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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친구의 여자친구 -

     내일은 개학일이다. 얼마전까지 머리 위에서 끝없이 빗방울을 떨구던 구름들이 이제는 아득히 멀리서 떠다니고 있다. 카페오레를 절반쯤 마시고 보니 컵의 벽면을 따라 지저분한 자국이 남는다. 여자친구가 오기로 한 시간이 34분 지나있다. 아니, 아직 28분이다. 커다란 유리창 밖에서 가게들의 불이 켜진다. 더러는 이미 켜져 있거나 혹은 오히려 꺼지고 있다. 무심하거나 유심히 그 모습을 바라본다. 휴대폰 불이 켜진다. 진동 모드 혹은 매너 모드일 것이다.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른다. 


‘미안, 조금 늦었네. 지금 모퉁이야. 신호등만 바뀌면 바로 갈게.’


    모퉁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아니 조금은 신경 쓰인다. 비틀즈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떠오른다.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이다. 아, 마지막 앨범은 렛잇비다. 여자친구도 그 횡단보도를 따라 건넌다. 문득 영국의 신호등에도 푸른 색과 붉은 색의 사람 모양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혹시 영국은 토끼나 캥거루의 그림이. 아, 캥거루는 호주에서 쓰고 있나. 각 나라마다 나라를 대표하는 동물이 있다. 있었다. 있던가. 영국의 대표 동물은 토끼이거나 토끼가 아니다. 아무래도 좋다. 여자친구가 영국으로 가겠단다.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죽은 지 이제 겨우 3개월이다. 라는 문장과 여자친구의 영국행은 별 관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없다. 모르겠다. 몰랐다. 모르는 척 한다. 이들은 사실 같은 말이다. 손가락에 끼고 있는 커플링을 매만진다. 보석 이름은 아쿠아 마린. 보석이 상징하는 것은 (   )이다. 누가 (   ) 안을 채워주길 바란다. 


    어릴 적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던 것을 떠올린다. 독일이었던가. 영국이었던가. 그것은 더러는 중요하고 더러는 중요치 않다. 가끔씩 거대한 성 위에 서서 드넓은 평야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영상이 떠오른다. 집들 위로는 무심한 구름들이 지붕을 쓰다듬으며 지나고 있다. 그 영상을 떠올리게 되면 어쩐지 아득해지고 삶의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닌 양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도 떠오른다. 아니다. 지금 건 아니다. 


   여자 친구가 300미터 정도 앞 내리막길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본다. 파스텔 톤의 푸른 원피스를 입고 있다. 여자친구는 항상 이 길을 오르며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여자친구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고 웃는 식이다. 고통은 그렇게 극복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른다. 


   1년 전 이즈음이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이 까페에서 고백하고 있다. 오늘처럼 카푸치노를 시키고 시나몬 가루를 듬뿍 뿌린다. 여자친구가 묻는다. “계피 가루를 좋아하나봐요?” “왠지 외로운 향이 나잖아.” 나는 아무렇게나 대답한다. 사실 그날은 여자친구의 여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대신 보내기로 하루 전에 결정한다.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보다 여자친구가 나를 더 좋아한다는 게 이유다. 애써 준비한 고백의 대사들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여자친구에게 읊는다. 그래서 여자친구의 여자친구가 아닌 여자친구가 내 여자친구가 된다. 그날 나는 예의 그 영상을 본다. 지붕을 쓰다듬고 지나는 낮은 구름들을.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를 나는 1년 3개월 전부터 좋아한다.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는 구름을 좋아한다. 나는 그가 찍은 구름 사진을 좋아한다. 여자친구는 나를 좋아한다. 고 쓰지만 마침표를 붙여야할지 물음표를 붙여야할지 의문. 똑같이 구름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 구름이  뭉게구름이냐 양떼구름이냐, 낮은 구름이냐, 높은 구름이냐에 따라 사람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낮게 흘러가는 구름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는 뭐랄까 관조적인 성격이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어떤 일에 무심하다고 해서 관조적일 수는 없다. 어떤 일에 관조적이라고 해서 무심할 수도 없다. 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이후에도 여자친구의 여자친구와 나는 무심하고 관조적이기 때문에 종종 만난다. 나는 여자친구의 마음에 무심했고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는 연애라는 관계맺음에 대해 관조적이었던 것.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여자친구는 점점 안개처럼 변해간다. 우리 세 사람은 투명한 유리조각으로 서로의 가슴을 겨누고 있다. 있었다. 있는가. 


