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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文


프랑스 인권선언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우리사회에는 우리가 인식 못하는 그늘진 곳에서 넉넉한 다수의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릴 적 저는 달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언젠가 TV에서 그런 달동네의 집들이 강제로 깡그리 헐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그 이후 3년간 천막에서 살았고, 이제는 소식이 끊겨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라지만 한 개인의 삶을, 한 가족의 평화를 그렇게 무참히 깨뜨려도 되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에서 저는 부족한 솜씨나마 이 글을 씁니다.

 






타인의 세상






 

흔적


그날 따라 날이 유난히도 찼다. 귓가에 감각이 마비 된지는 오래였고 바람도 날을 세우고 매섭게 두 뺨을 할퀴고 지나는 것이었다. 나는 세 명의 사내들과 함께 몸을 옹그린 채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의 끝자락을 간간하게 움켜쥐고 있던 가녀린 이파리 몇이 비탈길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마지막 남은 가을의 흔적들. 철거용역. 출감 이후 1년만의 일거리. 그 동안 일자리를 얻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번번이 허사였다. 하긴 별을 몇 개씩이나 달고 있는 놈을 누가 쓰려고 하겠는가.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다. 직업소개소를 전전하거나 생활정보지 따위를 뒤적이다가 다 집어치우고 싶은 기분이 들 때면 내 귓전에 이명처럼 살아오던 애잔한 목소리, 어디서 만났는지조차 모를 여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 목소린 리피트 버튼을 눌러놓은 테잎 마냥 민아 울지마, 울지마를 되뇌곤 했었다. 마치 내게 애원하듯이. 헌데 철거용역 일을 맡게 된 뒤부터는 그 목소리를 좀체 들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철거용역 일이 내 도려내어진 기억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저기 아닌가? 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짤막한 키에 비해 썩 균형 잡힌 몸매, 중년의 상징처럼 이마를 가로지르고 있는 네 가닥의 주름. 숱한 삶의 하중을 견디다 못해 움푹 들어간 눈. 그에게선 야릇한 중후함이 풍겨져 나왔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여덟 개의 판자집들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양 다닥다닥 서로 몸을 맞대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니 나무판자를 대충 잇대어 못을 박아 놓은 집에는 큼지막한 유리창 하나가 눈처럼 붙박여 있고 슬레이트를 겹겹이 쌓아 만든 지붕 위엔 구멍 따위를 나무판자로 막아놓고 돌을 올려놓은 듯한 것들이 보였다. 벽에는 바보, 얼래리 꼴래리 같은 아이들의 낙서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마을에는 이상스레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호젓한 바람만이 귓전을 베고, 황량한 마을의 바닥을 쓱 핥고 지나갔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흙먼지와 휴지조각들이 한번 뒤척였다.


아무도 없나? 중년의 사내가 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대답이 없다. 꼬리가 반쯤 잘려 나간 생쥐가 놀라 찍하고 지나갔을 뿐, 마을은 다시 정적에 덮였다. 나는 무심코 낙서께로 눈길을 던졌다.'철거요역 아저씨덜 시러요!’삐뚤빼뚤 제 맘대로 너즈러진 글씨.‘철거용역’이란 말이 무언지나 아는지 용케도 느낌표까지 찍어 놓았다. 것도 빨간색 크레용으로…. 퇫, 시작하죠.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해머를 그러쥐었다. 백팔십 정도는 되어 뵈는 훤칠한 키. 바른쪽 볼에 칼에 베인 흉터가 사선으로 길쭉이 늘어져 있는 걸 보니 왕년에 한가닥 한 녀석인가 보았다. 다른 사내들도 각자의 장비를 손에 쥐었다. 허나 나는 여전히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적요. 공허함 속에 무언가 감춰두고 있을 듯한 이 깊은 적요. 내겐 이 적요가 어쩐지 낯익은 느낌이었다.


