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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긴 소설

양말 벗기 무브먼트 12

멀고느린구름 2011. 12. 14. 19:39



진보와 진화 5




고 : 진화고 진보고 나발이고, 일단 사람이 먹고 사는 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 사람이 굶어죽는데 그깟게 다 무슨 소용이야. 사회자님, 안 그래요? 


나 : 하하. 네 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 : 아니, 잘 모르겠다니? 잘 모르겠다뇨. 거 말이 됩니까? 이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랑은 대화가 안 돼. 당최 밥을 굶어 보기를 했어, 추위에 몸이 얼어보기를 했어, 비가 새는 걸 막아 본 적이 있어? 엉? 참 나.. 이러니 다들 세상이 미쳐가지고 무신 양말을 벗는다 어쩐다 자유가 뭐다 진보가 뭐다 지랄하고 자빠진 거지!


나 : 저, 고 대표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 고 대표님과 저는 그렇게 나이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습니다.   


고 : 엥? 사회자 양반이 몇 살인데?


나 : 마흔 다섯입니다. 


고 : 나는 올해 마흔 아홉이야, 이 사람아. 네 살이나 어리구만!


나 : 저, 실례지만 네 살 어린 것 정도로 세대 차이가 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역사 속의 주요한 사건들을 같이 겪지 않았겠습니까?


고 : 내일 모레면 내 나이가 지천명이야! 격이 다르지 격이! 


나 : 그래서 고 대표님은 하늘의 명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고 : 엥? 건 또 무슨 소리요?


나 : 지천명이 공자께서 쉰 나이를 가리켜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나이'라고 하신 거 아닙니까.


고 : 아, 그래요?


나 : 네, 일단 그렇습니다. 


고 : 이야… 거 대단한 뜻이었구만. 


나 : 네, 저기 그럼 고 대표님 발언은 끝나신 겁니까?


고 : 에에… 아니, 저기 내가 무슨 말을 했죠?


나 : 지랄하고 자빠졌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고 : 아아, 맞다! 그렇지, 지랄! 아 거 지랄옘병들을 하고 자빠졌어 다들!


나 : 아, 계속 말씀하시겠습니까?


고 : 아, 네 뭐.


나 : 그럼. 


고 : 에이, 김 다 샜네. 그러니까 내 말은요. 진보다 자유다 그런 거 가방 끈 긴 양반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거 뭐 나는 아아무 상관없다 이겁니다. 그런데, 밥은 먹게 해주고 그래야 될 거 아니냐는 겁니다. 막말로 저기 저 동남아 양반, 당신이 그 양말 벗는 운동 시작하고 그럴 때 단 한 번이라도 우리 쪽 사정을 고려해봤냐 이 거에요. 당신이 하는 일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어떤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혹은 어떤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릴지 고민을 해봤냐 이거야. 그런 생각을 안 했다면! 그건 사이비지. 사이비죠. 안 그래요? 사람을 해방시킨다며? 자유롭게 한다며! 그 사람이 누구냐고?! 우린 사람이 아니냐고?!! 엉! 대답해보쇼!


나 : 아자르 성하 답변하시겠습니까?


압 : 오 프리덤. 미스터 고,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천천히 하시기 바랍니다. 준비가 되면 제가 물음에 답하겠습니다. 


고 : 웃기고 자빠졌네! 나는 당신네 신도가 아니에요. 빨리 답이나 하쇼.


압 : 준비가 되셨습니까?


고 : 빨리 말하라니깐!


압 : 준비가 되셨습니까?


고 : 아, 씨발!


압 : 준비가 되시길 기다리겠습니다. 


고 : 사회자님


나 : 네?


고 : 방송에서 사람 치면 안 되는 거죠?


나 : 네 물론 안 됩니다. 


최 : 아니, 저런 사람을 누가 섭외했습니까? 격 떨어지게!


진 : 최 박사님도 딱히 격을 높여주시진 않습니다. 


최 : 허허 참…


진 : 거, 허참 씨는 가족오락관 가서 찾으시래도.


나 : 고 대표님, 아자르 성하의 답변을 듣고 싶으시다면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다음 주제로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고 : 아, 지금 숨 고르고 있어요.


나 : 아, 네 그럼 잠시 기다리죠. 저기 여기 차라도 한 잔씩 갖다 주시죠.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세기의 토크쇼 ‘진보와 진화'를 시청하고 계십니다. 잠시 광고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2011. 12. 14. 멀고느린구름

* 오랜만이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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