   세상에 진실은 없다. 없다고 여긴다. 무엇이 진실한 마음이고 무엇이 진실하지 않은 마음인지 누구도 판결할 수 없다. 무심. 수계를 받는다면 무심으로 하자고 잠시 생각한다. 


   여자친구의 얼굴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한다. 스트레이트 파마로 어깨까지 길게 내린 검은 머리카락. 쌍커플이 없는 옆으로 긴 눈. 옅은 눈썹과 작은 코. 햇살에 부딪혀 더 하얗게 보이는 피부. 여자친구다. 여자친구는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고 유난히 못나지도 않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수 많은 사람 속에서도 여자친구가 여자친구인 것을 아는 걸까. 아니 잠깐. 알고 있나? 다시 여자친구를 본다. 아니다. 여자친구가 아니다. 여자친구는 어디로 갔나. 목을 빼고 여자친구를 찾아본다. 어디에도 없다. 휴대폰을 본다. 수신문자도 없다. 눈 앞으로 커다란 구름 조각이 지난다. 우윳빛 셀로판지를 댄 것처럼 세상이 뿌옇게 보인다. 구름이 내 이마와 코와 눈을 쓰다듬고 지난다. 불현듯 외롭다고 느낀다. 내가 지금 어느 시간 속에 있는지 모호하다. 나는 청년인가. 노인인가. 내가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되어지는가. 서늘한 바람이 새어들어온다. 카페 문이 열린 것이다. 여자친구가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다. 아마도 나와 약속을 했으니 나일 것이다. 어쩐지 숨고 싶어진다. 여자친구는 오래 나를 찾지 못한다. 못할 것이다. 못했으면 한다. 못하지 않는다. 여자친구가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도 멋적게 손을 들어보인다. 여자친구가 옆에 와 앉는다. 의자를 빼어 주는 것을 깜빡한다. 의도적이지도 안 의도적이지도 않다. 


   여자친구는 웃기도 하고 웃지 않기도 하며 이야기를 한다. 어제 마트에서 공짜로 얻은 체크무늬 종이가방의 아름다움, 여덟살 무렵 잃어버렸던 보물에 관한 것- 그것이 어떤 물건이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깜박 집에 두고 온 커플링 반지의 역사. 한 번쯤 여행을 가보고 싶은 나라. 바가지를 씌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모 인터넷 쇼핑몰. 여자친구는 마치 오늘 이 시간을 위해 이만큼 이야기를 수집해 왔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처럼 끊이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간다. 나는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따라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저 시간에서 이 시간으로 정신없이 시공간 여행을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따위는 가볍게 비웃어 주며.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나는 듣고 있다. 아니 어쩌면 듣지 않고 있다. 들으려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여자친구가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을 수도, 혹은 그게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사실 여자친구는 종이가방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아니 종이가방의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는 그것들의 이야기이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나의 구름과 여자친구의 구름이, 여자친구의 여자친구의 구름이 다르듯이. 


   여자친구가 시공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지붕을 쓰다듬고 지나는 구름들을 수도 없이 본다. 몰려든 구름들은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층층 안개가 된다. 안개 너머에서 여자친구의 목소리를 듣는다. "영국에 갈 거야." 그 목소리는 비현실적으로 또렷해서 마치 안개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안개는 말한다. 안개의 도시로 가고 싶다고. 그것은 흡사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는 갑자기 여자친구의 고향이 궁금해져 묻는다. " 넌 고향이 어디야." 여자친구가, 혹은 안개가 대답한다. "어디에도 없어 그런 건." 나는 나의고향을 떠올려 보려 하지만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자친구는 말을 멈춘다. 커피 잔 속을 멍하니 들여다본다. 그 속에 조각 달이라도 빠져있다는 듯이. 침묵이 시작되자 구름의 영상이 사라진다. 여자친구가 걷히고 안개가 나타난다. 아니 안개가 걷히고 여자친구가 나타난다. "매일 매일 비가 왔으면 좋겠어." 여자친구가 말한다. "왜?" "매일 매일 우는 건 힘들잖아." "그건 그렇지." 나는 여자친구의 말에 공감한다. 고 생각한다. 안개처럼 무상하던 여자친구의 이야기는 이제 빗방울이 된다. 한 방울 떨어졌다가 정적. 또 한 방울 떨어졌다가 정적. 을 반복한다. 분명 나는 여자친구의 이야기에 흠뻑 젖어 있지만 그것이 어떠한 감각인지 분명히 느끼지는 못한다. 그저 젖어 있다고 느낄 뿐. 안개의 이야기도, 빗방울의 이야기도 우리의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흩어진다. 