한 소년이 연탄 불 꺼진 방, 창가에 코를 맞대고 오롯이 앉아있다. 제 어미라도 기다리는 듯이. 소년의 어미는 오늘이 월급날이니 소년이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축구공을 사오겠노라고 장담을 했던 것이다. 밖에선 황량한 바람이 거리를 할퀴고, 허름한 외투를 입은 마을 아저씨들은 손에손에 무언가를 하나씩 거머쥐고 총총걸음으로 분주히 움직인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걸까? 저녁 아홉 시가 다 되어 가는 데도 하늘은 까맣지 않고 회색 빛이다. 회색 빛 먹구름이 연막처럼 하늘에 잔뜩 깔려있는 것이다. 문득, 야릇한 공포가 소년의 코끝을 시리게 한다. 소년은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제 어미라도 나타나지 않으면 그대로 울어 젖힐 기세다. 그때 미리 짠것처럼 끼이익 하는 애달픈 여음을 남기며 소년의 어미가 문을 밀고 들어온다. 웬일인지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다. 오솔한 바람에 제 멋대로 헝클어지는 어미의 머리카락이 회색 빛 풍경과 함께 묻어난다. 소년의 어미는 소년을 향해 애틋한 미소를 흘리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무너져 버린다. 소년은 깜짝 놀라 엄마하며 제 어미에게로 달려간다. 가까이서 보니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고, 어깨 부위에 퍼렇게 심한 멍이 들어 있다. 누구에게 얻어맞기라도 한 듯이….

 

이봐, 뭐해? 20대 중반의 사내가 퉁명스레 말했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시로 팔을 한번 슬쩍 들어올리고 해머를 쥐어들었다. 하민. 사극에서나 튀어나오는 산적처럼 지저분하게 수염을 기르고 있는 남자가 내게 말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나를 잘 안다는 듯이 행동했었다. 열세살의 나는 어느 이름 모를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 낯선 곳에서 깨어난 뒤 사흘이 넘도록 창 밖만 바라보았던 것 같다. 창 밖에선 눈이 나리고 하얀 벙어리 장갑을 낀 여자애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도로변으로 몇 무리의 차들이 저쪽에서 나타났다간 휑하니 사라져 버리곤 했다. 이따금씩 병약한 유리창을 뚫고 이제 갓 만난 듯한 연인들의 자지러질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언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왜 여기 있는지. 그 산적 같은 남자는 아내와 딸로 여겨지는 이들과 떠난 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저를 모르겠냐며 눈물을 흘렸던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장례식을 잘 치렀다고 하기도 한 것 같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어떤 고아원으로 갔었다. 까만 수녀 복을 입은 늙은 여인의 손에 이끌려. 낡아서 삐걱대는 시소가 있고, 아름드리 느티나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 그네가 있던 곳. 그곳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아득하지만 그리 불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허나 그곳과는 생활한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아 이별했다. 자꾸만 꿈속에 나타나 무슨 말인가를 흩 뿌려대는 어떤 여인의 목소리. 그 목소리의 정체가 무언지 알고 싶어서, 산적 같던 남자를 만나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곳을 빠져 나왔던 것이다. 다행스레 그가 생각나거든 찾아오라고 남겨준 주소가 있었다. 고아원을 나와 그 곳을 찾아갔었다. 그러나 거기엔 웬 백화점 하나가 떡 하니 들어서 있었다. 혹시 그 곳에서 일하나 싶어 물어 봤더니, 그 산적 같은 사람은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백화점 공사 시작 때부터 공사현장 앞에 텐트를 쳐 놓고 집을 내놓으라며 농성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 달 전인가 백화점 완공과 동시에 그의 아내와 딸이 어디론가 훌쩍 사라졌고, 그 뒤 그 사람은 술로 날을 지새우다가 어느 날 아침에 백화점 앞 도로에서 머리가 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그후의 내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선 나조차도 아스라하다. 구걸을 하고, 소매치기를 하고, 담을 넘고 그런 일로 감옥이란 곳도 몇 번 오갔던 것 같다. 나는 내 존재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기에 내 삶이란 것도 결국 타인의 삶처럼 여겨졌다. 그건 조금은 내 삶이란 것에 대해 미련을 갖게된 요즘도 크게 변하진 않은 것 같다.


