 책이 판매부수가 늘어난다.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나를 고용한다. 자연스럽게 혐의가 풀리고 신애는 실종된 남편을 대신해 인세를 받는다. 


나의 이러한 추리대로라면 신애는 참으로 무서운 여자였다. 자기가 죽인 사람을 찾아달라고 하다니. 참으로 섬짓했다. 그렇다면 이신애는 도대체 요섭의 시체를 어디에 감춘 것일까. 한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흔해빠진 추리일까. 나는 조급하게 계단을 올라가 이신애의 집 현관문을 쾅쾅 두들긴다. 대꾸가 없다. 문을 열고 들이닥쳐 방문을 벌컥 열어재낀다. 텅빈방. 띠리링.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들었다.




3. 요섭,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서


요섭이는 신애가 집을 나가자마자 후다닥 미키를 찾았습니다. 미키야~ 미키야~. 그러나 좀체 미키의 찍찍거리는 아침인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요섭이는 훌쩍이기 시작합니다. 이내 유리알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쨍쨍쨍. 


겨울 같지 않게 따스한 햇발이 집안까지 걸어 들어옵니다. 요섭이는 문득 오늘 이른 아침 신애가 찰그락 소리가 나는 뭔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입에 침을 질질 흘리며 집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문은 열려 있네요. 눈물 콧물 침물이 쨍쨍이는 햇살에 휘황찬란 반짝입니다.


대문을 나서 오른 켠을 휙 쳐다보니 까만 비닐봉지가 놓여 있습니다. 요섭이는 꼭 새끼를 잃은 늑대 같아요. 비닐봉지를 짓뜯기 시작합니다. 벌건 음식 찌꺼기 국물이 튀기고, 쏟아지고 미키가 있습니다. 쇠창살 속에서 터진 붉은 몸뚱이로. 태양이 조금씩 내려 앉습니다. 이글이글. 


요섭이는 미키를 감옥 속에서 꺼냅니다. 손바닥에 빨간 것들이 피어납니다. 우에~ 요섭이의 달음질입니다. 비탈길까지 뛰어가더니 어느 나무 아래서 끼익 급제동이에요. 헐레벌떡 흙을 파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미키를 조심스레 넣고, 음정박자 꽝인 목소리로 ‘이제 가면 언제 오나~’를 여간 비통하게 부르는 것이 아니에요. 노래가 끝나자 또 헐레벌떡 흙을 다시 덮습니다. 침으로 빨래한 것 같은 옷에 흙 알갱이들이 더덕더덕 달라붙었네요. 요섭이는 엉엉 울며 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꺼내 푹 덮어쓰고는 오들오들 떱니다. 창 밖에는 붉은 태양이 쫓아와 집을 포위합니다. 티비 위에 장미꽃이 땀을 흘립니다. 더워요. 요섭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이불을 내팽개칩니다. 가지런하던 이불이 일그러집니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밖을 한참 치어다 보려니


“착한 요섭아! 요섭아! 우리 미니를 지켜줘!”


요섭의 심장 한 복판으로 미키의 음성이 뛰어듭니다. 으흥 알았어 미키. 요섭은 후다닥 목욕실로 달려가 흰 수건 하나를 꺼내어 목에 두르는 것이었습니다. 빠밤~~천사맨!! 빗자루 검을 집어 들고 곧장 집을 뛰쳐나갑니다. 그러자 푸른 하늘이, 하얀 햇살이 쏟아져 내립니다. 길가에 햇빛 조각들이 길게 누워 있어, 길이 노랗네요. 요섭이는 랄랄랄 팔을 크게 휘두르며 촐랑촐랑 길을 걸어 갑니다. 기나긴 모험의 시작. 요섭이는 마왕으로부터 아름다운 미니 공주를 구하지 않으면 안돼요.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서 떠나는 모험이에요. 


