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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닐라 -
한 때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던 강아지 인형이 있었는데, 그 강아지 이름은 아마 바닐라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디로 간 걸까. 혹은 언제 간 것일까. 방학이 되어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하루 종일... 나는 바닐라를 찾고 있다. 10년이나 넘게 잊고 있던 것이 왜 갑자기 이리도 중요해진 것일까 자문해보지만 딱히 답은 없다. 다만 지금은 바닐라의 까맣고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내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을 뿐. 책상 서랍과 옷장 구석구석. 침대 밑. 심지어 찬장 속과 김치 냉장고 안까지 들여다보았으나 바닐라는 없다. 엄마는 내가 아침부터 수선을 피우는 걸 보며 "우리 새끼가 드디어 제 손으로 방 청소를 하네." 라며 대착각 중이어서 바닐라의 행방을 섣불리 물을 수도 없다. 결자해지라는 사자성어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스토커가 뒤지고 간듯한 방을 보니 편두통이 도질 것 같다.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거리는 나를 약올렸다. 하늘은 푸르디 푸르고, 한가로운 양구름들이 삼삼오오 떠다닌다. 햇살의 축복을 받아 반짝거리는 아스팔트길과 그 위를 채운 신의 자식들(처럼 보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나는 자전거와 그림자를 만들어가며 거리를 지난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슈퍼에서 수박바를 사서 입에 물었다. 달콤한 하드 국물이 목구멍을 넘어가기도 전에 '고요'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고요의 얼굴이 하늘 위에 있기라도 한듯이 하늘을 올려다 본다. 무시함 표정의 양구름들만 지나고 있다. 민들레 홀씨가 날아와 코에 걸린다. 엣취. 재채기 한 번에 고요의 얼굴이 확 달아난다. 고요는 어디에 있는 걸까. 바닐라는 어디에 있는 걸까.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 왠지 결연한 느낌이 들어 자건거에 올라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자전거는 한 손에 수박바를 쥔 주인을 불안해하면서도 마지못해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10년 전으로 해두기로 하자.
10년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을 때 나는 곧장 바닐라를 데리고 부자아파트 뒷편에 있는 동산에 올랐었다. 약간 수줍은 많은 성격이었던 나는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친구를 한 명도 만들지 못했었다. 방과 후의 낙이라고는 부모님이 퇴근해서 올 때까지 바닐라와 뒷 동산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구경하는 것이 다였다. 이렇게 얘기하면 헤르만헤세 같은 구름 애호가처럼 생각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솔직히 나는 서쪽 끝에서 흘러온 구름이 동쪽 끝까지, 그러니까 한 쪽 끝에서 한 쪽 끝까지 흘러가는 것을 온전히 지켜본 적이 없다. 바닐라가 제공해주는 손바닥만한 온기에 취해 쉬이 잠이 들어버리기 일쑤였으니까. 서쪽에서 등장한 양구름이 모래알만큼씩 이동하는 것을 보다 까무룩 잠들었다 깨어보면 양구름이 용구름으로 변해 있는 식이었다. 그렇게 한 낮에 한국식 시에스타를 즐기는 버릇을 들인 나는 중고등학생이 되어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낮잠 자는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어, 오후 3시만 되면 저절로 몸의 온 기능들이 폐점 준비를 시작한다. 스르륵 내려오는 셔터들과 사투를 벌이곤 하면 좋겠지만 나는 평화주의자다. 그냥 자버려서 세계 평화에 일조한다. 가끔씩 생각한다. 왜 시에스타가 이탈리아에만 있는 것인가. 전 세계에 시에스타가 있어서 모두 나른해지는 시간대가 되면 하던 일을 접어두고 잠을 자면 좋지 않을까.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지키는 군인도 그때는 자도록 하자. 뭘 모르는 말인지 몰라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30% 이상은 감소하리라. 잠이 오는데도 자지 않고 불필요한 일을 자꾸 벌이니까 스트레스가 쌓이고 불행해지는 것이다. 온 지구인에게 시에스타를!