악! 20대 중반의 사내가 느닷없이 비명을 질렀다. 나와 사내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무슨 일인지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그의 손가락 사이로 빨간 액체 같은 게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피였다. 사내들은 들고있던 해머를 팽개치고 그의 주위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어디선가 굵직굵직한 돌멩이들이 쉭쉭 소리를 지르며 날아왔다. 얼마 전까지 시체 같던 마을이 사내들의 똑똑 부러지는 비명소리에 좀비처럼 어슬어슬 살아나기 시작했다. 나쁜 철거요역! 저리가! 오지마! 벽 옆에 서서 사내들의 행동을 무심히 쳐다보고 있던 내가 그 앳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곳을 향해 눈길을 주었을 때 눈에 비친 것은 조그만 꼬마들이었다. 한 일고여덟쯤 되어 뵈는 꼬마들. 그런 쬐그만 꼬마들이 적의로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는 돌을 던져대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윽고 내 쪽으로도 돌을 던져댔다. 돌은 쉴 새 없이 날아온다. 돌멩이 하나가 비수처럼 날을 드리우고 나를 과녁 삼아 날아온다. 피할 새가 없다. 턱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아찔해왔다. 이마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나와 눈으로 파고들었다. 눈앞에 피로 벌겋게 얼룩진 마을의 모습이 아른댄다. 아른아른 춤추는 진홍빛. 슬렌탄도. 빛이 점점 잦아드는 듯하다. 아니, 라피다멘테다. 갑자기 붉은빛이 화라락 번진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그 속으로 불타는 마을의 영상이 어릿어릿 스쳐 지난다.

 

소년은 어미를 방안에 눕힌다. 이불을 끌어다 어미의 몸을 덮는다. 슴벅거리는 희미한 전등불 아래 소년은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어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러다 어떤 야릇한 기운을 느꼈는지. 엄마, 어…엄마아. 소년의 목소리에 조금씩 물기가 스민다. 소년은 제 몸 속의 떨림을 감당 못하기라도 하는 듯 얼음덩이 같은 어미의 몸을 흔들어댄다. 평온한 표정으로 굳어버린 어미의 얼굴 위로 짙은 슬픔이 배인 물방울 하나가 툭 하고 투박스레 떨어진다. 툭툭툭. 어느 새 어미의 얼굴 위로 수많은 물방울들이 골을 이뤄 어미의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제는 소년이 우는 건지 어미가 우는 건지 분간조차 가지 않는다. 문득 주위가 점점 따스해 지는 듯 하다. 소년은 문 쪽을 한번 치어다 본다. 문에 박혀있는 모자이크 유리창 너머로 귤빛 노을인 듯 물먹은 어떠한 빛이 아련히 너울진다. 물먹은 빛은 광신도처럼 팔을 벌리고 춤을 춘다. 무언가 커다란 물결이 소년의 삶을 암전 시키기라도 할 것 마냥 저편에서 너울거리고 있는 것이다.


불야아∼! 어느 이웃 아주머니의 숨 넘어갈 듯한 절규와 거의 동시에 옆집 순옥이네 털보 아저씨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털보 아저씨의 큰 몸 뒤로는 얼마 전까지의 어슴저녁의 회색 빛 풍경은 싹 걷혀 버리고 이글대는 불꽃의 축제가 미친 듯이 벌어지고 있다. 소년은 몸을 잔뜩 옹그리며 제 어미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는다. 그리곤 어미의 얼음장같은 손을 꼬옥 감싸쥔다. 털보아저씨는 어미를 한번 살펴보더니 소년에게 어서 등에 업히라고 한다. 소년은 그리하고 싶지마는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저 털보아저씨의 넓적한 등에 엄마를 뉘면 되는데, 뉘면 되는데…. 어서어서 하고 외쳐대는 털보아저씨의 위압적인 목소리가 소년을 되려 꽁꽁 묶는다. 밖에선 순옥이가 아빠 아빠하고 울부짖는다. 뭐하고 있어! 바보자식! 불길이 점점 더 세어진다. 어지럽다. 소년은 까무룩 쓰러지고 만다. 민아! 정신차려! 하는 털보 아저씨의 희미한 목소리….

