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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겨울날은 간다

멀고느린구름 2013. 2. 1. 10:10




겨울날은 간다 




헤어지자...
우리 그만 헤어져
내가 잘 할게
헤어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그래 헤어지자

 

 

  두 남녀가 등을 돌리고 돌아선다. 어슴새벽의 안개가 두 사람의 어깨에 아무도 몰래 내려앉는다. 그 안개에는 진득한 슬픔이 묻어 있어 두 사람을 오래토록 괴롭힐 것이 틀림없다. 몇 번째 보는 장면이다. 벌써 스무 번도 넘게 나는 ‘봄날은 간다’ 의 그 장면을 리플레이 해 보고 있다. 흐트러진 마음만큼이나 방은 정신없이 흐트러져 있다. 신혼집 같다던 깔끔한 내 방의 이미지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비로소 나는 제대로 된 자취생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별한 사람들에게 주말은 아마도 가장 끔찍한 날이 틀림없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정말 아무 일도. 그렇다고 뭔가 일을 만들어서 할 만큼 부지런한 성격도 아니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도 그닥 해보던 일이 아니어서 마냥 누군가 전화를 걸어주기만 기다린다. 역시나 하루 종일 전화벨은 울리지 않는다. 나름대로 비싼 돈을 들여서 다운받은 벨소린데... 그러고 보니 내가 무슨 벨소리를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들어본 적이 참 오래되었다.

 

  주말은 벌써 가버린다. 이렇게 빨리? 라고 묻지는 말자.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자는 말이다. 내게 시간은 빠르지 않다. 당신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같은 거다. 당신의 시간은 빠르고, 가끔 여유를 찾지만 나의 시간은 더디고 한 치의 여유도 없다. 부지런히 괴롭다.

 

방안에 가득 베인 라벤더 향은 자꾸만 내게 잠을 권하는 듯 하다. 우울증을 치료해준다더니 결국 이런 뜻이군. 걍 빨리 자라는 것이지. 자고 일어나서 또 자고 일어나서 또 자고. 그렇게만 한다면 어쩌면 이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잠 때문에 또 고통을 받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별한 사람들에게 잠만큼 지겨운 것도 없다. 양날의 검이랄까. 계속 자면 계속 도망칠 수 있지만 빨리 먹어버려야 할 아픔, 슬픔, 고통들은 식탁 위에 고스란히 남아 주인을 기다리며 썩어갈 테니. 한참 후에 그걸 먹으려면 말 그대로 죽을 맛일 게 틀림없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식탁을 외면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마음은 조금씩 셔터를 아래로 내리고 썩은 부분들을 슬그머니 감추게 되겠지. 그러면서 나는 또 잠을 잔다.

 

 

  방 안에서 그녀의 흔적들을 지운다. 닦아내고 닦아내도 어딘가에는 분명 그녀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밤이면 가벼워진 공기와 함께 천정의 어딘가를 부유하다가 아침이면 우수수 내 몸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지겨운 하루는 또 그렇게 시작되고 만다. 어쩔 수 없다 아직은.

 

 

  거리를 걸어보면 서서히 추위가 걷히고 있는 게 감지된다. 그렇다고 마음의 추위도 함께 걷히고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아직까지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걸어 다닌다. 긴 햇살이 거리를 훑고 있다. 신의 은총, 신의 축복.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저 햇살을 그렇게 얘기할까. 햇살은 확실히 힘을 가지고 있다. 빛은 통과하지 못하는 게 없어서, 분명 내 몸 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마음에도 가닿을 것이다. 천진난만한 따뜻함은 상처를 아물게 한다. 아주 힘들 때 그래도 햇살을 받으면 그래도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어쩌면 신의 메시지는 결국 ‘그래도 살아야지’ 인지도 모른다.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면 자기의 자식들이 그래도 꿋꿋이 살아가 주는 것을 바라겠지. 이별은 어떤 인간도 형이상학적으로 만든다. 위대한 철학자도 퇴락한 재래시장을 접수한 3류 깡패도 이별 앞에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너와 나, 그리고 관계에 대해 성찰을 하게 된다. 어디에 내리느냐는 각자 다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한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유랑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즈음이면 그래도 좀 나아진 거라고 자위해본다. 그리고 거리를 또 거닌다. 저만치서 뚜벅뚜벅 봄이 걸어오고 있다.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담장 쪽에서 푸른 빛 두 개가 반짝거리는 게 보인다. 고양이다. 그녀와 곧잘 쓰다듬고 먹이도 주곤 하던 집 잃은 고양이다. 온 몸이 까만 털로 뒤덮인 고양인데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다가가서 손을 내밀면 강아지처럼 할짝할짝 손을 핥기까지 한다. 다가가서 손을 내민다. 고양이가 다가와 손을 핥는다. 간지럽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고양이가 핥은 자리가 도드라지게 시리다. 꼭 사랑에 젖어 있던 마음처럼.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골골거리며 꼬리를 흔든다. 고양이의 집은 어디일까. 고양이는 이 어두운 밤거리에 이렇게 무방비하게 던져진 채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갑자기 고양이가 존경스러워 진다.

 

“까망아~”
“냐옹~”

 

어디선가 들려온 고양이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고양이는 담장 너머 집으로 갑자기 뛰어 들어간다. 그러더니 문을 열고 선 스무 살 초반 쯤 되어 보이는 여자의 다리에 얼굴을 부비부비 거린다. 열린 문틈으로 노란 불빛이 새어나온다. 헤어진 그녀는 노란색을 가장 좋아한다. 여자는 고양이를 품에 안 더니 내 쪽을 한 번 쳐다본다. 눈이 마주친다. 어색한 나머지 고개를 끄덕 숙인다. 여자도 얼떨결에 인사를 한다. 서로 아는 사람이 된 샘인가.

