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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마피아

멀고느린구름 2011. 2. 6. 00:09


마피아


"그러니까 말야. 아까부터 선배의 눈동자가 굉장히 흔들리고 있거든. 대체 왜 그런 걸까. 나는 선배가 마피아가 틀림없다고 생각해."

  날카로운 C가 말했다. 단호한 어조였다. 이제 막 게임을 참가한 사람이라면 '이런 끼어들자마자 끝나버렸군.'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지목을 당한 A선배는 말 주변이 없는 사람이었다. A선배는 담담하게 "나는 아니다."라고 교과서 2페이지를 펴는 학생처럼 답했다.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 되려 신뢰감을 주었다.  

"맞아. 선배가 마피아라면 아까 98학번 D선배를 죽이지 않았겠지. 이제 마피아는 단 한 사람이고. 우리는 4명이나 남았으니까 말야."

남몰래 A선배를 좋아하고 있던 안경을 쓴 B의 말이었다. 

"일리가 있어. 잠깐! 아까 D선배를 죽일 때 손을 내리지 않은 게 단발머리 J였잖아."
"맞아."

A, B, C는 일제히 단발머리 J를 바라봤다. 단발머리 J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나 난 아냐. 정말이야. 날 죽이면 큰 실술하는 거야. 선배 난 아녜요. 진짜예요."

"글쎄, 그건 죽여보면 알겠지?"

날카로운 C가 말했다. 이미 죽어버려 게임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은 흥미롭게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죽은 마피아 D선배는 흥미를 잃고 드러누워 눈을 감아버린지 오래였다. 

"선배, 한 번 죽여봐요."

안경을 쓴 B가 말했다. B는 MT 첫날부터 J가 거슬렸다. 피부가 하얗고 첫사랑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단발머리의 J를 A선배는 MT내내 흘끔거리며 훔쳐보는 것이었다. J도 A선배가 싫지 않는 눈치였다. 이대로라면 두 사람은 맺어진다. B는 비록 게임이지만 처음부터 J를 제거해버리고 싶어했다. 

"근데 잠깐, 계속 보니까 왜 B는 자꾸 J를 죽이려고 들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어쩐지 J가 마피아 같아요'라고 계속 유도했잖아."

A선배가 B를 쏘아보며 말했다. B는 가슴이 아팠다. '선배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건가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안경을 벗어 닦는 동작으로 간신히 참았다. 

"아니에요, 선배. B는 오히려 일관성이 있어요.  처음의 직관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거잖아요. 여자의 직감은 때론 놀랍죠." 

날카로운 C가 B를 변호했다. B는 좀 놀랐다. 사실 B는 지난 밤 갑작스런 C의 고백을 거절했었다. 그리고 A선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악감정을 품을 만도 한데 그는 B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B는 코끼리 눈물만큼의 고마움을 느꼈다. 

  죽은 시민들은 흥미로운 구도의 네 사람이 공교롭게도 마지막 순간에 남게 된 것에 주목했다. 대체 네 사람 중 누가 이 게임을 지배하고, 나머지 셋을 농락하고 있는 것일까. 네 사람은 좀처럼 다음에 죽일 사람을 선별하지 못했다. 게임은 조금 지루하게 정체되고 있었다. 

"아, 밤도 깊어가고 조금 지루해지니까 말입니다. 아무나 한 명 찍어서 죽여보는 게 어떻겠냐 말이지요."

사회자인 복학생 Y선배가 국적불명의 문장을 구사하며 조기재판을 촉구했다. 

"J로 해요. 처음부터 J가 이상했어요."

안경을 쓴 B.

"난 A선배가 제일 의심스럽지만 J도 미심쩍으니, 우선 J부터 해보죠. 그래도 아직 시민이 셋 남았으니까."

날카로운 C.

"그럴까."

A선배.

"자, 그럼 J를 재판합시다! J는 최후의 변론을 하지 말입니다."

단발머리 J는 무언가에 매우 실망한 듯 퉁명스레 말했다.

"전 정말 아니에요. 사실 이런 게임도 처음 해보고, 룰도 익숙치 않은데 왜 저를 마피아로 지목하겠어요. 게임도 영 재미없어질 텐데요. 전 사실 저보다 A선배가 더 의심스러워요. 처음부터 별로 적극적이지도 않고 몸을 사리는 느낌이랄까요. 아까 D선배를 죽일 때도 일부러 동참해서 자기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려 한 게 아닐까요. 전 정말 D선배가 마피아일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갑작스러운 역공에 A선배는 당황해서 J의 눈동자와 마주한 동공을  1.2배 정도 확대시켰고, 갑자기 시계를 쳐다봤다. 날카로운 C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어? 선배 굉장히 당황하시네요."

"어 그랬나? 벼 별로."

"앗! 역시 선배네요. 틀림없어. 자자 빨리 재판하죠."

화살은 다시 A선배에게로 향했다. 죽은 시민들은 일제히 A선배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A선배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 우선 J양에 대한 재판부터 하지말입니다. J양이 마피아라고 생각하면 엄지손가락을 내리고, 시민이라고 생각하면 올려주시면 됩니다. 하나 둘 셋!"

안경 쓴 B는 내렸고, 날카로운 C와 A선배는 내리지 않았다. J는 살았다. 