 



얼어붙은 방


정신을 차렸을 땐 하얀 형광등 불빛이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옆으로 틀어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 후하고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20대 중반의 사내였다. 정신 드나 이제? 그가 거만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긴 어디? 여관. 여관? 쫓겨났어. 그 촌마을 버러지 놈들한테. 아주 중무장을 하고 있더군. 쳇, 쓰레기 같은 것들이. 그러면서 그는 붕대를 친친 동여맨 머리로 손을 뻗어 상처를 더듬으며 이를 악물었다. 애들은? 그게 첨엔 잡아서 쪼금만 혼내 줄랬는데, 걔들이 팔을 물어뜯구 도망가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열 받을 만 하죠. 지금껏 잠자코 있던 내 또래의 사내가 말을 받았다. 그는 외모가 곱살한데다가 목소리까지 부드럽고 가녀려서 이미지상 철거용역보다는 미용실 미스터 리 따위가 차라리 어울릴 듯 했다. 그래서 걔들을 쫓아갔는데, 아, 그게 함정이더라구요.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손에 잽히는 대루 집어던지는데, 와…무섭데요. 이 팔에 피멍든 거 보이죠. 웬 아줌마한테 이따만한 프라이팬으로 맞아서 이래요. 그래서 뭐 할 수없이 후퇴했죠. 당신은 저기 저 아저씨가 업구 왔어요. 그는 두서없는 말을 흥분해서는 좔좔 쏟아내는 것이었다. 특히 프라이팬 얘기가 나올 때는 두 팔로 과장되게 큰 원을 그리기까지 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대충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갑자기 이마가 쓰라렸다. 그러고 보니 이마 쪽에 붕대 같은 것이 만져졌다. 머리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나저나, 자네들 어떡할 거지? 자리에서 일어나 앉자마자 나를 업고 왔다는 그 중년의 사내가 무겁게 말을 내려놓았다. 그와 눈이 마주쳐서 고맙다는 표시로 고개를 한번 꾸벅 숙였다. 그는 뭘…하듯 슬쩍 제법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곤 우리께를 한번 둘러보더니 세월이 할퀴고 스쳐간 이마의 몇 가닥 주름을 엄숙하게 일그러뜨렸다. 사장은 내일까지 일을 마무리 지으라 했네. 땅 지주가 내일까지 해결 못하면 계약을 파기하겠다 했다는 군. 그리되면 우린 돈 한 푼 못 받고 다시 길바닥을 전전하게 될 걸세….


 안돼요! 절대! 그건. 고양이처럼 얌전을 빼며 중년사내의 말을 듣고 있던 내 또래의 사내가 발광하듯 말을 토해냈다. 갑자기 터져 나온 말에 저도 놀랐는지 그의 눈은 밤송이만 해져있다. 나와 사내들은 차마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다음 말이 이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저… 사실 동생이 병원에서 죽어가구 있어요. 몇 달 전만 해두 병 문안 가면 오빠 왔어 하구 어린애 마냥 배시시 웃군 했는데… 이주일 전인가 찾아가니 병실을 옮겼대요. 보호자하구 연락이 안돼서 임의로 옮겼다구하더군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안보인데요. 앞이… 앞이 새까매서 무서워 죽겠데요. 내 손을 꼭 잡구 오빠 가지마 하구 울었었는데… 몇 일 전엔 찾아가니 누구냐구 하더군요. 내가 누구녜요. 그러면서 그 뼈대만 남은 몸을 자꾸만 침대 속으로 묻는 거예요. 무섭다구… 당신은 누구냐구… 의사는 어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왜 자꾸 미루녜요… 이번 일이 제대루 되야 수술빌 댈 수 있어요. 내 동생, 불쌍한 내 동생 살려야 한다구요! 안돼요…안돼. 절대 실패해선 안돼요. 이번 일….

그의 눈에 문득 냉랭한 기운이 스쳤다. 먹이를 발견한 맹수의 눈처럼 한없이 차갑고 살기로 그득 찬 눈. 저도 솟구치는 감정이 있는지 주먹을 꽉 쥐고는 형광등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리는 중년의 사내. 의외로 순정파여서 그의 말에 흔들렸는지 애꿎은 장판을 꾹꾹 누르며 잠자코 있는 20대 중반의 사내. 그리고 찬물을 엎지른 듯 방안 가득 들어차는 괴괴함.

