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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긴 소설

양말 벗기 무브먼트 5

멀고느린구름 2011. 10. 5. 21:03


5. 압둘 아자르와의 단독 인터뷰 2


  S 호텔에 도착하기 전까지 승부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가용한 시간은 1시간 남짓. 한 인간을 설득하는 데에는 무리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외국인인 데다가 세계적인 성자였다. 성자와의 인터뷰 경험은 없었다.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당국에 의해 입국이 거부되고 있었고, 틱낫한은 베트남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으며, 테레사 수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오쇼 라즈니쉬 역시 수 많은 국내 팬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방한하지 않았다. 그렇게 헤아려 보니 이것은 보통 인터뷰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성자와 나누는 첫 인터뷰였던 것이다. 피차 영어발음은 토속적이다. 그렇다면 승부처는 내공이다. 성자의 내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압도 당하지 않을까. 혹, 갑자기 차문을 열고 나를 발로 뻥 차버리는 것은 아닐까. 쓸데없는 고민들로 시간을 10분이나 허비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압둘 아자르는 말없이 자외선 차단 코팅이 된 차 유리 밖의 회색빛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화두를 던지자. 구질은 스트라이크.

“마스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당신이 대답하셔도 좋고 대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대답하는 순간 당신은 크게 변화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답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작은 변화를 얻을 것입니다.”

압둘 아자르는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대답이 변화할 것입니다. 질문 하세요. 구도자여.”

“거두절미하겠습니다. 마스터의 양말 벗기 무브먼트는 수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해방시켰다고 평가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지옥의 구덩이에 떨어진 이들도 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양말 공장 노동자들이지요. 자본가들은 어떻게든 연명해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일순간 일할 곳을 상실한 노동자들은 생존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이것은 종교의 오래된 화두였습니다만, 마스터에게도 동일한 화두입니다. 마스터가 말하는 자유도 결국 가진 자들의 자유가 아닙니까.”

“구도자여. 그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가진 것도 영혼이요. 가지지 못한 것도 영혼입니다. 좀 더 가진 것도 영혼이고, 좀 덜 가진 것도 영혼입니다. 자유는 영혼에게 주어진 것이지 계급이나 신분, 또는 자본에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 프리덤.”

“마스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또 추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우리는 자유롭게 통제할 수 없습니다.”

“구도자여, 이번에는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일주일을 굶었습니다. 당신 앞에는 사람이 먹는 음식과 개가 먹는 음식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것을 먹겠습니까.”

“물론, 사람이 먹는 음식입니다.”

“다시 질문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역시 당신은 일주일을 굶었습니다. 당신 앞에는 사람이 먹는 음식과 개가 먹는 음식이 놓여 있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100달러이고, 개가 먹는 음식은 무료입니다. 어떤 것을 먹겠습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입니다.”

“구도자여, 사람이 먹는 음식과 개가 먹는 음식의 영양분은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다만 그대의 머릿 속에 사람과 개가 구분지어졌을 뿐입니다. 인간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 자연계 속에 항상 그러하게 존재합니다. 단지 사람이 사람의 것과 사람의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지 못할 따름입니다. 인간의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서 양말을 벗는다 하여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요. 인간의 음식을 제대로 못 먹으면서도 양말을 벗는다 하여 또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양말을 벗음으로써 그대는 대지의 운동에 참여하고 바람의 일부가 되며 사고의 채널을 우주의 주파수에 맞추어야 합니다. 들을 귀가 있으면 들으시오. 오, 프리덤.”

“오, 프리덤….”

  과연 만만치 않은 내공이었다. 압둘 아자르는 논리의 싸움을 단숨에 깊이와 스케일의 싸움으로 바꾸어버렸다. 스트라이크로는 무리였다. 체인지업이 필요했다. 압둘 아자르는 흡족한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전열을 가다듬기로 했다. 




2011. 10. 5.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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