"자, 밤이 왔습니다. 마피아만 고개를 들고 죽일 사람을 지목해주세요."

마피아가 죽일 시민을 지목했다. 처음으로 마지막 마피아의 실체를 확인한 죽은 시민들이 탄성을 질렀다. 

"아침이 왔습니다. 네, 날카로운 C가 죽었습니다."

"뭐!? 나?"

날카로운 C는 A선배를 바라보며

"아이씨, 진작부터 선밴지 알았는데."

"자 죽은 시민은 발언권이 없지 말입니다."

날카로운 C는 처량하게 원에서 이탈했다. 남은 것은 A선배와 안경 쓴 B, 단발머리 J였다. 마피아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A선배가 눈엣가시인 C를 죽였으리라 예상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B는 여전히

"다들 A선배가 자기를 궁지에 몬 C를 죽였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아. 오히려 그렇게 표나는 행위를 하면 내가 '마피아'라고 자랑하는 게 되니깐. A선배가 그렇게 어리숙한 사람은 아니잖아. 역시 마피아는 J 너야. 네가 자기 의견에 동조한 C를 죽여서 신뢰도를 높이려 한 거겠지. 그러나 어림없어. 안 그래요 A선배?"

A선배는 아까부터 게임에 흥미를 잃었는지 고개를 숙인 채로 좀체 말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세 사람의 감정에서 세어나온 미묘한 기류가 민박집을 감쌌다. 죽은 시민들은 과연 마피아가 어떻게 최후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흥미로웠다. 단발머리 J가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시작했다.  

"B는 정말 이상하네요. 다짜고짜 처음부터 저를 지목하더니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저를 죽이려 하고 있어요. 그런 이상한 일관성을 통해 말마따나 신뢰도를 높이려고 하는 거겠죠. 근데 이상하잖아요. 그렇게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이 어째서 지금껏 시민을 죽이는 일에 다 'Yes'를 선택했을까요. B는 시민이 죽을 때 한 번도 'No'를 택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방금 전에도 A선배로 혐의가 옮겨 갔음에도 혼자 저를 죽이려고 했죠. 저는 시민인데 말이에요. A선배, 선배가 마피아가 아니라면 저는 B를 의심하는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A선배도 의심이 가요. 전 잘 모르겠어요. A선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해요?"

J는 바통을 A선배에게로 넘겼다. 사실 A선배가 놀란 것은 자신이 마피아로 지목되어서가 아니었다. A를 지목할 때 보인 싸늘한 J의 시선 때문에 의기소침해진 것이었다. J의 눈빛에는 '어째서 자신의 죽음을 방조하는 것인가'하는 원망이 어려 있었다. A선배는 괜한 게임탓에 J에 대한 애정점수만 깎아먹는 것 같아 빨리 게임이 끝나버렸으면 싶었다. 시계는 그래서 본 것이었다. 

"글쎄, 영 모르겠다."

"A선배, J예요. J가 틀림없어요. 분명해요. 마지막 한 번만 믿어줘요."

B는 거의 애원했다. 죽은 시민들은 어째서 B가 저렇게까지 하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죽은 C는 B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제가 A선배를 지목해도 B는 절대 동의하지 않겠죠. 그러면 이건 어떨까요. 어쨌든 A선배는 유력한 마피아 혐의자예요. 그러니 저와 A선배 자신이 동의해서 재판을 하는 거예요. B가 마피아라면 그 틈을 타서 A선배를 죽이겠죠. 그동안 어떤 말을 했든. 그러나 마지막 순간 제가 마음을 바꿔 선배를 죽이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 둘은 살고, 선배를 죽이려 한 B는 마피아가 명백해지겠죠."

J가 제안했다.

"난 마피아가 아냐. 그러니 절대 선배를 죽이지 않아. 절대로!"

B가 맹세라도 할 기세로 말했다.

"그건 해봐야 알겠지."

J는 싸늘한 표정으로 B를 도발했다. 

"좋아! 해보자. 난 절대로 A선배를 죽이지 않을 테니까."

B가 도발에 응했다. 

"자, 그럼 A선배로 재판을 하겠습니다. 마지막 재판이 될 수도 있지 말입니다. A선배는 마지막 변론을."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A선배가 퉁명스레 말하며 J쪽을 봤다. 

"그럼 바로 재판에 들어가겠습니다. 하나 둘 셋!"

"아!"

죽은 시민들의 탄성과 함께 게임은 끝났다. 일제히 마피아의 승리에 박수를 보냈다. 모두가 감탄했다. 그러나 마피아는 기쁘지 않았다. 게임이 끝나고 A선배와 단발머리 J는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오빠는 날 그렇게 못 믿어요 어쩜."
"미안해 진짜."

창밖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날카로운 C와 안경을 쓴 B가 그 목소리를 들었다. 방 안에 남은 시민들이 마피아의 놀라운 활약상을 칭찬했다. 허나 C만은 B를 위로했다. 마지막 순간 A와 J는 모두 엄지손가락을 내렸고, B만이 끝까지 A선배의 결백을 지켰다. 마피아는 B였다. 여름밤이었다. 풀벌레 소리가 진동했다.  마피아를 피해 동반 자살한 두 시민의 목소리는 그보다 선명했다. 




2011. 2. 5.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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