 


내 집! 내 집! 아이고∼! 아이고∼! 이 개새끼들아! 뭐 잘못한 게 있다고! 우리가! 우리가 니들처럼 땅 투길 했냐, 남 등을 쳐 먹었냐! 엉! 이 개만도 못한 새끼들 니들도 인간이냐! 어지러이 뒤섞여 엎질러지는 한 맺힌 절규들. 소년은 털보 아저씨의 등에서 눈을 뜬다. 꿈이야. 소년은 태어나서 가장 황홀한 꿈을 꾸는 것이리라. 괄괄한 불꽃의 무희. 배경 음악 없이도 불꽃의 무희는 형형히 춤을 추는 구나. 산들바람에 몸을 내 맡긴 채 너울너울 팔을 흔드는 몸짓. 죽은 아빠가 만들어 주었던 소년의 나무 썰매. 무희는 그 게 탐 났나 보다. 그 위에서 아늘거리는 걸 보니. 그 게 탐 났으면 나한테 말하지. 한번 태워줄 수도 있는데. 엄마…어딨어요. 불꽃의 무희들은 이제 고상한 발레에 흥미를 잃고, 이글이글대며 격렬하게 브레이크 댄스를 춘다. 멋있다. 무희들이 떼지어 누군가를 둘러싼다. 누구지? 그들은 그 누군가의 몸 위에서 한 뭉텅이가 된다. 회오리바람 마냥 불꽃이 어지러이 맴을 돌며 까만 하늘로 치솟는다. 누군가가 새까만 누더기 옷을 입고 까만 하늘에 내동댕이쳐진다. 갑자기 장면이 암전 된다. 막은 다시 오르지 않고 무언가 들려온다. 토박거리는 발소리. 귀에 익은 발소리가 토박 토박 토박 똑. 엄마 어디 가요. 침묵. 엄마, 내 축구공은요. 민아, 울지마 울지마…. 짙은 아쉬움과 그리움에 젖은 어미의 음성이 이명처럼 텅 빈 공간 속을 부유한다. 가지마 하고 울부짖고 싶다. 돌아오라고, 엄마, 무서워 죽겠다고 외치고 싶은데…목구멍 속을 떠도는 목소리. 동글동글한 무언가가 불꽃을 껴안고 쪼르르 흘러나오더니 그 자리에 폭삭 무너져 검은 재가 되어버린다. 바람이 불어와 재들을 까만 밤하늘로 안내한다. 민아, 악몽은 빨리 잊어 버리는 게 좋아. 언젠가 엄마가 해준 말. 소년은 꿈을 꾸는 것이다….

 


불을 지르는 거예요. 내 또래의 사내가 적막을 자르며 차갑게 말을 던졌다.‘불’이라는 그의 발음에 모두 이해하기 쉽게 말해달라는 표정으로 멀뚱히 그를 바라본다. 느닷없이 그가 발딱 일어섰다. 속으로 얼마나 비장한 각오를 하는지 꽉 움켜쥔 주먹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다. 혼자 가겠어요, 그럼. 아무도 말이 없다. 그는 정말로 마을에 불을 지를 셈인지 훽 돌아서서는 철컥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문고리를 비틀고 문을 열었다. 이봐! 침착하게. 자네 혼자 뭘 어쩌겠다는 건가? 그는 중년사내의 젖은 외침소리에 잠시 멈칫하더니 방안으로 들어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급하긴 나도 마찬가지네. 난 몇 달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 당했다네.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하니 책상이 밖에 나와 있더군. 할 자신 있음 게서 일해보란 거지. 그날로 사푤 던지고 나왔어. 허허,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헌데 요즘 다른 직장 구하기 정말 힘들더군. 가는 곳마다 퇴짜야. 조금 있음 아들녀석이 대학에 들어간다네. 이 못난 지 애비하곤 다르게 공부를 참 잘해. 기특한 녀석야. 근데 입학금 마련 못하면 모두 물거품이야. 걔의 꿈도 내 꿈도… 그럼, 어쩌자는 거죠? 20대 중반의 사내가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래 봤자 별다른 수가 없지 않느냐는 투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무슨 다른 수를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 또래의 사내의 말대로 불을 지른다면 그 뒤처리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누군가 한 명이 방화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입막음용으로 연행되어야만 일이 무사히 끝날 것이다. 하지만 누가….

