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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커피의 맛

멀고느린구름 2013. 12. 6. 06:49

커피의 맛 



  커피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둔 지도 벌써 10년이다. 20대 초반의 두 해를 안암동의 보헤미안이라는 커피하우스에서 보냈다. 보헤미안은 유서 깊은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더 이상 커피 내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져서 보헤미안에서 나오던 날 점장님은 내게 어디 가서 커피에 관해 아는 척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고 나는 약조했다. 물론, 철없던 20대였던 나는 그 약조를 참 많이도 깨고 말아왔다. 유서 깊은 커피 명가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은 내게 자부심으로 남아 지금 이 글에서도 이렇게 은연 중에 으스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또 마음 한 켠에는 계속 그 약조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 참 모순이다. 


  보헤미안을 나온 이후에는 다른 가게에서 일을 해본 일이 없다. 그후 수년 간 커피를 직접 내려서 마셔본 일도 없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접어들 무렵이 되어서야 다시 커피를 찾게 되었다. 근처를 지나면서도 한 번 들르지 않았던 보헤미안에도 다시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커피 도구들을 구입해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게 되었다. 처음에는 맛이 가관이었다. 오래전에 해본 일도 해본 일이라고 점차 몸에서 기억들이 베어나오자 조금씩 커피 맛이 괜찮아졌다. 이제는 매일 같이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햇수로는 일곱 해 정도가 되어간다. 보헤미안에서 2년, 재야에서 7년이니 도합 9년 정도 매일 같이 커피를 손으로 내려보고 살아본 셈이다. 이쯤이면 보헤미안의 권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가 느낀 커피의 맛이라는 걸 글로 써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머리를 든다. 


  내가 경험한 바, 손으로 내린 커피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일이 필요하다. 첫째, 마음을 다하는 일. 둘째, 멈출 때를 아는 일. 셋째, 고요해지는 일이다. 이게 무슨 불교 경전 같은 말일까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작게 깨달은 수준에서는 커피의 맛은 위의 세 가지 항목에 의해 결정된다. 


  커피를 내리는 데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핸드드립 커피 강좌가 내가 처음 커피를 배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해져 있는 요즘이다. 적정한 온도에 맞춰 물을 끓이고, 자신이 좀 더 즐기고 싶은 커피의 맛에 따라 크기를 결정해 원두를 갈고, 그 위에 물을 부은 뒤 서버에 추출된 커피액을 마시는 단순한 일에 수 만가지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핸드 드립이라고 하는 것은 좁게는 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커피 가루 위에 붓는 일에 불과하다. 기술에 관한 것이라면 나보다 전문가가 넘쳐날 테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이 말만은 적어두어야겠다. 여러 곳의 커피를 마셔보았지만 최고의 기술이 결코 최고의 마음 이상이 될 수는 없었다는 것. 


  물을 커피 가루에 내리는 방법에는 점점이 내리는 법, 원을 그리는 법, 8자를 그리는 법 등 다양한 루트가 있다. 그 모든 방법의 궁극적 목표는 커피 가루에 골고루 물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요청되는 것은 능수능란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집중하는 일이다. 이 순간에 커피를 내리는 사람은 마치 고요한 선방에 가부좌를 튼 승려와 같아진다. 단정하게 호흡을 정리하고 손끝의 떨림을 절제하며 주전자로부터 커피 가루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가지런하게 하는 일. 그것은 곧 제 자신의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일과 흡사하다. 이 미세한 작업에서 마음이 흔들리면 곧 물줄기가 흔들려버리고 만다. 나는 이 순간을 좋아한다. 비록 매일 나 혼자 마시는 커피이지만, 반드시 이 순간만은 온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고, 마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정신이 산란한 날에는 커피도 산란한 맛을 내고 만다. 하지만 창으로 스며드는 청아한 새벽빛을 느끼며 마음을 정돈해 내린 커피에는 분명 그 새벽빛도 함께 담겨 있다. 


  마음을 담아 커피를 내린 다음에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잘게 갈아진 커피 가루에서 뽑아져 나올 수 있는 커피액에는 한계가 있다. 허나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치 않은 한에는 늘 적은 양에서 보다 많은 커피액을 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만다. 140이나 150 미리리터만 추출해야할 것을 조금 더 조금 더 하면서 200 미리리터 이상을 뽑아내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커피는 투덜거리는 맛을 선사해준다. 과유불급. 이 말은 너무나 흔해져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도 좋을 죽은 말이 되어버렸다. 이미 가고 없는 이들 중 훌륭한 이들을 우리가 위인으로 존경하듯이 사어(死語)에도 존경할만한 것이 있다. 성급하게 물줄기를 멈추면 커피가 거칠어지고 과욕을 부리면 커피가 퉁명스러워진다. 자신에게 알맞는 멈춰야 할 때를 몸에 익혀야 한다. 


  이렇게 애써 내린 커피를 아무렇게나 마셔버린다면 커피의 맛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이후의 일은 아무래도 좋겠지만 분명 첫 한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에는 음미하는 사람 역시 고요해지는 것이 좋겠다. 커피는 이 첫맛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과 행동, 생각을 잠시 멈추고 혀에 닿는 커피, 목을 넘어가 몸 속으로 퍼져나가는 커피의 여정을 고요히 지켜보자.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커피에 대한 예를 다하고, 커피는 조용히 솟아오르는 맛으로 그에 대한 답례를 하는 것이다. 서로 예를 다한 후에는 편안하게 격이 없어져도 좋다. 이처럼 커피를 마시면 그 끝맛도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애틋해지고 맛이 오래 입 안에 남는다. 


  마음을 다하는 일, 멈출 때를 아는 일, 고요해지는 일. 이 세 가지 일들은 비단 커피를 내리는 일에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지금 나는 이 셋 중 어떤 일이 필요한 시기에 있는 것일까. 오늘 내가 내린 커피 속에 답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2013. 12. 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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