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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마음

멀고느린구름 2012. 12. 25. 00:47



마음


나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이별을 했던 날이었다. 우리는 홍대거리에 있는 마음에 가기로 했다. 나는 그와 예전부터 그곳에 가고 싶었다. 


마음. 바이면서 찻집이기도 한 곳. 그저 단순히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신비주의 전략의 가게들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왠지 그곳은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곳에 가면 그의 마음, 그의 진심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곳을 마음속에 담아두었고, 인터넷에서 마음을 방문해 본 사람들의 후기도 꼼꼼히 체크해 놓았었다. 마음으로 가는 길은 방향치인 나의 머릿속에서도 정확하게 그려져 있을 정도였다. 나는 ‘반드시’ 그곳에 가야했으므로 약도를 보고 또 보아둔 것이다. 


홍대거리에 도착한 우리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마음이 있는 건물 앞에 이르렀다. 1층-자바. 2층-팀파니. 지하1층-빈 칸. 비록 가게 이름이 쓰여 있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이 건물 지하1층에 있는 것이 마음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마음은 마음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거다. 라고 속으로 해석까지 하는 중이었다. 


“여기 아닌가본데?”

“아냐, 여기 맞아.”

“아니야. 이름도 안 써 있잖아.”

“여기 맞는데... 맞아. 맞을 거야.”

“아닌 것 같은데.”

“내려가 보자 한 번.”

 

그는 말없이 지하로 먼저 내려가더니 뒤따라가던 내가 계단 세 칸을 내려가기도 전에 다시 올라와 말했다.


“문 닫혔는데.”

“열어봤어?”

“아니.”

“열어봐아.”

“싫어. 그냥 창고 같은데.”


그의 말처럼 그곳은 정말 지하창고 같았다. 하지만 분명 그곳은 마음이었다. 틀림없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아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번 열어봐 오빠.”

“싫은데...”


그답다. 그는 자기가 싫은 것은 절대 하려들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참기 힘든 어리광이었으나 정작 그 자신은 그것이 멋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내가 마음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조용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런 섬뜩한 무관심은 이제 이력이 생겨서 참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허나 그런 이력이 생겨버린 나는 더 섬뜩한 인간이다. 


내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의지를 보이자 그는 슬쩍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묘한 음악이 마치 문 뒤편에 숨어 우리의 대화를 훔쳐 듣기라도 했던 것처럼 문을 열자마자 와르르 우리에게로 넘어져 왔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붉은 빛줄기 몇 가닥만이 눈을 뜨고 있었다. 그래, 여기구나. 여기야. 우리는 드디어 마음에 왔다. 마음에 간다.


쾅!


그는 문을 닫아버렸다. 마음의 문은 닫혀버렸다. 마음은 다시 지하창고가 되었다. 왜? 라고 물을 정신도 나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그에게 욕을 해버릴 뻔했다. 


“여긴 마음이 아닌 것 같은데? 딴 데 가보자.”


개자식. 그러나 참자. 오늘은 우리의 마지막이 될 게 분명한 날 같으니까. 마음이 있는 건물을 뒤로 하고 그는 마음을 찾아 홍대거리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1월의 바람은 흉기나 다름없었다. 몸도 마음도 시퍼런 날이 베여가고 있었다. 마음을 찾는 그의 뒷모습이 퍽 안쓰러워 보였다. 그는 항상 불안했다. 늘 이런저런 것으로 잘난 척을 해댔지만 사실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해야 하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먹구름 같은 불안감이었다. 그는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를 먹구름 같았다. 나는 항시 우산을 휴대하고 그의 곁에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자신이 먹구름이라는 것도 모르고, 스스로 우산을 챙기는 법도 몰랐으므로. 


한 때는 나도 그의 말처럼 그가 푸른 하늘의 솜사탕 같은 구름이라고 착각했었다. 덕분에 무방비 상태에서 숱한 소나기를 만나야 했다. 그와 나는 공통점이 참 많았는데, 우산을 자주 잃어버린다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우리는 한 때 그 사소한 공통점 때문에 하루 종일 웃었고 사랑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절대로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배고파.”


그의 그 말은 명령이었다. 우리는 설렁탕을 먹고 싶다는 그의 바람에 따라 근처의 ‘신촌설농탕’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미 온 몸이 얼어 있었다. 내가 추위를 잘 탄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1년 전에 까맣게 잊어버렸을 거다. 그는 말 한 마디 없이 설렁탕을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의 밥 먹는 모습을 좋아한다. 내가 그를 떠나지 않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만약 어느 날 그가 내 앞에서 밥을 맛없게 먹는다면 나는 미련없이 그의 곁을 떠날 것이다 분명. 