유치하군. 누가 그런 싸구려 인정 놀음에 목숨을 걸지? 이 일. 난 그만 두겠어. 생각해보니 위험 부담에 비해 보수도 적고 더군다나 이름도 모르는 남을 위해 희생해야할 필요 따윈 없다고 봐. 내가 한창 클라이막스에 다다르고 있는 화제를 집어 끌어내리듯 시니컬하게 내 뱉으며 일어섰다. 뭐야?! 이 새끼! 열심히 입을 삐죽거리고 있던 20대 중반의 사내가 분풀이 상대로 너 잘 만났다는 듯 대뜸 내 멱살을 움켜쥐며 욕을 퍼부었다. 그의 왕방울만 해진 충혈 된 눈.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면 그대로 내려칠 기세다. 겉만 번지르르한 놈. 이 새끼가! 퍽. 입에서 낱말들이 튀어나오기가 무섭게 20대 중반의 사내가 내 안면을 후려갈겼다. 방바닥으로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는 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그럼, 당신이 할래? 나는 입가에 피를 닦고 일어서며 씩 웃었다. 마치 악마처럼. 20대중반의 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어.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는 게 좋아. 어차피 당신들도 당신들 인생이 제일 소중한 거 아냐?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허공에다 대고 말을 했다. 존재하는 것에 상대성은 없다. 존재는 그 자체로 가장 귀중한 것이다. 무엇에게 타인의 존재를 침해할 권한이 주어졌는가. 나는 문을 열고 정적에 둘러 쌓여 얼어붙은 방을 쓸쓸히 빠져나간다.

 


화성(火星)


어둠이 내린 비탈길의 고요 속을 오른다. 동그란 보름달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 들려올 듯하고 도시의 소음이 잠든 비탈길 위엔 애잔한 귀또리의 울음과 서로 몸을 비비는 풀들의 처량한 사그락 소리만이 소란하다. 산들바람이 얄팍한 작업복을 한 두 번 매만지더니 이내 흥미를 잃고 떠난다. 불이 번지기 좋은 날씨다. 마을은 깜깜하다. 휘발유통의 뚜껑을 연다. 공공사업에 협조를 안한 주민들에게도 잘못은 있다. 무고하게 희생되는 것만은 아니다. 넉넉한 다수를 위해서라면 이 사회에서는 가난도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다수를 위한 일이다. 그리고, 또 몇 사람의 소중한 희망을 지키기 위한 일이다. 옳은 일이다. 휘발유통을 들고 기름을 뿌리기 시작한다. 벽과 지붕 등지에서 촥촥 소리만 나지막이 들려온다. 이제 한 집만 더 뿌리면….

갑자기 마지막 집에 전등불이 번쩍 들어온다. 서둘러 근처 나무 뒤로 숨는다. 끼이이하는 애달픈 문소리. 웬 꼬마 하나가 나오더니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무언가 눈치챘나. 아니다. 아이는 문에 무언가를 붙이는 듯 하더니 그냥 집으로 들어간다. 다시 마지막 집에 다가간다. 이제 끝이다. 기름을 벽에 뿌리고 무심코 문 쪽을 본다. 하얀 종이 같은 것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방금 꼬마가 붙여 놓은 것. 잘 뵈지 않는다. 라이터 불을 켠다.


철거요역아저씨께


아저씨, 엄마가 많이 아파요. 그래서 우리집 이사 못가요. 또 땅주인이라는 사람이 원래 자기땅이었다고 돈도 안준대요. 그냥 나가래요. 내가 돈 없어두 나가자구, 엄마 매일 철거요역 아저씨들이랑 싸우다가 멍들어 오는 거 싫다구 해두 이사 안간대요. 이집은 아빠하구에 추억이 깃든 집이래요. 내가 태어나기두 전에 아빠가 지은 거라구, 진짜 우리집이라구 떠날 수없대요. 아저씨, 우리 이사 안가면 안돼요? 나 착한 애예요. 지금까지 엄마말두 잘 듣구 나쁜짓두 요전에 연탄깬거 말군 안했어요. 믿어주세요.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구 울엄마가그랬어요. 앞으로도 계속 착하게 살께요. 이번 한번만 봐 주세요. 부탁드려요. 아저씨. 
찬진씀