우선 비탈길 쪽의 성스러운 마나나무 아래 미키 정령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곤 자못 비장하게 비탈을 내려가는 것입니다. 몬스터들이 튀어 나올지 모르니 조심해야 해요. 요섭이는 미니공주의 행방을 알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닙니다. 바람에 실려온 낙엽에게 물었습니다. 


“낙엽아, 미니공주가 어딨는지 아니? 넌 바람에 실려 세상을 많이 돌아다녔잖아”
“몰라, 나는 이제 그만 쉬고 싶어. 나를 내려줘. 이 세상은 내게 너무 가혹해.”


요섭이는 맞아 떠도는 것은 힘들거야하며 낙엽을 살며시 쥐어 흙 길 위에 놓아 줍니다. 다음에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고 있는 개미에게 물었습니다.


“개미야, 미니공주 어딨는지 알지? 넌 열심히 걸어다니니까 알거야 그치? 우리 미니공주님은 고아원이라는 마왕성에 잡혀갔어.”
“글쎄, 열심히 사느라 그런 건 신경 쓸 수 없는 걸.”


부웅! 빵빵!! 갑자기 까만 자동차가 헐레벌떡 뛰어옵니다. 개미를 공격하려나봐요. 우리의 요섭이는 정의의 빗자루 검을 뽑아 듭니다.


“거기섯! 우리 개미군을 죽일 순 없다!”


끼익. 차가 급제동을 하며 멈춥니다. 요섭이 바로 코 앞이에요. 개미군은 고마워하며 후다닥 도망갑니다.


“이 씨팔 새끼!! 대가리 돌았냐! 죽고 싶어 환장해써!? 저리 꺼져!!”


선그라스를 낀 무투가형 인간이 욕설 마법을 시전합니다. 착한 요섭이는 움찔. 주춤하더니 이내 헤~~ 웃고는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입가에서 거품 단 눈물이 쪼로록. 보도블록 위를 통통 뛰어다니며 길을 갑니다. 낙엽이와 개미군 등을 밟지 않기 위해서에요. 길가의 평민들로부터 요섭이는 시선집중입니다. 평민들은 사실 요섭이를 바퀴벌레로 보고 있습니다. 요섭이만 봐도 끼약하며 도망가기 바쁘거든요. 침을 뱉는 사람도 간혹 있어요. 다들 이유 없이 싫어 하네요. 그래도 요섭이는 헤벌쭉 웃으며 깡총깡총 뜁니다. 


얼마쯤 왔을까요. 드디어 요섭이는 마왕성을 발견합니다. 마왕성은 지하에 있어요. 세 개의 구멍에서 까만 독수가 흘러나와요. 요섭이는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미니 공주가 그곳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착한 요섭용사님 도와주세요’ 마왕성 앞 마당 벌에서 마왕의 아이들이 방글방글 놀고 있습니다. 미니 공주와 공주의 아이들이 그 안에서 이리저리 쫓기고 있어요. 


“얘들이 더럽게 뭐하니!”


갑자기 마왕이 튀어나오더니 빗자루 검으로 미니공주와 공주의 아이들을 내려칩니다. 미니 공주는 그대로 기절. 요섭이 눈에 불이 확 달아오릅니다. 마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에비 드러라 하며 미니 공주를 독수 속으로 집어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우워어어”


요섭이는 미친 듯이 마왕성으로 돌격해가, 독수에 뛰어들어 미니공주를 구출해냅니다. 그리곤 미니공주를 내려놓고, 빗자루 검을 치켜 들고 마왕에게로 달려듭니다. 용자의 폭주공격이 시작 된 것이에요. 아이들이 놀라 우우 비켜섭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눈에 불을 켜고 요섭이는 미친 듯이 마왕을 내려칩니다. 

주거주거!!. 사랑스러운 것들을 헤치는 놈은 용서 못해. 하늘이 푸릅니다. 저 아래 마왕성에서는 고독한 용사가 마왕과 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는 직립보행하는 바퀴벌레입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바이러스를 퍼뜨려온 징그러운 바퀴벌레. 마왕성으로 마왕의 부하가 된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듭니다. 바람꽃 마냥 흙 먼지가 일어 푸른 하늘을 덮습니다. 개새끼, 미친 새끼 쳐죽어. 인간들이 요섭이를 아니 바퀴벌레 쳐 죽이려는 듯. 발길질. 주먹질. 강목. 돌멩이. 피. 