잡다한 생각을 하는 사이에 3시가 되었다. 자전거를 멈추고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이제 지구보다 무거운 졸음이 밀려올 것이다. 하늘 위에 양들이 좀 더 많아졌다. 아주 먼 나라로부터 먼 나라까지 하늘의 양들은 기나긴 여행을 하고 있다. 이제 눈꺼풀이 닫힐 시간. 어, 그런데 오늘은 왠일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정신이 티없이 맑기만 하다. 무슨 조화일까. 아까 달아났던 고요의 얼굴이 다시 선하게 떠오른다.
고요는 고등학생 시절 합창반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이다. 내성적이고 전학을 자주 다녀 정서적 지주가 없었던 내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주었던 아이다. 고요를 처음 만났던 때가 약간 드라마틱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고1 때 어떤 특활부서에 들까 고민하다 슬쩍 음악실에 들어 갔었는데 거기에 고요가 먼저 와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태어나서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는 사람을 본 건 처음이었다. 고요의 연주가 끝나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던 고요. 그때 고요의 맑고 투명하던 눈동자가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하다. 우리는 둘 다 야한 동영상을 몰래 보다 부모에게 들킨 것 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멍하니 쳐다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맹한 표정으로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누...누구 곡야?" 고요가 말했다. "라벨." 그리고 이어진 나의 환상적 응답. "라벨? 이름 붙이는 스티커?" 덕분에 고요는 자지러지게 웃었고,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전봇대가 되었다. 고요의 배꼽이 거의 다 빠질 무렵에야 나는 전봇대에서 사람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함께 합창단원이 되기로 음악실 결의를 맺었다.
이상하다. 오늘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되려 정신이 점점 더 맑아지는 것 같다. 무슨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어쩌지. 거리의 사람들은 다들 지나치게 활기차 보인다. 평소에는 이맘 때쯤이면 졸리고 지쳐보였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로? 오늘은 지구가 살짝 거꾸로 도는 날인가 보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바닐라를 다시 찾아보기로 한다. 사실 자전거를 끌고 나온 게 희미한 기억이지만 어릴 적에 종종 갔던 뒷동산에 바니라를 묻은 일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닐라가 왜 거기에 묻혔어야 했는지. 누가 주체가 되어 그 일이 거행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 동산의 어느 흙 속에 바닐라가 누워 있는 영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 살던 동네는 자전거로 20분 정도만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서쪽이었다.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양구름들이 흘러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지나간 시간들이 자전거 바퀴에 하나 둘 밟혔다.
허탕이었다. 언덕에는 바닐라의 실오라기 하나도 없었다. 설사 있었다해도 찾을 방도가 없었다. 산을 다 파헤칠 수는 없으니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거대한 피곤이 급습해왔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 내일의 일은 신에게로.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고요가 계속 나를 불렀다. 고요는 민들레 홀씨였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또 바닐라였다. 민들레 홀씨일 때는 내 코를 계속 간지럽혔고, 바닐라일 때는 바지코를 물고 어디론가 나를 이끌었다. 고요가 부르거나 이끄는 곳으로 가다보니 벼랑 끝이 나왔다. 고요는 민들레 홀씨니까 가뿐히 하늘을 날아 반대편 벼랑으로 옮겨 가 나를 불렀다. 나는 애처롭게 "고요야, 넌 민들레 홀씨지만 난 사람이잖아." 라고 말했다. 고요는 아무 것도 못들은 양 나를 불렀다. "고요야, 넌 민들레 홀씨지만 난 사람이잖아. " 우리는 서로 같은 말을 수 없이 되풀이했고, 난 점점 울먹이기 시작했다. "고요야, 고요야, 넌 민들레 홀씨지만 난 사람이잖아. 난 그냥 사람이잖아." 이런 꿈을 꾸었다. 일어나보니 눈이 부어 있었다.
고요에게서 온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확인해봤다.
'시간이 흘렀다고 느끼는 건 언젤까...'