 

   우리는 이야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카페를 나온다. 여자친구는 커피를 반만 마신다. 그 속에 든 조각 달을 헤치지 않으려고. 아마도. 거리의 밤하늘에는 달이 없다. 당연하다. 달은 조각나서 여자친구의 커피 잔 속에 빠져 있으니까. 나는 왜 집요하게 이 관념을 끌고 나가려는 걸까. 애초에 달은 어디에도 없다. 는 것을 안다. 고 생각한다. 

  

  거리를 거닐며 우리가 손을 잡았는지 잡지 않았는지 모호하다. 어느 순간은 손바닥을 휘감고 지나는 밤바람을 느꼈고, 어느 때는 여자친구의 온도를 느낀다. 우리가 손을 잡고 있다면 그것은 왼손인가 오른손인가. 알 필요가 있는가. 이 문단은 이 글에서 의미가 없으므로 삭제.


   남부터미널 역으로 내려갈 수 있는 지하도 통로 우측 위 50미터 지점에 나무로 된 벤치가 있다. 우리는 그곳에 앉는다. 지금이 아니라 10분 전에. 10분 간 우리는 아무 말이 없고, 어디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인생은 그렇다는 듯이 시간이 지나가도록 내버려둔다. "언제 가니." "글쎄, 아빠가 죽은 날... 이미 난 영국으로 떠난 것 같아." 여자친구는 여기에 없다. 어쩌면 난 여자친구의 환영을 기다리고, 그 환영과 이야기하고, 환영과 여기에 나란히 앉아 있는지도 모른다. "밤 공기가 차다..." 밤 공기가 따뜻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한다. "사랑이 뭘까." 여자친구가 묻는다. 나를 비롯해 우주의 그 무엇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허공에 흩어지는 언어를 붙잡으려는 듯이 여자친구가 다시 묻는다. 


" 날 사랑하니, "


무심한 구름들이 몰려와 붉고 푸른 지붕들을 쓰다듬고 지나기 시작한다. 거대한 구름들이다. 이제껏 보지 못한. 여자친구의 모습이 구름에 덮인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여자친구의 여자친구가 걸어나온다. 나는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를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는가. 사랑'했다'고 말하면 좀 더 옳은가. 옳지 않다. 세계는 모호한 것 투성이였다. 계절 사이의 경계가 모호했고, 눈물과 웃음 사이가 모호했고, 이별과 만남, 좋아함과 싫어함, 성장과 퇴보, 너와 나 그 모든 것들의 사이가 모호했다. 모호하다고 말하는 것마저 모호하다. 


"난 어릴적부터 내 이름이 싫었어. 고요라니. 나도 화가 있고, 슬픔이 있고, 떠들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고요라니. 그래서 반발심에 더 수다스런 여자가 된 것 같아. 그러나 난 알고 있었지. 수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누군가에게 한참 떠들어놓고 나면 내 맘은 한 없이 고요해져버린단 걸. 끝없는 마음의 파도를 타인에게 밀어내고 나면 난 진정 고요를 만나는 거야. 그 고요한 순간이 좋아. 헌데 언제부털까 그 고요가 내 삶의 젤 앞에 나서기 시작했어. 도무지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 고요 속에서만 머물러 있고 싶어진 거야. 아빠가 죽은 다음날부터가 아냐. 그 이전,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였던 것 같은 느낌. 아득한 침묵, 고요한 호수 속으로 들어가 한 천년 간 숨어 있고 싶어 요즘의 난. 왜 그런 걸까."