요섭이의 눈에는 기나긴 강이 펼쳐집니다. 그 강 위에 둥둥 떠서 내려가면 바다가 나옵니다.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고, 요섭이는 방글방글 거리며 가라 앉습니다. 미키도, 미니도, 아빠도, 엄마도, 신애도 그 물 속에서 방글방글. 쬐그만 물방울들이 수면 위로 올라갑니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올라갑니다. 요섭이의 숨이, 미키의 숨이, 신애의 숨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모든 이의 숨이 떠올라갑니다. 


밤이 되자 북극성 하나가 떠오릅니다. 요섭이는 버려진 하수구관 속에 숨어 오들오들입니다. 너무 추워요. 북극성도 추워요. 마왕 일당들은 따뜻한 곳에서 자고 있죠. 미니와 아이들은 죽었어요. 하지만 진짜 미니공주는 안 죽었어요. 신애가 보고 싶어요. 하지만 길 잃은 요섭이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강으로 가야해. 강으로. 모든 것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이제 그만 놀고 새로운 놀이를 시작해야지. 겨울이 지나가는 듯, 눈이 조금씩 녹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까매질수록 북극성은 더욱 반짝이고. 


다음날 요섭이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에서 신애를 발견하고는 달려갔습니다. 신애는 버스라는 것에 타고 있었어요. 요섭이 훌쩍 올라타버립니다. 하지만 신애는 없었어요. 요섭은 버스 제일 뒷좌석으로 가서 길죽하게 누워버립니다. 버스는 한강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신애가 거기서 기다려줄 거야. 요섭이는 그렇게 믿는 것이었습니다.



4. 공무도하가


나는 한강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애의 집으로 갑자기 요섭을 한강공원 근처에서 보았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끄느름하던 하늘에서는 결국 비가 내리 붓고 있었다. 비가 오는 까닭인지 도로에는 그다지 차가 많지 않았다. 시야가 젖어 든다. 서행을 하며 신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네 저 헌터입니다. 박요섭씨가 한강공원에 있다고 전화가 왔는데요. 아, 네 그럼 한강공원 수영장 쪽에서 뵙도록 하죠.”


한강 다리를 건너 한강공원 쪽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한 대의 차만이 섧게 비를 맞고 있었다. 감 빛깔의 마티즈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더니 이내 억수 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차의 뒷좌석을 뒤적거려 우산을 꺼냈다. 살 한 쪽 실밥이 튿어져 있었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깜짝 후두둑 소리가 났다. 칫. 신들이 단체로 오줌을 갈기는군. 주위를 둘러본다. 이신애가 아직 도착할리 없지. 강바람이 빗방울들을 싣고 와 옷에 뿌려댄다. 단 벌 바바리의 곤욕. 이렇게 바가지바가지로 퍼붓는 비가 내리는 날의 강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강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도 새도 떠나고, 배들은 정물마냥 정박해 있다. 빗줄기들이 강물 속으로 투신자살을 한다. 풍덩 소리가 들려올 법도 한데, 빗소리와 이따금 들려오는 차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실연 당한 젊은이가 강 복판으로 걸어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시간. 찬 냇바람이 계속 불어온다. 허나 풀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빗 바람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지도 몰랐다. 문득 흑백사진을 찍고 싶었다. 왠지 흑백사진의 배경으로 요섭이 떠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의 냄새가 풍겨오는 것도 같았다. 이신애는 과연 살인자일까? 지고지순한 사랑의 화신일까? 강물이 영혼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고 있었다. 