아득한 기분에 빠지게 하는 문장이었다. 고요가 어떠한 맥락에서 그 문장을 나에게 보냈고 나는 그때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미 흘러가버린 구름처럼 그 기억은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고요를 만나 그때 왜 나에게 그 말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고요가 기억하고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커튼을 젖히니 창 밖에서 검은 구름들이 어슬렁 어슬렁 지나고 있었다. 내일을 맑음이라던 기상 예보는 언제나처럼 빗나갔다. 신은 오늘도 자존심을 지켰다.
고요와 나는 저녁 시간이면 학교 옥상에 올라 내일의 날씨를 점치는 놀이를 하곤 했다. 놀이의 발단은 이렇다. 수능 모의고사에서 학교별 성적 상위권을 점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학생들을 시험의 수렁에 빠뜨리던 교장이 잠시 뭘 잘못 먹었는지 소풍 일정을 잡은 것이다. 때는 5월이었고 머리에 팬티를 쓰고 거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대도 용서받을 것처럼 좋은 날씨가 계속 되고 있었다.
" 내일은 비가 와."
고요는 단호했다.
"기상 예보에 내일은 인류역사에 유래가 없는 맑은 날씨가 될 거라든데."
나는 없는 말까지 지어내며 고요의 단호함을 무너뜨리려 애썼다. 하지만 허사였다. 고요는 마치 대예언가처럼 고고한 자세로 단언하는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비는 와. 이건 바꿀 수 없는 운명야."
]바꿀 수 없는 운명 따위는 없어라고 악다구니를 쓴 다음날 보란듯이 폭우가 내렸다. 모두가 소풍 취소의 충격 속에 얼이 빠져 있을 때 고요만이 여유롭게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교실 귀퉁이에서 읽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때 얼핏, 고요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었다. 인간에 대한 경외감도 사랑을 싹트게 하는 것일까.
그날 이후 우리는 날씨 점치기 놀이를 시작했다. 고요의 예측은 늘 정확했다. 반면 나는 중앙기상청의 실무자와 통성명을 할 정도로 친해졌지만 고요를 이기지 못했다. 고요는 마치 풀벌레 같았다. 풀벌레들은 그때 그때 순간의 습도와 기온으로 다음의 날씨를 직감해낼 수 있다잖은가.
나는 방 안 구석에 입을 꼭 다물고 앉아 있는 피아노를 바라봤다. 피아노의 입 속에도 검은 구름들이 잔뜩 지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간신히 이불 속을 빠져 나온 나는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아 건반 뚜껑을 열었다. 검은 먼지들이 어스름한 방 안에 퍼진다. 허공에 손을 휘히 저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건반들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의 머리를 눌렀다. 도~. 시의 머리를 눌렀다. 시~. 제법 괜찮은 소리가 났다. 창 밖에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뒷동산에 오를 수 없어서 일찍 집에 들어와 피아노 앞에 앉았었다. 바닐라를 피아노의 왼쪽 귀통이에 앉혀두고 '클레멘타인'이나 '등대지기'를 연주하곤 했었다. 고요는 지구에서 '클레멘타인'을 가장 잘 연주하는 아이였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고요의 반주에 맞추어 나는 노래를 불렀다. 바닐라는 내 손가락을 잡고 춤을 추었다. 소박한 무도회였다. 우리는 약속했다. 고요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면 반드시 '소박한 무도회'라는 이름으로 합동 공연을 하자고, 바닐라도 반드시 무대에 함께 서자고 말이다.
서툰 솜씨로 클레멘타인의 계이름을 눌렀다. 눅눅한 방 공기 때문에 소리는 쉽게 퍼지지 못하고 피아노 주위에서 맴을 돌았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노래를 불렀지만 더 이상 소박한 무도회의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요도 바닐라도 없으니까.
건반에서 손을 뗐다. 표현할 수 없는 말들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거대한 물음표가 나를 꾹꾹 눌러왔다. 바닐라를 찾는 것은 더 이상 무모한 일 같았다. 바닐라는 이 지구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닐라는 무심결에 삭제되었다. 구름이 한 곳에서 한 곳으로 흘러가는 사이에.
