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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무의미한 밤 6

멀고느린구름 2013. 2. 28. 07:44



  얼마가 지난 걸까.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 달빛에 물든 강물의 한 가운데까지 나아갔다. 술잔을 물결 속으로 담궈 달빛을 길어올리다 황금물결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온 몸이 젖었고, 양볼을 개구리처럼 부풀린 채 깊은 강물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황금의 빛은 점점 사라지고 공포스런 어둠이 사방을 휘감았다. 물은 점점 차가워졌고, 온 몸이 얼어붙기 시작한다고 느낀 순간 정신이 들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이다. 온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돌았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다. 10분 정도 잠이 들었다. 하지만 어쩐지 전혀 다른 시간 속을 살다 돌아온 기분이었다. 앉아 있던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 일어 한 번 주저앉고 말았다. 두 번째 일어날 때는 이상이 없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인근에는 자판기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차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과 10분 차이에 지나지 않는데도 강변의 인적은 눈에 뜨이게 줄어 있었다. 사이렌차가 출동했던 소동도 끝난 듯 했다. 사고가 일어난 지점은 둑 아래였다. 아마도 출동한 경찰이 현장 감식을 위해 그려놓았을 선명한 흰 분필의 동그라미로 알 수 있었다. 접근 금지 띠도 둘러져 있었다. 누군가가 강물로 뛰어든 것일까.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한 동안 머물렀다. 누군가의 생이 끝난 지점을 보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종착지는 어디일까.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죽을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끝이 있기 마련이고, 단지 그곳이 우연히 우리의 종착지가 될 뿐이었다. 강물로 뛰어든 누군가에게도 저 종착지는 스스로의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는 선택했다고 여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여기에 이르리라고 얼마전의 그는 혹 몇 년 전의 그는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레 둑을 내려가 접근금지 띠 안 속에서 보호되고 있는 동그라미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강으로부터 찬 바람이 훅 끼쳐들었다. 누군가의 인생이 몸 속으로 빙의되는 것 같았다. 멀리 가양대교의 붉은 야간 조명이 마치 요단강 저편을 알리는 신호등처럼 보였다. 얼마나 많은 혼들이 이 강물 속을 헤엄쳐 저승으로 갔을까. 얼마나 많은 백들이 이 강에서 건져져 땅에 묻혔을까. 웅크렸던 몸을 간신히 일으켜 내려온 둑을 다시 올랐다. 터벅터벅 왔던 길을 걸어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말을 걸어오는 도인들은 없었다. 음악은 듣지 않았다. 풀벌레의 울음 소리도, 우주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한 번에 걸리지 않았다. 가스 차는 이래서 안 돼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걸었지만 역시 걸리지 않았다. 세 번째 네 번째 시도에서야 차는 가까스로 운행을 허락해주었다. 한 숨을 몰아쉬며 라디오를 켰다. 전형적인 여성 심야 디제이의 목소리가 나왔다. 네, 그렇군요. 저도 참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어요. 누구나 그런 생각 한 번쯤 하지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말이에요. 목숨을 다 바쳐 하는 사랑. 세기의 사랑. 그런 것을 다들 꿈꾸잖아요. 저도 그런 사랑 참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막상, 그런 사랑을 하게 된다면 잘 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은 듭니다. 신청해주신 노래 듣죠. 영화 <봄날은 간다> OST에 삽입되었던 곡이죠. 김윤아 씨가 부른 주제곡은 다들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 노래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곡입니다. 배우 유지태 씨가 직접 부릅니다. ‘그해 봄에’. 가만히 가슴을 다독이는 듯한 피아노 선율.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말하던 상우의 목소리. 차 안은 연인과 함께 갔던 오래전의 영화관이 되었다. 움직이지 않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2013. 2. 28.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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