눈 앞에서 물먹은 라이터 불꽃이 아른거린다. 두 볼이 젖어든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는데 이상스레 자꾸 눈물이 샘솟는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었는가. 정신이 아득해진다. 머리 속에서 눌려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불쑥불쑥 돋아난다. 방문에 기대어 엄마를 기다리는 나. 오솔하던 마을의 회색 빛 풍경. 온몸에 멍이 들어 쓰러지던 엄마. 차갑던 엄마의 손. 털보아저씨. 불타오르던 마을. 화염에 뒤엉킨 마을. 춤추던 불꽃들. 그걸 털보아저씨의 등뒤에서 꿈결처럼 바라보던 나. 겁 많은 나. 엄마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 나, 할 수 있었는데. 털보아저씨의 등에 엄마를 뉘면 되는데, 되는데…. 나 바보처럼 모든 걸 단순히 악몽이라 생각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현실로부터 미친 듯이 이글대는 불꽃으로부터. 그래서 모두 잊기로 다짐했다. 악몽은 빨리 잊는 게 좋다고 엄마가 그랬으니까…. 

바보! 머저리! 이 등신 같은 노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린다. 덜컥 문이 열린다. 쾅! 나는 느닷없이 머리를 강타한 문에 의해 뒤로 넘어진다. 불꽃이 살아있는 라이터가 제 멋대로 벽으로 날아가 달라붙는다. 순식간에 불꽃이 벽을 따라 달음질한다. 문을 열었던 꼬마가 당황해서는 다시 문을 쾅 닫고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느새 불꽃은 집의 지붕 위에서 춤을 추고 쓰레기통과 연탄더미 따위도 화염에 휩싸인다. 불야아∼자지러질 듯한 아주머니의 비명소리. 잇달아 불이야하는 절박한 목소리들이 귓속으로 쓰라리게 들이닥쳐온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아까 돌에 맞은 상처가 채 아물지 못한 모양이다. 이마에 손을 갖다 대어본다. 축축한 느낌. 피다. 붕대를 빨갛게 물들이며 피가 새어 나오고 있다. 이내 피가 살결을 타고 미끄러진다. 어느새 불길이 여덟 가정의 터전을 죄 뒤흔들고 있다. 화염에 휩싸인 집들은 타들어 가는 비명을 지르며 창문을 통해 나를 응시하고 있다. 집에서 뛰쳐나오던 아이 하나가 길바닥에 너부러진다. 부모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아이를 일으킨다. 아이가 서럽게 운다. 어떤 이는 구형TV나 라디오 따위를 무슨 보물단지처럼 감싸안고 불길 속을 헤쳐 나온다. 어떤 집에선 이불도 실려 나온다. 사그라드는 제 집을 석양을 보듯 멍하니 바라만 보는 이. 외투를 벗어 불을 끄려고 바둥거리는 사내. 헐레벌떡 물을 길어 오는 아낙들. 짐승처럼 울부짖는 아이. 아비규환(阿鼻叫喚). 새벽하늘은 이내 새까만 연기로 도배된다.


나는 좀체 멎지 않는 피를 지혈하느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일어설 힘조차 없다. 어지럽기만 하다. 마치 그때처럼. 무슨 일이라도 해야하는데…. 찬…찬진네가 안보여요! 뭐어! 그럼 아직 집에서 못나왔단 말야!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허둥대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 마냥 멈추고 그들의 시선이 갑자기 내 쪽으로 몰려든다. 저건 누구지? 저 놈! 아까 낮에 왔던 철거반 새끼야! 저 새끼가 불질렀어! 마을 사람들이 광기와 살의로 불타는 눈빛을 하고는 내게로 달려온다. 있어봐요! 침착해요, 모두들! 우선 찬진넬 먼저 구해야죠! 저 봐요! 빨리! 급해요! 한 여인이 나의 뒤편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집 전체가 이미 불에 뒤덮였다. 오른편 창가로 웬 아이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아까 문에 편지를 붙였던 찬진이라는 그 꼬마…. 마을 장정 몇이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한다. 허나 불길이 너무 거세다. 우선 문을 여는 것부터가 난감하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난데없이 집 왼편이 허물어져 내린다. 이젠 도저히 접근하기도 고약하게 생겼다. 애타는 마을 사람들의 속사정을 외면한 채 불길은 어지러이 광무(狂舞)를 계속 즐긴다.