바닐라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나니 이번에는 고요가 문제였다. 마지막 한 방을 기다리던 홈런 타자처럼 고요는 내 마음의 마운드에 올라섰다. 고요의 청명한 눈동자는 내가 공을 던져주기만을 애처롭게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포수와의 호흡 불일치로 빈 볼만 연신 던져대고 있었다. 고요가 정확히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 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글쎄, 잘 모르겠는데. 실은 나도 궁금해서 너한테 물어 보려고 그랬어. 너가 고요랑 젤 친했잖아."
친구들은 미리 입을 맞춰 놓은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했다. 배후 세력을 밝히래도 묵비권만 내밀었다. '내가 고요랑 제일 친했나?' 나는 새삼 대단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마냥 멍해졌다. 모두가 이 지구상에서 고요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다른 이들이 고요에게 다소 무관심해도 되는 면죄부를 제공해주었다. 고요에게는 그래도 네가 있으니까, 최후의 최후에는 네가 지켜줄 테니까. 친구들의 출처 모를 신앙 앞에 나는 아뜩해질 따름. 마치 내가 어리디 어린 아이 한 명을 꿰어다 시장 한 복판에 사탕 한 봉지와 함께 내다버리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모두가 고요를 버렸지만, 진짜 버린 사람은 내가 된 것이다. 고요야 대체 어디 있는 거니! CNN에 출연해 미아찾기라도 하고 싶었다.
고요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010-000-0909는 고요의 전화번호가 분명했다. 우리는 함께 휴대폰을 샀었고, 뒷 번호를 한 자리만 차이 나도록 맞췄었다. 고요가 0909, 내가 0910이었다. 고요의 집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아니, 계산해보니 고요와 연락을 하지 않은지 1년하고도 3개월 23일이 지나 있었다. 고요는 1년 3개월 23일 전에 보낸 '시간이 흘렀다고 느끼는 것은 언제일까...'라는 문자와 함께 세월 속에 박제된 인물 같았다. 고요와 나는 왜 연락을 끊었지. 묘하게도 나의 생에서 그 페이지만 누군가 찢어간 것 같았다. 전화번호와 기억이 사라지지 고요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고요가 고요의 인생을 어디선가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고요를 죽인 것일까. 시간이,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어떤 일은 그 일에서 손을 놓았을 때 되려 해결이 된다. 한창 고요를 찾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열을 조금이나마 식히기 위해 다시 수박바를 입에 물었고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학교 회보에 실린 '잃어버린 사랑을 찾습니다'라는 단편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하필이면 엘라 피츠제럴드의 목소리로 '미스티(misty)'가 흘러나왔다. 안개. 영국. 떠나다. 고요. 기브(give). 바닐라 등의 단어들이 연쇄적으로 떠올랐고 영국의 안개 속으로 숨기 위해 떠난다는 고요에게 바닐라를 선물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영상은 마치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져 언제 적의 것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그건 1년 3개월 전의 어느날의 일일까. 그보다 더 멀었던 날의 일일까. 아니면 내가 미처 기억 못하는 어제의 일인 것일까. 혹은 아직 오지 않은 어느 미래의 일일까. 시간은 한 점에서 한 점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어느 시점은 더욱 분명하고 어느 시점은 너무 흐릿하다. 시간의 거리와 전혀 무관하게. 마치 시간들의 왕국이 있어 어느 지역은 안개가 잔뜩 낀 날씨고, 어느 지역은 화창한 것처럼.
아무튼 바닐라의 행방은 분명해졌다. 지구 어디에 있든 바닐라는 고요와 함께다. 아스피린을 먹은 것처럼 마음이 안정되었다. 허나 고요가 정말로 영국에 갔는지는 아직 신화 속의 이야기였다. 고요는 무엇 때문에 영국의 안개 속에 숨으려 했을 까. 나는 또 무엇 때문에 가장 아끼던 바닐라를 선물하면서까지 고요의 떠남을 도왔을까. 수박바와 어울리지 않게 유리벽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수박바가 입 안에서 다 녹는 동안에도 나는 더 이상 생각을 진행시킬 수 없었다. 기억도 자꾸자꾸 녹아내리고. 비에 씻겨버리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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