얼마동안을 그렇게 강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어느새 빗줄기가 약해지더니 주위의 모든 소리가 꺼져가는 화톳불처럼 사그러들었다. 고요한 시간에는 언제나 아내가 떠올랐다. 그래도 내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까지 마음 먹게 했던 사람. 하지만 사랑에는 처음도 끝도 없다는 게 정답이었다. 첫사랑이란 것도 어차피 기억의 조작에 다름 아니고, 마지막 사랑도 죽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겨울이면 비 온 뒤에는 조금 으슬으슬 해지기 마련인데, 왠지 조금 푸근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의 힘일까. 


손수건을 꺼내 방 둑에 깔아 퍼더버리고 앉았다. 이신애는 많이 늦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살인자인걸까? 그래서 내가 낌새를 차린 걸 알고 이미 멀리 달아나버린 게 아닐까? 이신애라는 여자는 젊고 예쁜 여자다. 요섭 같은 장애인이라면 분명 이것저것 많은 보험에 들었을 것이다. 만약 요섭을 어차피 못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300만원쯤 걸어봤자 손해 될 건 없을 것이다. 시체를 찾아도 돈은 준다고 했으나, 요즘 1, 2억 하는 생명 보험금에서 300만원쯤 떼어 준대도 별 일은 아닐 테지. 어쩌면 이신애가 내게 부탁한 것은 자기 대신 시체를 처리해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돌을 집어 강물에 던졌다. 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대학 졸업 후 처음 듣는 소리. 자연이란 녀석들은 어찌나 인심이 후한지 이렇게 화풀이를 해도 겨우 ‘퐁’ 할뿐이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게. 모처럼 사치를 부려 하늘을 올려다보는 수고도 해보았다. 참 많다. 별. 서울 하늘에 이렇게 별이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뉴스나 신문따위에서 도심의 별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듣고 보고, 아예 밤하늘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나였다. 죽었던 별이 다시 살아난 것일까. 멀쩡히 살아있는 별을 죽였던 것일까. 


“저..저기”


청량한 겨울바람 같은 여자의 목소리. 이신애였다. 가뜩이나 흰 얼굴이 달빛에 반사되는 통에 무척 창백해보여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이신애는 자기도 손수건을 꺼내 내 옆에 조금 간격을 두어 깔고는 살짝 앉았다. 


“없네요…”
“네?”
“아… 죄송해요. 먼저 와서 여기저기 찾아보느라…”
“아아. 네에”


강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적막했다. 그녀의 말을 믿어야할까.


“저어 죄송한 질문이지만 남편 사랑하세요?”
“네?”
이신애는 조금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사랑…해요. 진심으로”
“에에…”


진실일까. 신애의 표정과 목소리는 다분히 진실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무언가를 믿게 되면 한없이 맹신하게 되듯. 의심도 한 번 뿌리를 내리면 끝도 없이 뻗어간다. 그래서 의심의 뿌리가 닿은 토양 위에서는 그 어떤 사랑의 씨앗도 자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세상에 사랑따윈 없죠. 모조리 죽어버렸죠.”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신애는 내 쪽을 이윽이 바라본다. 달 빛은 흰 얼굴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내려앉는 듯 그녀의 얼굴에는 달 빛이 하나 가득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죠. 근데 그 사람은 나보단 내 돈을 더 좋아했나봐요.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사랑해서 결혼했죠. 풋. 어렸어요 참. 사랑하면 다 될 줄 알았더니. 그 사람 지금 위자료만 챙겨서 날 떠났죠.”


이신애는 가만히 강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살풋 웃더니 말을 시작했다.


“저도 처음에 결혼할 땐 행복했어요. 제가 원해서 부모님 반대도 다 어기고 한 거니까요. 근데 조금 살아보니 끔찍하더라구요.몸 성치 못한 사람과 산다는 거. 사랑도 식고… 한 번은 너무 힘들어서 같이 죽으려고도 했어요. 근데 말이죠.. 근데… 그 사람 웃는 거 보면 그렇게 못해요. 제가 이번에 남편에게 몹쓸 짓을 한 거 같아요. 딴에는 그 사람을 위한 거였는데. 정말 그이에게 필요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사람은 종종 끔찍한 오해를 하고 끔찍한 실수를 하는 것 같아요.”


