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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비틀즈, 기억하고 있습니까 2

멀고느린구름 2013. 3. 12. 03:58




“안녕하십니까. 좋은 소식 가지고 왔습니다.” 반사적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이건 또 뭔가. “형제님, 잠깐만 시간 내주십쇼. 좋은 말씀 한 번 들어보세요.” 저는 아저씨 같은 형을 둔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대신 음악을 켰다. 스피커의 볼륨 다이얼을 신경질적으로 돌렸다. 택스맨~ 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존의 것인지 폴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끈질긴 형제였다. 폴인지 존인지가 다시 한 번 더 외쳤다. 택스맨~ 복음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이런 일까지 겪고 나니 더욱 열이 올랐다. 최근 통화목록에서 가스보일러 설치기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번호를 찾아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다행히 컬러링이 아닌 고전적인 발신음이 들려왔다. 짧은 대기시간이지만 좋아하지 않는 취향의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은 아무 이유없이 뺨을 맞는 것처럼 불쾌했다. 


“네에~ 전화받았습니다아~” 


아, 저런 한껏 여유로운 말투라니. 나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주먹을 꼭 쥐어 열을 딴 쪽으로 잠시 분산 시킨 뒤에야 간신히 말할 수 있었다. 


“아, 어제 통화했던 동부주택 203호인데요.”

“아, 이름이 동부주택 203호시라고요? 허허허.”


국회의원이 되면 살인죄에 예외조항을 만들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얼토당토 않은 개그를 치는 종자들을 단죄했을 경우는 무죄. 열여덟이라는 욕이 열여덟 번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닥치시고요.) 오늘 11시까지 오기로 하셨는데 아직 안 오셔서요.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오후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10분 내로 도착 못하시면 지금 나가려고요.” “아,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뚝. 잠깐만,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은 이쪽의 계획이었다. “이런 개씨발!” 주방이 쩌렁쩌렁 울리게 욕을 하고 보니 매카트니 경이 다시 한 번 ‘히얼 대얼 앤 에브리웨어’의 도입부를 부르고 있었다. 조금 미안했다. 분이 풀리지 않아 침대 위에 방심하고 누워 있던 이불을 마구 구겨서 매트리스 위로 집어 던진 후 주먹으로 마구 두들겨 팼다. 발로 매트리스를 걷어차는 것도 추가했다. 잔혹한 구타였다. 전치 9주는 족히 나올 것이다. 이러다 사람이, 아닌 침대와 이불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구타를 멈췄다. 이마에 식은 땀이 맺혔다. 욕실에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났다. 바로 링고스타가 신나게 ‘옐로 서브마린’을 부르고 있을 때. 나는 악! 하고 괴성을 지를 뻔했다. 세수를 한 덕분에 앞 머리가 젖어 머리스타일도 단정하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정권 지르기를 해버릴까 싶었다.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리더니 신경질적으로 연속 세 번이 더 울렸다. 악! 대체 내가 너라는 작자를 1시간이나 기다려준 대자대비한 마음을 좀 생각해보라고. 문을 열었다. 


“아이고, 좀 늦었습니다아~ 보일러는 어딨어요?”


곤색 점퍼 차림의 2인 1조였다. 선임병과 후임병이라는 느낌. 먼저 들어선 선임병 쪽이 좀 더 나이가 어려보였다. 선임병은 더벅머리에 아무렇게나 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전반적으로 위생 상태가 상당히 불량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냥 아저씨라고 부를만한 평범한 노동자상이었다. 반면 후임병 쪽은 존 레논의 시대에 유행했을 법한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데다 어딘가 침착해보이는 인상 덕분에 전문직 종사자 내지는 교양을 갖춘 고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선임병은 기세 좋게 주방을 가로질러 보일러실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런 망설임이 없는 걸음이었고, 마치 오래전부터 내 집에서 살아온 것 같은 걸음이었다. 내 집 조차 그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아무런 토를 달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야~ 이거 완전 골동품이네~ 엉? 골동품이야~” 선임병은 감탄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보일러실에서 늘어놓았다. 그에 비해 후임병 쪽은 내 집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아직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에 서있었다. 그러다 현관 옆에 걸어놓은 그림을 발견하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스타키는 신나게 “우리 모두는 노란잠수함 속에 사네, 노란잠수함~ 노란잠수함~”이라고 불러재끼고 있었다. 출입구와 보일러실. 왼쪽과 오른쪽. 양 방향을 점령군에게 봉쇄 당한 채 나는 내가 이 집의 거주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르오노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죠, 이 그림?”


후임병의 차분하고 안정된 목소리, 심지어 우아하기까지한 말투에 나는 순간 누가 갑자기 라디오라도 켠 줄 알았다. 하지만 후임병 쪽이, 아닌 정정하기로 하자. 후임 설치기사 쪽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하고 있었기에 라이브임을 자각했다. “아, 네. 맞습니다... (대체 어떻게 아셨죠?)” 후임 설치기사는 검정 뿔태 안경을 매만지며 


“고흐 그림이라면 일단 조금 압니다. 저쪽에 걸린 건 밤의 까페 테라스 아닙니까? 고흐를 좋아하시는군요.” 

“아, 네. 좋아합니다. 그런데 계속 거기 서 계실 건가요?” 

“아, 좀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아, 네 물론. 설치하시려면 일단 들어오셔야 하니까요.” 

“아, 그럼 좀 외람되지만 실례하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후임 설치기사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곧바로 이어진 주방에 올라선 후 뒤를 돌아서 자신의 신발을 가지런하게 정돈했다. 


“집이 정말 멋지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좀 둘러봐도 괜찮겠습니까?” 

“아, 네 물론.” 


그가 뒤돌아서서 주방에 한 켠에 걸린 ‘밤의 까페 테라스’ 대형 모조품을 감상하는 사이 재빨리 씨디의 트랙을 앞으로 돌렸다. 매카트니 경이 ‘히얼 대얼 앤 에브리웨어’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만 벌써 세 번째. 아까의 욕설에 이어 한 번 더 죄송했다. 


“이 목소리는 매카트니군요. 처음 듣는 곡인데 죄송하지만 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나는 하마터면 후임 설치기사에게 반해버릴 뻔했다. 다음에 장엄하게 울려퍼진 선임 설치기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야! 이 자식아! 뭐하냐 넌 맨날! 엉?! 보일러 설치하러 왔으면 보일러부터 봐야 될 거 아냐!!”



2013. 3. 1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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