 

심리학 개론서에 쓰여 있기를 유아들은 세계를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방에 있는 식탁이든 TV든 소파든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방이라는 덩어리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나중에 그것이 식탁, TV, 소파라는 개별적인 물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야 세계를 분리해서 본다고 한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도 비슷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세계라는 배경에 함께 그려진 한 장의 풍경화와 다를 게 없다. 소풍 사진에 내 뒤쪽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이 그저 배경처럼 느껴지듯이. 어떻게 보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유아적인 세계에 산다. 어쩌면 어른이란 건 인간이 스스로가 쪽팔려서 억지로 만들어낸 개념인지도 모른다. 오르던 오르막을 마저 오른다.

 


  아침, 모처럼 아침에 일어난 나는 담장 집을 지나 길을 내려간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귤을 먹고 싶어서다. 내리막길을 지나야 과일가게가 있다. 비탈길은 우스운 것이, 올라갈 때는 오르막, 내려갈 때는 내리막이 된다.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과일가게에는 나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어서 역시 귤을 고르고 있었다. 여섯 개에 천원인 것과 세 개에 천원인 것이 있다. 각각 중국산과 국산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망설임 없이 여섯 개에 천 원인 것을 싸달라고 한다. 자취생의 사상으로 따지면 자고로 싸고 양이 많은 것이 지상 최고의 상품이다.

 

“어, 안녕하세요?”

 

누구지? 잘 모르는 얼굴이다.

 

“아, 어제 고양이...”

 

여자의 목소리를 다시 듣자 퍼뜩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노란 불 빛이 마음속에 켜진다.


“아아... 안녕하세요.”
“네에, 안녕하세요. 여기 사시나 봐요?.”
“네.”

 

여자는 과일가게 아주머니에게 귤을 건네받고 천 원을 내민다. 흰 비닐 봉지에 담긴 귤 여섯 개의 실루엣.

 

“자취하시나 봐요?”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여섯 개에 천 원짜리잖아요.”
“아아, 쿡쿡.”
“저는 잘 못 보던 분이라 혹시 고양일 납치하려는 건 아닌지 좀 무서웠었어요.”
“아, 요즘 제가 집 밖으로 잘 안 나와서요. 이사 오신 거예요?”
“네. 요 근처로 직장을 옮겼거든요.”
“아아.”
“그 고양이는 원래 키우던 거 아니죠?”
“아, 네 아니에요. 이사를 왔는데 매일  제 집 문 앞에서 자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데리고 살기로 한 거예요.”
“이 동네에선 유명한 고양이예요.”
“그래요? 동네사람들이 많이 예뻐해줬나 봐요. 고양이 치곤 참 순해요.”
“그쵸? 꼭 강아지 같아. 정체성을 상실한 고양이라니까요.”
“말을 재밌게 하시네요. 정체성이라니 쿡쿡.”
“아, 그럼 다음에 또 봬요. 고양이 좋아하시나 본데, 언제 한 번 까망이 보러 놀러 오세요. 안 그래도 이 동네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심심했거든요.”
“네, 그러죠. 그럼 연락처라도.”

 

여자는 내 휴대폰을 달라고 하더니 자기 번호를 또박또박 입력한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쁘다. 흘러내린 긴 머리가 늦은 겨울바람에 살랑인다.

 

“제 이름은 윤희예요. 이윤희.”

 

이윤희라고 입력한다.

 

“아, 저는 윤호라고 합니다. 김윤호.”
“이름이 비슷하네요. 기억하기 쉽겠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여자의 집 앞까지 이르렀다.  여자는 문을 닫고 들어간다. 그러나 문은 채 다 닫히지 않고 살짝 입을 벌린 채로 닫히다 만다. 누가 벗어 놓은 신발이 문틈에 끼어 있다. 우연이다. 우연히 오르막길을 지나다 고양이를 만나고, 우연히 고양이의 주인이 된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우연히 귤을 사다가 다시 여자와 만나다. 세 번의 우연이 끝났다.

 

삶은 생을 풀어갈 단서들을 우리에게 툭툭 던지곤 한다. 그것을 사람들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이러쿵저러쿵 해도 결국 삶은 몇 개의 우연으로 조금씩 궤도를 수정하기도 한다. 집으로 향한다. 귤을 까서 입에 넣는다. 휴대폰을 열어 여자의 전화번호가 잘 저장 되었는지 확인한다. 이윤희...

 

귤을 하나 더 까서 입에 넣는다. 아마도 이제 귤을 까먹을 때마다 여자의 이름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허나 연락을 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늦은 겨울이 저물 때까지는. 하지만 봄이 오고 그 다음이면 무심코 귤을 까먹다가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또 무심코 전화를 걸어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고양이가 문득 그리워질지도 모르지.

 

  집에 돌아와 TV를 켠다.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다. 창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창에 붙은 빗방울들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다 이내 또르르 굴러내린다. 눈물처럼. 음악을 튼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볼륨을 높이고 나는 아주 조그맣게 운다. 뉴스에서 앵커가 오늘이 입춘이라는 말을 한다. 저녀석 봄비구나. 아...겨울날이 간다...



2004. 11. 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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