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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긴 소설

양말 벗기 무브먼트 10

멀고느린구름 2011. 11. 23. 22:00




10. 진보와 진화 3




압 : 음..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나 : 물론입니다. 


압 : 우선, 미스터 고. 그대의 경제 활동이 내가 하는 운동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그러나 경제라는 것에 대해 제 소견을 잠깐 말씀 드려도 좋겠습니까?


고 : 뭐 하시던가. 


압 : 감사합니다. 미스터 고. 당신은 무엇을 위해서 삽니까?


고 : 엥?


압 : 중요한 질문입니다. 대답해주세요.


고 : 그딴 게 뭐 별 게 있나요. 그저 잘 먹고 잘 살려고 그러는 거지 다아.


압 : 정말 훌륭한 답이셨습니다. 오 프리덤. 


고 : 엥?


압 : 모든 존재는 잘 먹고 잘 살려고 합니다. 그것이 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하지만 경제란 무엇입니까. 물론 경제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인간 사회에 제안된 방식입니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근원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활동으로 변질 시켰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음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돈을 모읍니다. 그러니 누구의 통장에는 한 사람이 수 천년 동안 쓰고도 남을 돈이 쌓여 있고, 누구의 통장에는 단 하루를 살 돈도 없습니다. 돈이란 교환가치를 지닌 교환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것을 축적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돈이 발명되기 이전 곡물 창고에 음식물을 쌓아두던 것과는 다릅니다. 음식물은 쌓아두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가 먹고도 많은 음식이 남아 있다면 음식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어집니다. 어차피 썩으면 골칫거리에 불과하니까요. 하지만 돈은 썩지도 않고, 쌓아두면 이율이라는 형태로 가치가 상승합니다. 어느 순간 경제활동의 목적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서 그저 무한히 돈을 쌓아두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미스터 고, 우리 양말 벗기 무브먼트가 결국 가려고 하는 길은 다음과 같은 길입니다. 인간에게 덧 씌어진 모든 인위적인 욕망을 벗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근원적인, 원초적인 욕망만을 남겨두고 그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자본의 폭거, 경쟁의 논리, 과학의 엄숙함, 정치제도의 불합리함, 자연 재앙, 성에 대한 억압,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문명의 예의라는 것. 이 모든 인위적인 욕망의 탈,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양말이며, 우리는 이제 그것을 단호히 벗어야합니다! 들을 귀가 있으면 들으시오. 오, 프리덤. 


고 : 아 젠장! 왜 그게 하필 양말이냐고! 빤스도 있잖아! 


최 : 허허, 거 속옷은 벗었는지 안 벗었는지 알 수가 없잖습니까. 참 무식하기는.


진 : 그래서, 최 박사님은 오늘 속옷을 안 입으셨습니까?


최 :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진 선생.


진 : 이왕 무례한 김에 우리 아자르 성하께도 좀 무례를 범하지요. 우리 노동 계급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무시되고 뭉뚱그려져 왔지요. 부르주아들의 시민혁명 때는 귀족에 저항하는 무리 중의 하나로, 노예제를 반대할 때는 역시 노예제 반대 그룹 중의 하나로, 심지어 메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반공의 시대에도 노동자도 반대하는 공산주의 따위의 캐치프레이즈의 주인공으로 이용되었지요. 민주화 혁명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독재에 반대하는 모든 민중이여 단결하라고 해서 같이 힘을 모아주었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해결된 이후 단 한 번도 이 땅에는 노동자 계급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오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남의 들러리만 서주고 광고판이 되어주고, 감성 마케팅의 소모품이 되어 올 뿐이었지요. 양말 벗기 무브먼트가 인간을 해방시킨다고요? 그 모든 말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 속에 노동자는 역시 또 하나의 파편에 불과하죠. 우리가 원하는 건 인간의 해방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해방을 원하는 겁니다. 성하의 양말 벗기 무브먼트는 영원히 그 이상을 이루어줄 수 없지요. 노동자는 역시 이용 당하고 버림 받을 겁니다. 겨울이 다가왔을 때 양말을 벗고 성하가 말하는 그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하층민들? 가방끈이 짧은 탓에 언제 해고될지도 모를 그런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당신이 말하는 것 역시 부르주아의 논리에 불과해요. 아시겠어요? 경제활동이 돈을 축적하는 것으로 변질 됐다구!? 여길봐! 이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그 돈이라는 걸 모아본 적이 없어요. 알겠습니까? 이 사람들의 꿈은 단 돈 100만원이라도 모아보는 거라고. 그 돈으로 맛있는 고기라도 배불리 사 먹는 거라고요. 니미럴. 당신은 통장에 잔고도 두둑할 테니, 잘도 초월하겠구만! 


최 : 아… 아니.. 지.. 지금 성하께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이 사람이 돌았나?!


진 : 뭐야, 니미럴은 안 됩니까? 


나 : 욕을 하셔도 된다고 공지 드렸습니다.


압 : 익스큐즈미. 니미럴이 무슨 뜻입니까. 번역기로 번역이 안 되네요. 


최 : 아, 저.. 성하… 그게...


고 : 무슨 뜻은 무슨 뜻이야. 니 애미랑 씹하란 뜻이지. 


최 : 저저저! 교양 없게!


나 : 아, 네 토론이 과열되는 것 같습니다. 양측 모두 상대에 대한 비방 비난보다는 논리적인 비판을 우선으로 말씀을 해주시고요. 불필요하게 욕설을 사용하시는 경우에는 앞으로 사회자의 권한으로 경고를 드리겠습니다. 경고를 3회 이상 받을 경우 본 대담회에서 퇴출됩니다. 


진 : 뭐, 니미럴 한 번 했다고 갑자기 없던 규칙이 생기고 그러네.


고 : 니미럴!


나 : 고 선생님, 경고 한 번 드립니다.


고 : 어이쿠. 네네.


나 : 자, 지금까지 우리 양말 벗기 무브먼트 측에서는 양말을 벗음으로써 인위적인 욕망의 탈을 벗을 수 있고 인간이 보다 자연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에 충실할 수록 무한한 자유가 실현되고 인간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의견이었고요. 우리 양말 공장 측은 그것은 부르주아의 논리에 불과하다, 이미 가져본 자가 그 너머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은 아직 가지지도 못해본 자의 기회와 권리를 박탈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보편 인간이란 허상이다, 인간은 철저히 계급에 귀속된다, 이런 의견이었습니다. 양측의 주장이 아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처음 드린 질문은 ‘양말 벗기 무브먼트'가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는가 하는 것이었는데요.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답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 시간 관계상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다음 질문은 이겁니다. 인류가 발전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그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 왔습니다. 하나는 인간 자신의 변화이고, 또 하나는 사회제도의 변화입니다. 어느 쪽이 더 우선입니까. 혹은 어느 쪽이 더 근원적입니까? 이 질문은 우리 대담회의 주제인 진보와 진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겠군요. 요번 질문은 우리 진중겸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해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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