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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긴 소설

양말 벗기 무브먼트 11

멀고느린구름 2011. 11. 30. 07:24


11. 진보와 진화 4




진 : 먼저 기회를 주시니 얘기하지요. 인간 자신의 변화. 뭐 생물학적 변화이든, 정신적 변화이든 그것을 ‘진화'라고 전제합시다. 그리고 사회 제도의 변화 여기서 제도의 변화란 반드시 사회적 약자, 소수자, 그리고 노동자-민중 계급의 이익을 도모하는 제도적 변화를 말합니다. 그러한 사회 제도의 변화를 ‘진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사회자께서 하신 질문은 다음과 같지요. 진화가 먼저냐, 진보가 먼저냐. 진화를 이야기하는 쪽에서는 항상 러시아 혁명을 근거로 삼습니다. 붉은 혁명으로 유럽의 절반이 공산화 되었고 마르크스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었지만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깃발을 내리지 않았느냐. 그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그 핵심에는 결국 ‘인간'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진화'를 말하는 사람 역시 한 때는 ‘진보'의 가치에 헌신했던 사람들이고 광의에서는 역시 진보주의자 중의 한 계열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중에는 물론 자유주의자에 더 가까운 사람도 많겠지만요. 진화를 주창하는 명상가들의 의견에 일견 동의합니다.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은 역시 사회의 진보입니다. 우리가 지금 인권을 말하고, 자유를 말하고, 인간의 진화를 말할 수 있게 된 동력이 무엇일까요? 최 박사님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최 : 마… 글쎄요. 


진 : 1789년 7월 14일의 프랑스를 기억하십니까. 


최 : 프랑스 혁명이군요.


진 : 그렇습니다. 인권, 자유, 평등, 복지 이런 말들은 모두 그 이후 이 세상에 출현한 말들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다시 1세기가 지난 후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곧 사회의 진보가 인간의 진화를 충동질한다는 것입니다. 진보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인간의 급격한 진화는 무엇을 초래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죽음'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진화한다고 해도 진화된 인간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는 진화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갈 뿐입니다. 인류의 숱한 역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암흑시대에 환경주의자가 없었을까요? 인류애와 자유를 외치는 진화된 인간이 없었을까요? 노예제의 폐지와 인권의 실현을 꿈꾸는 몽상가가 없었겠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모든 인류의 진화나 사회의 진보 따위가 아니었어요. 그들 자신의 죽음이었습니다. 혹은 추방이었습니다. 진화가 우선이라고요? 언제까지 똑같은 역사의 오류를 반복해야합니까. 러시아의 몰락은 단지 러시아의 몰락이지 진보의 몰락이 아닙니다. 진보의 씨앗은 오히려 전 세계 곳곳에 퍼져서 만개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나 : 음, 인상적인 말씀들이었는데요. 자,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최 박사님.


최 : 마… 일리가 있습니다. 거 있긴 있는데… 그래도 역시 저는 인간의 진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최 : 역시 러시아의 실패를 들어야겠지요. 거 많이들 얘기하는 게 스탈린의 실패를 말하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레닌부터가 실패였어요. 당대 마르크시즘 해석의 1인자 게오르기 폴레하노프를 우상으로 삼았던 청년 레닌이 1905년 피의 일요일을 경험하고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 끝에, 결국 1918년 인류 최초의 공산정권을 수립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곧 실각한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백군과 공산당 적군의 적백내전이 벌어지고, 이어서 폴란드와의 전쟁까지 벌어지죠. 검증되지 않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는 러시아 경제를 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들고, 레닌은 전쟁 상황이라는 빌미로 ‘전시 공산주의'라는 말을 내세워 독재와 민영 기업들의 국유화를 강행합니다. 결국 러시아 경제는 더욱 곤두박질 치고 말아요. 재정 악화로 위기에 몰린 레닌은 공산주의를 일부 포기하고 경제에 자본주의를 도입한 신경제 정책을 내세워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아주 일시적인 방편이었겠지만 결국 공산주의 체제 전체를 변질 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이후 러시아는 관료들과 일반 민중 사이의 극심한 빈부 격차와 또 다른 계급 구조를 파생시키며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레닌의 말로는 처참했지요. 실어증을 앓으며 1년여간 병상에 누워있다 뇌일혈로 죽고 말았으니까요. 인류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은 남자의 최후 치고는 쓸쓸했습니다. 1918년부터 레닌이 사망한 1924년까지, 그 개인의 역사 속에 공산주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 : 아 네. 좋은 말씀이신데요, 최 박사님. 지금이 역사 시간은 아닌 거니까요. 그래서 결국 핵심은 무얼까요. 우리 시청자분들께서는 그 점이 궁금할 것 같습니다.


진 : 제 말씀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지 마시고요. 


최 : 허허, 거 참, 말 본새하고는. 


진 : 아, 그럼 최 박사님께서도 사실은 진보주의자였다고 고백하시는 겁니까? 오리지널 마르크시스트 앞에서 마르크시즘의 역사를 강론하시니까 한 말씀 드린 겁니다.


최 : 허허 나 참. 


나 : 최 박사님. 핵심, 말씀해주시지요.


최 : 아 네. 마… 핵심은 그겁니다. 레닌은 사회를 진화시키고자 했지만 그 자신이 진화되어 있지 못했다. 그리고 민중은 더욱 진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결국 불과 얼마가지 않아 시계는 거꾸로 돌았고, 그로 인해 공산주의의 멸망은 이미 그 시작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마, 그런 겁니다. 


나 : 네. 급격한 사회의 진화는 그 구성원의 거센 반발을 부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지도자가 완벽하게 진화한 인물이 아니라면 사회의 진화를 바르게 추동하기 어렵다. 그런 논지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최 : 아이고, 우리 사회자님께서 요점 정리를 아주 잘 하십니다. 허허허. 


나 : 네, 칭찬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자르 성하와 고 대표님 의견도 한 번 여쭙겠습니다. 먼저 아자르 성하. 두 분 대화 들으셨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압 : 네. 어려운 주제입니다. 우리 미스터 진에게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진 : 네. 얼마든지요.


압 : 마르크스는 분명 당대의 누구보다 진보한 인간이지요?


진 : 네. 뭐 그렇지요.


압 : 레닌도 마찬가지겠습니다?


진 : 네. 그렇게 봅니다. 


압 : 최근에 젊은이들에게 많이 사랑 받고 있는 체 게바라 역시?


진 : 음.. 네.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겠습니다만…


압 : 네. 그 말씀만을 이 자리에 던져 보겠습니다. 진화한 인간만이 진보적인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오 프리덤.


진 : 흠…


나 : 진 선생님, 반론하시겠습니까?


진 :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나 : 그럼, 고 대표님 차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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