   여자친구는 모노드라마 배우처럼 허공을 향해 읊조렸다. 누구에게나 그러한 순간은 온다. 는 문장을 떠올린다. 여자친구에게 찾아오는 고요한 시간과 나에게 찾아오는 구름의 풍경은 어쩌면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또 그 둘은 미묘하게 다르다. 그 차이는 마치 해변의 모래알갱이의 색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다. 분명히 다르지만 '이것이 다르다.'라고 정답을 말할 수는 없다. 여자친구와 나는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평행선을 계속 걸어 가리라. 그러면서 또 한 번 또 한 번 정답이 아닌 말들을... 드높은 오해의 바벨탑을 쌓아올릴 것이다. 


"여운이를 좋아하는 거 알고 있어. 나도 걔가 좋아. 여운이는 힘이 있어.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단순하게 이겨내버려. 흘러가는 것을 흘러가도록 둘줄 알아. 근데 난 어느쪽이냐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쪽이 아니라 그 흐름 그 자체야. 흘러가던가, 고여 있던가. 난 그 속에 있지. 이해하겠어? 난 그 강물 속에 있는 거야. 근데 넌 내가 있는 강물 속에 없었어. 늘 저 멀리서 날 보고 있었지."

"그랬다고 생각해."

   나는 먼저 대답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랬다. 그랬는가. 그리 되었던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배우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독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카메라맨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으며, 평론가로 자리잡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쪽이냐면 카메라맨이라고 느끼는 쪽이다. 관찰하지만 딱히 평가하지 않는다. 특별한 관찰의 목적도 없다. 그저 아름다운 순간들을 두 눈에 담다가 멍해지곤 한다. 여자친구는 배우다. 그 아름다움을 좇다보면 이내 길을 잃는다. 나는 왜 이 사람을 보고 있는가. 나는 왜 보고 있는가. 그런 의문에 빠져 있다가 어느 순간 또 다른 아름다움에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맞춘다. 나의 인생에는 '왜'가 빠져 있다. 그것에 결핍감을 느끼며 외로워진다. 


"외로워. 외로워 죽을 것 같아."

"나도."

여자친구가 말하고 내가 대답한다. 아니 내가 말하고 여자친구가 대답한 걸까. 여자친구와 나는 함께 고층 건물들 사이로 조각 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저 커다른 우주를 수많은 빛들이 여행하고 있다. 에테르라고 하는 어감 좋은 물질이 부지런히 빛을 배달한다. 여자친구와 나. 나와 여자친구의 여자친구, 여자친구의 여자친구와 여자친구. 우리, 혹은 그들의 마음 사이에도 숱한 빛들이 이야기를 담고 오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의 1%만을 이해한다. 고 말한다. 


"다음 주에 갈 거야. 영국으로."

"잡는 게 맞나? 이럴 땐."

"안 잡는 게 더 멋져."

"안 가면 안 될까?"

"안돼."

"다녀와 그럼."

"응."

"연락할 거니?"

"가능하다면 할게."


여자친구는 벤치에서 일어나 지하도의 계단을 내려간다. 점점 작아지는 여자친구를 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여자자친구가 소인국으로 떠난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친구가 소인이 되어버리면, 나는 더 이상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들 수도 없을 것-소리가 너무 작으니까-이고, 우리는 손을 잡고 플라타너스가 우거진 거리를 걸어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 슬픈 일인데 라고 생각하는 사이 여자친구가 커브를 돌아 사라진다. 여자친구가 정말 지구 상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죽음과 사라짐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집으로 가는 버스가 서는 정류장을 지나쳐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간다.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올라오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아무렇게나 받아내며 내려간다. 그러다 다시 오르막길이 나오고, 다음은 내리막길이다. 아니, 오르막이다. 그리고 내리막이다. 내리막인가. 오르막이다. 어느 순간 내가 길을 오르고 있는지 내려가고 있는지 잊어버린다. 어쩌면 평지 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자친구의 여자친구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신호음 세 번을 듣고 끊는다. 나는 어느 새 거대한 성 위에 올라와 있다. 눈 앞에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 위에는 오래된 유럽풍의 집들이 있다. 거대한 구름들이 무심히 지붕을 건들며 지난다. 여자친구의 전화번호를 지운다. 아니다. 여자친구의 여자친구 전화번호다. 어쩌면 그 둘 모두이기도 하고 모두가 아니기도 하다. 어차피 모호한 청춘의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 뿐. 


  수 킬로미터를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잠자리에 들자 생각이 찾아온다. 나는 어쩌면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잃어버렸다고. 누가 그 페이지만을 찢어 갔는가.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며 우리이기도 하다. 스탠드의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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