 


뭐하고 있어! 바보자식! 바보자식….털보아저씨의 위압적인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온다. 나는 몸 속에서 무언가 훅 치밀어 오름을 느낀다. 몸을 일으킨다. 눈 속으로 피가 스며들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닦아본다. 마찬가지. 앞이 붉은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 온통 벌겋다. 그러니 어느 게 불꽃이고 어느 게 집이며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간다. 야이새끼야! 이게 다 너 때문야! 누군가 뒷덜미를 움켜쥔다. 뿌리친다. 누군가 물을 끼얹는다. 차가운 느낌도 없다. 마을 사람들이 무어라고 욕을 퍼부어 댄다. 들리지 않는다. 어지러울 뿐. 나는 붉은 풍경 속으로 뛰어든다. 문으로 여겨지는 것을 발로 힘껏 내 찬다. 텅하는 소리와 함께 불의 물결에 잠긴 집 내부의 모습이 어릿하게 눈에 비친다. 후끈한 열기가 온 몸을 녹여 버릴 듯이 피부에 달라붙는다. 집안으로 들어선다. 쉴새 없이 팔을 흔들어 대는 불기둥 같은 것이 시야를 가린다. 허나 어차피 잘 보이지도 않으니 무서울 것도 없다. 그냥 헤치고 지난다. 살결이 타들어 가는 느낌. 꼬마가 방구석에서 여태껏 이불을 덮은 채 누워 있는 제 어미의 손을 꼬옥 붙들고 있다. 빨리 옮기지 않으면…꼬마에게 엄마를 내 등뒤에 업히라고 하며 등을 갖다 댄다. 좀체 사람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돌아보니 꼬마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마냥 와들와들 떨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얼굴이 피 범벅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꼬마는 나를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쯤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어쩌지…. 방법을 찾아내기도 전에 꼬마가 맥없이 픽 까무러치고 만다. 이미 불길은 내 바로 앞까지 행진해와 우쭐우쭐 춤을 춘다. 젠장 모두 내 탓야. 저…저기 이봐요…. 어떤 여인의 병약한 목소리가 불길에 잠기어 온다. 꼬마의 어머니. 얘를…우리 찬진일 구해 주세요…저…전 이미 늦었어요. 하…하지만…. 부탁드려요…. 꼬마어머니의 눈빛은 간절하다. 혹시 어머니도 그 옛날 저런 눈을 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이 꼬마를 안아 올린다. 꼬마의 어머니는 안심했다는 듯한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스르르 눈을 감는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표정을…상념에 사로잡히지 말자. 어떻게 나가지. 앞은 온통 불꽃이 만발해 있다. 창문. 창문이 제법 컸으므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불길을 뚫고 그리로 달려간다. 창문으로 밖의 풍경이 내다보인다. 꼬마를 꼭 껴안고 창문께로 몸을 던진다. 유리창이 낱낱의 유리조각으로 부스러져 살결에 박힌다. 무사히 밖으로 나온다. 몸에 수 십 개의 유리알이 박혀들어 피를 토해 내고 있다. 어지럽다. 피를 너무 흘렸나. 마을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꼬마를 낚아채 간다. 나는 일어선다. 아직 꼬마의 어머니를 아니, 내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 다시, 저 창문으로….


와르르.


그때 집이 무너져 내린다. 그저 하나의 커다란 장작더미가 되어 타오른다.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어슴새벽의 하늘을 수놓은 폭죽의 까만 연기 틈새로 자그만 별들이 시리게 반짝거리고… 아주 예쁜 별이. 헤헤…엄마, 저 봐! 별이야. 엄마 되게 좋아하는 별. 우리 캠파이어 계속해. 재밌어. 이 캠파이어 끝남 엄마 사준 공으루 애들하구 축구 할거야. 내가 우리 팀 주장이거든. 엄마 꼭 보러와. 히히…엄마 그런데 왜 이리 어지러워? 엄마 어딨어? 안보여. 나 온 몸이 아파. 엄마, 민이 약…약 좀 사다 줘… 헤에∼ 하, 하하하, 불꽃놀이다! 불꽃놀이! 타라! 타! 아주 타버려……

 

 



-1999년 5월 31일.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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