이신애는 마치 오르페우스처럼 강물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젊은 날 황동규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읽으며 나는 사랑을 기다리는 자세에 대해 오래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난 한 여인을 오래 짝사랑하고 있었고, 몰래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인은 내게 이제 상관없는 사람으로 지내자고도 했고, 내가 준 것은 무엇이든 소중히 기억하겠다고도 했던 사람이었다. 사랑에 빠진 난 후자의 말을 더 믿었고, 오래 기다렸다. 그 사이에 그 여인은 몇 차례의 사랑을 했다. 나는 기다림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 세상에서 진심은 어디에도 가닿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그 여인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돈을 조금 빌려 줄 수 없겠냐고, 그 이후로 여인을 계속 만났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그녀가 돈 때문에 내게 돌아왔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 여인이 바로 아내였다. 


“이신애씨.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아시죠? 거기서 말하는 기다림의 자세가 뭘 꺼 같아요?”


이신애는 피식 웃더니 자신의 가슴쪽을 가리키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 속에 믿음의 뿌리를 푹 박아두는 거요. 눈보라에도 흔들리지 않게.”


호젓한 겨울 밤 공기와 강물결 소리에 취해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나. 겨울비가 잦아드는 것처럼 피식 웃으며 망연히 강물 저편을 바라보는 신애. 우리는 모두 소중한 것을 놓아버리고 서럽게 우는 백수광부의 아내였다. 마치 연극 무대가 암전되고 주인공의 독백이나 새로운 사건이 시작될 것인 양 사위스럽고 휘휘한 순간. 비온 후 몽몽한 강가의 시간은 슬렌탄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 저…저기! 저기!”


갑자기 신애가 강 복판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물 위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 했다. 희미하게 촥촥 물결을 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누구를 부르는 듯한 사람 목소리도 들려오는 듯 했다. 요…요섭?!


“요섭씨…? 요섭씨이!” 


아, 요섭은 마치 강렬한 회귀 본능을 지닌 은어처럼 강 저편에서 이쪽으로 헤엄쳐오고 있었다. 신애야 신애야하며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신애의 목소리도 그에 질세라 거칠어졌다. 찢어발기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저승에 대고 지르는 것 같았다. 요섭은 지쳤는지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해오지 못했다. 그새 빗방울이 다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신애는 차마 물에 뛰어들지는 못하겠는지 연신 소리만 질러댄다. 아무래도 나라도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허나 그 사납게 요동치는 강물 속에 뛰어들어 살아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요섭은 팔을 젓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이내 물 위에서 그냥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으헝~~!!요섭씨이!!!거기 그대로 서요!!!”
철렁. 결국 신애가 물에 뛰어든다. 빗줄기가 세어진다. 


‘나 사실 당신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였어요. 구실이 필요해서 돈 빌려달라고 한거구’ 


아내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왔다. 왜 그때는 그 말이 거짓 같았을까. 덜컹 강물로 뛰어든다. 신애는 뒤집어진 거북처럼 발버둥을 치지만 물살 때문에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서둘러 신애의 머리채를 잡고 물 밖으로 끄집어낸다.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눈이 벌개져서 발광을 해댄다. 그러나 물 밖으로 놓여나자마자 실신해버리는 것이었다. 이제 요섭을 끄집어 내야했다. 비가 계속 머리통을 때려왔다. 요섭의 몸은 점점 물 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서둘러 물속으로 다시 뛰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닿으려고 헤엄쳐도 팔을 뻗어 보아도, 그에게는 이르지 못했다. 잠깐 뒷덜미를 잡았는가 해도 요섭은 마치 실체가 없는 안개처럼 아득히 수면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결국 물 속으로 가라앉아갔다. 따라서 물 속으로 들어갔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희미한 무언가가 자꾸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알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와 함께 내 머리 속으로 희뿌연 안개가 깔리는 듯 하더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누구를 부르는 듯한 한 여자의 절규와 풍덩 소리만이 옅게 들려왔다. 


