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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진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나는 '외로운 사진'이 좋다. 주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흑백 사진, 먼 원경 속에 덩그라니 한 사람만이 들어 있는 사진들이 내가 말하는 외로운 사진의 범주에 든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는 것은 원래 찍으려고 했던 것을 놓쳤다는 뜻이다. 내가 좀 더 들여다 보고자 했던 대상이 사라진 순간이다. 흑백 사진은 시간의 박제와 같다. 이미 지나가버린 어느 한 순간에서 현실의 빛깔을 지워버림으로써 그 부음을 조용히 알린다. 먼 원경 속에서 놓여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쓸쓸하거니와 더불어 사진을 찍는 사람과의 거리까지 덤으로 느껴진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서로에게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2004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르바이트비를 아껴서 처음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사고 '파람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후 어디를 가든 데리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었다. 그후 내 카메라는 세 번의 기종 변경을 거쳐 지금의 올림푸스 펜으로 굳어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주로 피사체로 담았던 것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다. 부러 초점을 맞추지 않은 사진들, 모노크롬 모드로 맞춰놓고 찍은 것들, 저 멀리 혼자 떨어져 있는 사람들. 질리지도 않고 그런 것들을 계속 찍어왔다. 심지어 군복무 기간 동안에는 아예 사진촬영 전담 장교를 맡아 비무장 지대를 떠돌며 그곳에 깃든 적막과 쓸쓸함을 2000장이 넘게 담기도 했었다.
그런데 정작 친구의 사진이나 연인의 사진 같은 것은 별로 찍어놓은 것이 없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담은 것에 비해, 오히려 남들이 보기에는 쓸데 없어 보이는 사진들이 몇 배나 더 많다. 어째서일까 생각해보다가 이런 답을 내리게 되었다. 내가 찍고 있던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의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내가 찍은 사진에는 찬란한 봄의 햇볕을 찍은 것 속에도 묘한 쓸쓸함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사진들을 하나 하나 훑어보고 있으면 그 때의 외로움들이 느껴진다. 헌데, 참 재미난 것은 그 사진들을 계속 보고 있으면 더욱 더 외로워질 법도 한데 어쩐지 조금씩 마음이 풀려간다는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외로움에 민감하게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외로운 것들에 마음이 잘 간다. 외로운 사람이 좋다. 외로운 사진이 좋고, 외로운 음악들이, 외로운 그림과 외로운 글들이 마음을 흔든다. 이렇게 수 많은 외로움들에 둘러싸여 있는 내가 어쩌면 이렇게 뚜벅뚜벅 살아가고 있을 수 있을까. 나의 인생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찍은 '외로운 사진'을 하나 하나 넘겨 보며 그 비밀을 조금은 짐작하게 된다. 그래도 내가 적어도 나의 외로움을 모른 채 외면하고 살지는 않았던 것이구나. 어떻게든 내 눈으로 나의 뷰파인더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살았던 거구나. 그래서 내가 그 수많은 슬픔의 언덕들을 오르내리면서도 삶을 선택할 수 있었겠구나 싶다.
슬픔이나 외로움은 수돗물과 같아서 그걸 틀어놓았다는 것을 깜박하고 있으면 끝이 없이 흘러나오고 만다. 종내는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창문을 넘어가서 주변 사람에게까지 흘러 넘칠지도 모른다. 외로움은 끝이 없다. 다만, 우리에게는 조그만 수도꼭지가 허락되었을 뿐이다. 수도꼭지는 조그맣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댐 하나 정도의 슬픔을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꼭꼭 잠그고만 있으면 우리는 매마른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조금씩 틀어놓되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틀어놓았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슬픔과 외로움도 나의 것임을, 나의 선택이고, 내 삶을 마르지 않게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방금 전까지 나는 외로운 음악을 들으며, 외로운 작가가 쓴, 외로운 흑백 사진들이 가득한, 외로운 글을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이 글은 결코 외로운 글이 못 될 것 같다.
2014. 1. 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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