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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무의미한 밤 1

멀고느린구름 2013. 2. 20. 10:03



무의미한 밤




  열대야도 막바지였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째서인지 잘 걸리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본네트를 열고 엔진 부근을 살펴보았다. 물론 엔진 구조에 대해 배운 것은 10여년 정도 전인 중학교 3학년 기술 시간이었다. 손가락 끝에 기름 때를 몇 번 묻혀보다가 다시 본네트를 닫았다. 운적석에 다시 앉아 시동을 걸었다.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시동이 걸렸다. 차를 돌려 오래된 주공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새벽 1시. 입구에 가까워지자 뒤늦게 주공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을 차들이 제멋대로 주차되어 있었다. 간신히 빈 틈들을 찾아 차를 몰았다. 세 번째 난관에 봉착했을 때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고도 했다. 세번 째 난관이란 간신히 9인승 벤츠와 12인승 스타렉스 사이를 빠져나왔을 때 일어났다. 직진 방향 정면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비켜날 생각을 하지 않는 일이었다. 18번 욕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도 새벽 1시에 경적을 울리는 짓따위를 할만큼 몰상식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차를 멈추고 내려 고양이를 좇았다. 갖은 위협을 해보았지만 고양이는 대체 이 인간은 뭐냐 라는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감상하기도 했다.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를 주워 던져도 보았다. 별이 가득한 밤 하늘을 긁으며 날아간 나뭇가지는 고양이 바로 옆에 안착했다. 고양이는 태평하게 나뭇가지의 아름다움 포물선에 대해 만족할 뿐인 듯했다. 고양이 옆으로 지나치기에는 틈이 너무 좁았다. 자칫하면 고양이를 육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새벽의 드라이브에 그런 이벤트를 추가하고 싶은 운전자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인도 난간에 앉아 고양이가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고양이는 인도에 앉아 자기를 바라보는 인간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고양이와 눈싸움이라도 해보자 싶었다. 1분 정도였을까. 고양이가 먼저 눈을 끔벅였다. 아싸! 라고 작게 소리치며 주먹을 쥔 오른 손으로 허공을 갈랐다. 깜짝 놀란 고양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종 걸음으로 몇 걸음 지나쳐 가더니 이쪽을 보았다. 조금 더 갔으면 싶어 별 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더니, 과연 몇 걸음 더 옮겨 갔다.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는 그 자리에 다시 주저 않았다. 인도에서 일어나 운전석에 다시 앉았다. 브레이크를 풀고 클러치를 서서히 떼며 고양이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차를 앞으로 조금씩 전진 시켰다.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는 아파트 입구를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한 숨을 몰아쉬며 라디오를 켰다. 신승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오래된 노래였다. 아마도 제목은 사랑치.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신승훈의 목소리가 조금씩 엷어지며 반주도 함께 옅어졌다. 무성하던 안개가 아침 해에 스러져가는 느낌이었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도시 가스 공사가 한창이라 여기저기 뒤집어 놓은 도로를 지나 미분양 아파트가 불을 밝히고 있는 운정 신도시의 대로로 나왔다. 새벽 1시에 모든 층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아파트들이 듬성듬성 눈에 들어왔다. 오히려 불이 꺼진 곳이 사람 사는 곳일 거라 짐작되었다. 대로에는 수 백 미터 앞까지 단 한 대의 차도 보이지 않았다. 곡예를 하듯 지그재그로 차를 몰아보았다. 요즘 열대야가 극성이죠. 그러다보니까 밤에 한강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 차를 가지고 새벽에 한강엘 갑니다. 이게 참 좋더라구요. 디제이는 이현우였다. 덤덤하고 어눌한 말투에서 묘한 설득력이 생겨나는 가수였다. 출근길에 늘 지나던 길을 따라 자유로 쪽으로 향했다. 곧 서울과 문산 방향으로 나뉘는 갈릴길이 나왔다. 서울 쪽으로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직장은 헤이리에 있었다. 서울 쪽으로 핸들을 꺾을 때 밤하늘의 별을 주워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겨놓는 기분이 들었다. 곡선으로 휘어진 고가도로의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하기도 했다. 드디어 차는 자유로에 올라섰다. 이쪽 방향은 처음이었다. 고교시절 문예부실 폐지를 막기 위해 교무주임에게 저항하다 뺨을 맞은 일이 떠올랐다. 그런 식의 저항은 역시 처음해보는 일이었다. 자유로가 갑자기 우르르 일어나 뺨을 때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기어를 4단에서 5단으로 바꾸고 조심스럽게 속도를 100까지 올려보았다. 그럼에도 옆 차선의 차들에게 항상 추월 당했다. 110까지는 역시 무리라고 생각해 100에서 109 사이를 유지하며 달렸다. 오른쪽 창 저 멀리 강화도의 불빛이  보였다. 강화도와 자유로 사이에 놓인 검은 액체의 지형을 바다라 불러야 할지 강이라 불러야 할지 늘 헛갈렸다. 어느 날은 강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날은 바다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심야카페의 애청자입니다. 오늘은 유난히 밤하늘에 별이 많네요. 이런 날이면 꼭 듣고 싶은 노래가 있습니다. 오지은 씨의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인데요. 이 노래 듣고 있으면 울고 싶기도 하고 마냥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심야카페에서 90년대 노래도 좋지만 이런 인디 노래도 가끔 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아이디 3479님께서 사연 올려주셨습니다. 저도 이 노래 오늘 처음 들어봤는데요, 참 좋네요. 운전하시는 분들, 노래 들으시면서 별을 세어보거나 하지는 않으시겠죠. 안전 운전하시고요. 편의점에서 알바하시는 분들, 노래 틀어놓고 잠깐 가게 밖에 나가서 하늘 좀 보고 몸도 좀 풀고 들어오시죠. 오지은이 부르네요.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열대야의 밤에 썩 어울리는 곡이었다. 



2013. 2. 2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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