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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 6점
고든 리빙스턴 지음, 공경희 옮김/리더스북


"나에게 완벽한 상대는 반드시 존재한다." 232 쪽


  시중에 사랑에 관한 책은 이제 인구 100명당 1종씩 선물해도 될 정도로 차고 넘치는 듯하다. 하지만 불혹을 넘은 노년의 정신과 의사가 위와 같이 선언하는 책은 처음 발견했다. 대부분의 사랑에 대한 조언을 담은책들에서는 '완벽한 상대'라는 허상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 또한 사랑으로 방황하던절 그런 류의 책들만을 접해 왔다. 그래서 호기롭게 완벽한 상대는 심지어 '반드시' 있다라고 호기롭게 쓰고 있는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고든 리빙스턴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가, 정신분석의, 작가로서 1968년부터 오랜 세월 활발히 활동해온 저명인사이다. 사실은 '하우 투 러브(How to Love)'라는 단순한 원제를 지닌 이 책은 리빙스턴이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며 축척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담담한 조언을 담고 있다. 

  책을 펼쳐들고 목차만 따라가 읽어보더라도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행복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낭만적인 감정에 취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자신에게 취한 사람은 타인의 심장박동을 듣지 못한다. 
홀로 설 수 없다면 둘이서도 함께 설 수 없다. 
완벽에 대한 집착은 만족을 모른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타인의 세계에 들어설 수 없다. 
풍향은 못 바꾸지만 돛을 조정할 수는 있다. 
진정한 친절은 주고받는 것을 계산하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마음도 통하지 않게 된다. 
웨딩케이크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음식이다. 
나에게 완벽한 상대는 반드시 존재한다.
환상의 터널을 벗어나는 순간 진실한 사랑이 시작된다. 

등등 노년의 상담가는 벼르고 벼뤄 온 말을 쏟아내듯이 사랑의 모든 요소들과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개인의 마음 요건에 대해서 차례 차례 짚어간다. 궁극적으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올바른 마음의 상태를 갖춘 사람만이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으며,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에게 잘못된 애정을 쏟는 데 소중한 삶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만남으로서 서로를 성장시키고 삶을 퓽요롭게 만드는 '진정한 짝'이 존재하며, 우리가 정녕 애정을 쏟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바로 그 진정한 짝이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유연해져야 하며, 보다 웃음이 많아야 하고, 보다 배려해야 하며, 보다 현명해져야 한다고 리빙스턴은 말한다. 자신의 세계에 갇힌 사람은 타인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지 못하며, 웃음이 적은 사람은 일상에서 행복을 길어낼 수 없다. 계산하려는 사람은 상대에게 역시 계산 당하기 마련이며, 현명하지 못한 사랑은 방향을 잃고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만다. 

  진정한 짝, 완벽한 상대는 존재한다. 그러나 흔히 우리가 낭만적으로 이야기하듯 세상에 유일한 단 하나의 '소울메이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짝은 복수로 존재한다. 리빙스턴이 말하는 완벽한 상대란 다름 아닌 그가 지금까지 독자에게 요구했던 인간상을 지닌 상대를 말하는 것이다. 보다 유연하고, 보다 웃음이 많고, 보다 배려하며, 보다 현명한 상대 말이다. 

  리빙스턴은 사랑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낭만적 사랑의 신화에 사로잡힌 청년들은 알콜중독자, 바람둥이, 우울증 환자, 완벽주의자, 편집증 환자 등등과 사귀면서 상대를 언젠가는 사랑의 힘으로 이상적인 상대로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야심찬 청년들의 그런 시도는 쓰라린 상처와 지독한 분노를 낳은 채 쓸쓸한 실패를 맞이 하는 것이다. 

  내가 20대 시절 뜨겁게 때로는 건조하게 때로는 서럽게 겪어내야 했던 사랑들도 그런 쓸쓸한 실패의 과정이었다. 불완전한 청년들은 서로의 불완전함을 보완해주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려 서로를 끌어안지만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공백에 불안해하고 끝끝내 절망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토록 사랑하는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까. 어째서 우리는 이다지도 서로 다른 존재인가. 욕망과 무지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며 서로를 할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구원'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리빙스턴은 그런 청년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인간이 풍향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하지만 돛을 조정할 수는 있다. 사랑을 '갈증'이라고 여기면 상대를 변화시켜 내가 원하는 목마름을 채우고자 애쓰게 된다. 그것은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을 틀어 보려고 힘쓰는 것과 같다. 허나 사랑을 '내적인 충동'이라고 여기면 나를 변화시켜 내가 원하는 사랑을 상대에게 주고자 애쓰게 된다. 

  어린 시절 나는 사랑을 '갈증'이라고만 생각했다. 내 외로움과 허기를 채워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쳤고 나의 조난 신호에 이끌린 사람들과 만났다. 그러나 그런 식의 사랑이라면 인류는 모두 119 구조대원과 사랑에 빠져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조되고 난 후에는 119 구조대원의 존재를 망각한다. 사랑에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싶다. 물을 마시면 더 이상 목이 마르지 않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나는 리빙스턴의 깨달음에 공감한다. 

 장마철이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구하려 뛰어들었다가 같이 죽음의 길에 접어드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많이 들어보았다. 외로움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구하려고 함부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줄을 던지거나, 튜브를 던져주거나, 진짜 119 구조대원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해서 먼저 스스로 그가 물 속에서 빠져나오도록 해야한다. 사랑은 그가 뭍으로 나온 시점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과연 누가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 이루는 수 많은 기적들에 대한 증언을 우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완벽한 사람이 완벽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지극히 현명한 사람들만의 세상은 조금 숨막히는 세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앞서 기우를 지닐 필요는 없다. 인간은 지극히 지극히 불완전한 존재이고 아무리 대단한 현자일지라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붓다와 예수는 수 천년 전에 태어나 현명한 삶에 대해 강론했지만 세상은 그다지 현명해지지 않았다. 사랑 또한 그러하리라. 비관론일지 모르나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의미하는 그대로의 천국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조금 더 나아가 사랑하는 상대의 행복을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병적인 완벽주의자와 우리가 만나야 할 완벽한 상대는 어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완벽주의자는 완벽하지 않은 것에 불안을 느끼고 화를 내지만, 완벽한 상대는 완벽하지 않은 것에 미소를 짓고 겸허히 사과한다. 여유를 가지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나는 당신에게 완벽주의자가 아닌 완벽한 상대가 될 수 있을까. 가만히 내 마음의 돛을 점검해본다. 


2011. 8. 1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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