등이 시리도록 푸른 돌고래 위에 요섭은 앉아 있다. 주위는 온통 잿빛 안개. 푸른 등의 돌고래는 막막한 안개바다를 가로질러 잿빛 안개의 벽을 향해 간다. 물결은 가고 오고, 물결에 으쓱거리는 요섭의 뒷모습은 왠지 즐거워 보인다. 가위에 눌리는 듯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멍하니 돌고래와 요섭을 응시하는데, 저 멀리 태양이 솟아오른다. 눈 앞이 하얘진다. 주홍빛 햇살은 잿빛 안개를 걷어치운다. 까만 우주. 시력을 회복했을 때 내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고, 아래로는 별의 바다가 귀뚜라미의 노래를 부르며 귀똘귀똘 흐른다. 돌고래와 요섭의, 요섭의 어깨에 앉은 몇 마리의 쥐들의, 심장고동소리가 쿵쿵 우주를 흔들며 느껴져 온다. 그리고 푸른 등의 돌고래는 태양을 향해 튀어 오르는 것이다. 별 방울들이 쪼로롱 꼬리를 그리며 쏟아진다. 태양을 앞에 둔 돌고래는 어느 새 여인의 실루엣으로 변화한다. 신애, 아내…나는 순간 모든 떠나간 것이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어느 병원 침대에서였다. 와락 밀려드는 한기 때문에 몸을 옹송그리며 창문쪽을 보니 흰 눈이 내리고 있었고, 아내가 서 있었다. 
 
 

0. 달력과 결혼기념사진이 걸려 있던 벽 뒤의 다락방에서 발견된 요섭의 낙서들


우리 신애가 그 강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애가 앞으로 나는 이 방에서 자야한다고 했다. 이제 겨우 내 책을 냈는데, 내가 유명해져서 밖에 나오면 신애가 힘들다고 했다. 나가지 말아야지. 

신애는 요즘 바쁘다. 자주자주 경찰서엘 가야한단다. 누굴 찾을 사람이 있단다. 여기가 숨막히다고 했더니 참으라고 했다. 누구 아는 사람 목소리가 들려도 나오거나 소리를 내면 안된다고도 했다. 신애가 무섭다 요즘. 그래도 엊그제는 떡국을 해줬다. 

신애가 점점 예뻐진다. 신애는 예쁘다. 오늘은 밤에 신애랑 벽지를 새로 발랐다. 예쁘다 벽지도. 여기도 벽지를 발라주었으면……

요즘 밖에서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신애는 내 책이 유명해져서 신문에도 실리는 바람에 내 팬들이 오는 거라고 했다 히히. 하지만 나는 왜 내가 내 팬들과 만나면 안되고 숨어 있어야 하는 지 모르겠다. 신애는 조금만 더 참으라고 했다. 조금 더 참으면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나도 밖에 나갈 수 있단다. 요즘에는 밤에도 나를 못나오게 한다. 빨리 나가고 싶다. 

보험사 직원이라는 남자가 찾아왔었다. 신애에게 내가 죽었을 경우에는 무지무지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평생을 써도 남는단다. 나는 그 얘기를 분명 들었다. 하지만 신애는 잡상인이라고만 했다. 신애는 이제 거짓말만 한다. 신애가 이대로 날 죽이려는 걸까? 

나는 많이 생각했다. 신애를 위해 죽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가 찾아와 다시 다락방에 숨었다. 오늘은 또 웬 남자가 왔다. 신애는 그 남자에게 우리 지난 얘기를 한 시간도 넘게 했다. 신애가 정상적인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벽 뒤에 사는 괴물이다. 

방의 물건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이사를 가는 걸까? 어쩌면 신애는 여기 날 버려두고 혼자 가버릴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니 여기 문이 열려 있다. 나는 멀리 가서 죽어야겠다 이만. 그래 그때 강으로 가자.

신애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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