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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긴 소설

양말 벗기 무브먼트 6

멀고느린구름 2011. 10. 7. 20:21


6. 압둘 아자르와의 단독 인터뷰 3

 


 의전차는 어느덧 한남대교를 건너 장충체육관 방향으로 막힘없이 달리고 있었다. 승부를 걸어야 한다. 결국 포인트는 내가 압둘 아자르를 논리로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렵사리 이 차에 오른 목적은 압둘 아자르와 고씨를 만나게 하는 데 있었다. 전략을 바꿨다.

“한 노동자의 일생에 대해 관심이 있으십니까?”

“저는 모든 중생의 일생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모든 중생의 일생은 모든 중생에게만 의미 있을 뿐, 한 노동자의 일생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 한 노동자는 모든 중생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한 노동자는 단지 한 노동자일 뿐. 모든 중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마스터의 양말 벗기 무브먼트는 모든 중생은 구원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노동자는 절대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도자여, 그것을 확신합니까?”

“확신합니다.”

압둘 아자르는 말 없이 내 눈을 이윽이 들여다보았다. 독심술을 익힌 것일까. 그렇다면 낭패였다. 전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대개 이럴 때 저들이 간파하는 것은 눈동자의 흔들림이나 동요하는 한 순간의 빛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루에 하나씩 익히는 협상 심리>, <이기는 대화법>, <흔들리지 않으면 통한다> 따위의 심리서적이라면 수 십권을 읽은 나였다. 나는 진심을 다해 연기했다.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최대한 총명한 광채를 발하게끔 애썼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압둘 아자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양말 공장 노동자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그들은 단지 조금 더 높은 세계를 모를 뿐입니다. 저의 책이나 TV강좌를 추천해주시지요. 그들은 짐을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오만하시군요.”

무리수였지만 도발할 필요가 있었다. 압둘 아자르는 표정의 경직을 감추지 못했다. 이내 그의 얼굴에 당혹스러워 하는 빛까지 떠올랐다. 경직된 표정 그 자체보다 그것을 감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더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리라.

“구도자여, 그대는 오만함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시공의 제약이 있습니다. 가장 짧은 순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하지만 그 짧음과 많음 가운데서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면 한 번 돌아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마스터, 오만함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오직 오만한 사람뿐입니다. 한국 국민의 15%는 마스터의 방한과 상관 없이 앞으로도 양말을 신겠다고 결의하고 있습니다. 이미 양말을 벗었거나, 벗기를 계획하는 85%의 사람들은 마스터의 방한이나 마스터를 존중하는 매체와의 인터뷰따위와는 어차피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마스터의 가르침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실은 ‘압둘 아자르’라고 하는 ‘우상'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인을 받고, 당신과 함께 사진을 찍고, 당신의 육성을 듣기 위해 집중하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진정 마스터의 가르침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이들은 당신의 가르침에 물들지 않은 15%입니다. 그들은 귀를 기울이고 마스터가 깨달은 것의 허점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마스터는 ‘팬 미팅'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까, 아니면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까. 마스터의 깨달음을 진정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한 노동자의 일생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압둘 아자르가 굵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시선은 내 눈동자를 파고들었다. 그러는 사이 의전차는 동국대학교 앞을 지나 S호텔 입구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차가 멈추고 뒷문이 열렸다. 수 십 명의 기자들이 뷰파인더에 눈을 고정 시킨 채 압둘 아자르가 내리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압둘 아자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관심이 있습니다.”

나는 재빨리 상의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압둘 아자르에게 내밀었다.

“연락주십쇼.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주최측 직원이 아닙니다. 마스터에게 관심이 많은 한국의 작가입니다. 꼭 다시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오, 프리덤.”

제법 경건한 마음을 담은 합장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오, 프리덤.”

압둘 아자르도 합장으로 답했다. 그는 빙긋 웃으며 열려진 뒷문으로 차를 빠져나갔다. 플래시 세례가 퍼부어졌다. 기자들의 무리가 압둘 아자르의 뒤를 쫓았다. 그 틈을 타 나는 반대편 문으로 유유히 내렸다. 맑은 가을 하늘에 커다란 뭉게구름 하나가 지나고 있었다. 


2011. 10. 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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