밥을 먹은 뒤 우리는 곧 철거될 것 같은 잿빛 콘크리트 건물 구석에 자리한 ‘빛’이라는 이름의 바에 들어갔다. 빛. 나는 그라는 먹구름 속에서 빛을 찾기를. 빛이 새어나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바랐던가. 빛이라는 이름과 달리 내부는 음습한 어둠이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낡은 나무 의자에 앉은 우리는 나무 탁자 위에 새겨져 있는 낙서들을 보았다. 숱한 사랑의 맹세들. 그도 나도 서로에게 참 많은 사랑의 맹세를 했지만 우리는 이미 몇 차례 그 맹세를 위반하고 이별했었다. 그리고 오늘... 그는 또 한 번의 이별을 통보할게 분명하다. 이름만 ‘빛’인 이곳은 마치 그와 같았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아무런 진실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끝내 마음을 찾지 못한 그... 그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너무 오랜 세월 자신을 감싸고 지키는데 익숙해져버린 사람이었다. 


“뭐 마실래?”

“버드와이저. 오빤?”

“나두.”


기억할까.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마신 술이 버드와이저였다는 걸.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가 버스정류장이었다는 걸. 그 영화가 재미없어서 우리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계속 흉을 봤었다는 걸. 내가 한강공원에서 술에 취해 그의 품에서 울었던 날이 내가 가장 그를 사랑했던 날이라는 걸. 어느 날 밤 그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돌아오면서 차로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몇 번이고 삼켰다는 걸. 비에 젖은 내 마음이 이 나무 탁자처럼 이미 썩어버렸다는 걸.  


우리는 버드와이저 두 병을 두 시간에 걸쳐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속절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얘기해줘. 고백의 시간...”

“뭘?”

“뭐라니, 그거. 내가 물어본 거. 오늘 얘기하자고 했잖아.”

“있다가.”

“있다가 언제? 백년 뒤에?”


나는 마음속으로 우산을 폈다. 두 개를 폈다. 아니, 우비를 입을까. 넌 정말 개자식이야. 그거 알아? 모르지? 그러니 넌 개자식이야.


“가자, 그만.”

“얘기해. 얘기해줘 제발. 응?”


나는 왜 그에게 이렇게 애걸하게 되는 걸까. 혼자 남아 망가질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를 혼자 둘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다음에...”


그는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그러나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알았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 영원히 그 사랑의 실체를 난 구경해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곁에 없는 것을 혼자 견뎌내지 못하지만, 곁에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는 가지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는 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와 나의 사랑이 너무도 다름을 나는 새삼 깨달으며 빛을 나왔다. 새벽 1시의 시린 적요와 검은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어둠 속에 우산을 버렸다. 


그와 나, 나와 그. 한 때 우리였던 우리는 헤어졌다. 그는 그답게 그날로부터 며칠 뒤 이메일로 이별을 통보했다. 나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 그는 아마도 지금쯤 혼자 추억에 젖어 홍대거리를 거닐다 다시 마음을 찾을 게 틀림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정확한 마음의 약도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겠지. 그리고 마음의 문 앞에 서겠지. 자신이 절대 아니라고 주장했던 바로 그곳에 다시. 그러나 문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앞에서 떠올리겠지. 나와의 일을. 그리고 애달픈 상념에 촉촉이 젖고 말겠지.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노라고. 마음을 뒤로 하고 나와서 그 뒤에 우리가 어디로 갔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겠지만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먹었는지, 그때 내가 무슨 옷을 입었었는지. 내가 얼마나 추위에 떨었는지. 그는 항상 스스로 기억력이 나쁘다고 강의하곤 했으니까. 2년 전의 일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를 다시 한 번 개자식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테니까. 


그는 그렇게 언제까지고 바로 눈앞에 있는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또 다른 마음들을... 있지도 않은 환상의 마음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그러는 동안 또 숱한 그의 새 연인들은 느닷없는 소나기에 온몸이 젖을 것이고, 조용히 썩어갈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그를 떠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또 상처받은 눈동자로 다른 누군가를 유혹하겠지.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사람을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며칠 전 그의 편지를 받았다. 아직도 나를 사랑한단다. 그래, 그러니까 난 절대 너에게 돌아가지 않아. 



2006. 3. 1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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