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산문/에세이

강아지는 이렇게 말했다

멀고느린구름 2011. 4. 23. 08:08

 장을 보기 위해서 새로 친구가 된 자전거 A군과 굿모닝 마트로 달려가고 있는 길이었다.  느릿느릿 패달을 밝고 있는데 오른편에 강아지 한 마리가 멀리서부터 나를 멀뚱히 바라보더니 내 자전거의 이동 경로를 좇아 고개를 움직여 오는 것이었다. 강아지를 지나쳐서 꽤 멀리까지 왔는데도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방향을 돌려 강아지 옆에 갔다.

A군을 한 켠에 세워두고 쪼그려 앉았더니 강아지가 와락 달려들며 꼬리를 흔든다.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눈이었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머리며 등이며 쓰다듬어 주었더니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 한다. 낡은 카센터 앞에 묶여져 있는 강아지는 그렇게 하루 종일 누군가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주길 기다리고 있었을까.

낡은 카센터는 불이 꺼져 있고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아지의 주인은 어떤 생각으로 이 아이를 여기다 홀로 버려둔 것일까. 강아지가 있는 곳은 대로변으로 하루에도 수 백대의 차량이 지나다닐 곳이었다. 주변은 온통 평야라서 안정감이라고는 없는 곳이다.  만약 누군가 나를 이곳에 묶어놓았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혀를 깨물고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였다. 

얼마나 외로웠던지 강아지는 처음 보는 내 앞에서 배를 드러내고 뒹굴기도 하고 내밀어 놓은 내 손을 연신 할짝거렸다.  일어나야 했지만 쉬이 몸이 일으켜지지 않아 조금 더 강아지 곁을 지켰다. 멀리 지평선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노을은 오늘따라 더욱 처량해보였다. 내일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없어보이는 냉담한 노을이었다. 내가 노을을 바라보자 강아지도 덩달아 몸을 부비는 일을 멈추고 노을을 바라보았다. 강아지의 갈색 눈동자에 비쳐둔 귤빛 노을이 아름다웠다. 강아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노을을 수 백번 바라보았어요. 라고. 그때 강아지의 얼굴은 어쩐지 수 십년을 살아온 노인의 얼굴 같았다. 어쩌면 강아지가 아니라 노년의 개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허나 외로움이란 혹은 쓸쓸함이란 나이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느 때에나 마음의 빈터는 있기 마련이었다. 

나는 강아지의 백발을 한 번 쓸어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아지는 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앉아서 앞 발로 땅을 지지한 채 몸을 곧추세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흔들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페달을 밟아 노을이 지는 방향으로 완만한 비탈을 내려가며 강아지의 하루를 생각했다. 오늘 하루 강아지는 몇 사람의 온기와 마주했을까. 혹 내가 단 한 번의 사람이지는 않았을까. 기다림과 짧은 만남과 담담한 이별. 나는 누군가를 그렇게 절실하게 기다려본 적이 있었던가, 그 사람이 내게 왔을 때 그토록 다정하고 행복하게 기뻐해주었던가, 이별 앞에서 담담할 수 있었던가. 

자전거를 멈춰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강아지는 아직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왠지 원망이나 아쉬움보다는 다른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인생이란 그런 거예요. "

다음 번에는 무언가 맛난 선물을 가지고 강아지를 찾아보아야겠다 다짐하며 다시 가던 길로 페달을 밟았다. 강아지의 마지막 모습이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2011. 4. 22(금). 멀고느린구름.  

'산문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로 고민  (2) 2011.05.07
개탄스러운 한국의 음주문화에 관하여  (1) 2011.04.26
잠시 휴식 중  (2) 2011.04.23
나의 새 어쿠스틱 기타  (1) 2011.04.11
나는 가수다 논란에 대해  (0) 2011.03.27
Comments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