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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는 방법

 

 

 

  버스 구석 자리에 앉아 귤을 까서 입에 넣고 있을 때였다. 귤빛 노을이 부시게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노을의 조금은 긴 이야기 속에선 시큼한 맛이 났다. 입 안의 귤은 다소 쓸쓸해했다. 버스는 어느 정류장에서도 멈추지 않고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앉아 있으면 세상의 높고 차가운 소리만 들려온다. 낮고 따스한 소리는 단단한 유리창에 의해 검문 당한다. 쓸쓸해하는 귤에게 한 자락 위로가 될까하여 지나간 노래들을 흥얼거려 본다. 노래 속에서는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 웃고 있기도 하고, 저주하고 있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사랑은 즐거운 것이었는지, 저주 받을 죄였는지, 양희은의 노래처럼 쓸쓸한 것이었는지 도시 알 수 없다.

 

  도시는 하나 둘 불을 켜며 저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버스는 마침 한강 위를 지나간다. 버스 옆으로 전철이 오래된 영화처럼 스쳐간다. 전철 속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들 서글픈 표정을 하고 있는지. 생각한다. 아, 그래 그들도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라고.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최대한 지쳐 있는 표정을 지어야만 한다. 그리고 깊은 존재의 외로움을 느껴주는 센스도 있으면 더욱 좋다. 이 때의 마음가짐은 식어버린 홍차의 자세 정도라고 보면 괜찮다. 붉은 공기를 가르며 사라져가는 전철을 보면 은하철도 999가 떠오른다. 세상의 인간들은 언제쯤 모두 기계인간이 될까. 소년의 강해지고 싶다는 바람. 버스에 앉아서 귤을 까먹으며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는 방법을 듣고 있는 이도 강해지고 싶다.

 

  자유로워야 한다. 언젠가 감상적인 잡지에서 읽은 글이다. '진정한 자유는 돌아갈 곳이 있는 것' 그렇다.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유로워야 한다.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월급 봉투를 품에 넣고도 꿈을 꿀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워야 한다. 은하철도 999가 실재함과 산타클로스의 고행을 신실하게 믿을 수 있는 이여야 한다. 그런 이라면 귤빛 노을이 매일 이 무렵 중계하는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는 방법의 주파수를 수신할 수 있는 것이다. 

 

  입 안의 귤은 끝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혀로 달래고 달래어도 소용이 없다. 모든 저녁이 마지막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도 믿지 않는다. 귤은 너무 나약하고 잘 휘둘린다. 삶이 저녁의 모습일 때 그런 생물과 함께 있는 것은 지치고 힘든 일이다. 달처럼 크고 강하고 깊은 그런 생물은 없을까. 거기에 생각이 이르렀을 때 귤에게 미안해진다. 그래, 지금은 귤을 달래는 일에 전력을 다 할 때이다. 귤아, 귤아 저녁은 끝이 아니야. 저녁은 밤으로 밤은 아침으로 이어지는 거잖니. 솔직히 이런 말은 자기가 말하고도 우습다. 왜냐면 저녁은 끝이니까. 밤도 끝이고, 아침도 점심도 그렇다. 내일은 없다. 모든 순간은 단지 그걸로 끝일 뿐이다. 무엇이 이어지고 무엇이 이어지지 않는가. 버스는 매일 같은 노선을 따라 달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매일 조금씩 다른 음모를 품은 이들이 버스에 타고, 버스 정류장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도 늘 같지 않다. 사람들은 그런데도 착각한다. 이것이 이것에게로 이어지고, 때론 이것이 순환하며 반복되기도 한다고. 그래서 윤회라는 것도 상상해내기에 이른다. 그런 생각이 극에 달하여 전인권은 '돌고 돌고 돌고' 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지구가 돈다고 모든 게 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지구도 사실은 매일 다른 공간을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귤이 지겨워하고 있다. 위로해줄 생각은 않고 엉뚱한 이야기만 하다니. 너의 공부는 그렇게 알량한 지식을 늘어놓고 자랑하기 위함이니. 귤이 비난한다. 대답을 해줘야겠다. 응. 귤은 할 말을 잃고 목구멍 속으로 떨어진다. 허무한 죽음이다. 가끔 생각한다. 죽을 때는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귤 마냥 허무하지 않을런지.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삶의 허무를 조금은 깨달아주어야 한다고 한다. 10대에는 사랑에 취하고, 20대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취하고, 30대는 사랑하는 사람의 조건에 취하게 된다는 메커니즘 정도는 기본 상식이다. 더 나아가서 10대의 사랑이란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면 20대의 사랑도 사랑이 아니며, 30대의 사랑은 사랑이라니? 란 것도 심화 학습해둘 필요가 있다. 좀 더 진보한 사람은 우리가 대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며 어떤 위대한 신비가 조율하는 대로 자연의 흐름을 위해 이용되고 있는 하나의 톱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터득한다. 그들은 절대의 허무를 얻어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는 정기권을 선물 받는다.

 

  버스는 세차고 붉은 겨울의 바람을 가른다. 갈라진 틈으로 푸른 어둠이 세어나온다. 세상의 모든 저녁이 머지 않았다. 헤어지고 만나고 변하고 기다리고 이어지고 끊어지며 오늘의 삶, 오늘의 이 순간도 영원한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버스가 멈춘다. 쓸쓸한 귤이 세 개 남은 비닐 봉지를 들고 버스에서 내린다. 고요한 바람이 불어와 하늘의 별을 가리킨다. 고개를 든다. 겨울 어스름 저녁 하늘의 뜨거운 별들이 웃음도 울상도 아닌 표정을 지어보인다. 따라서 표정을 지어본다. 귤빛 노을이 일러준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정류장에선 세상의 모든 저녁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하루를 잊게 해주는 알약을 건넨다. 먼저 귤을 까서 한 알 입에 넣은 후 알약을 받아 입술 속으로 밀어넣는다. 귤은 더 이상 쓸쓸해하지 않는다. 왜냐면 알약 덕분에 봉지 속에 남겨진 나머지 두 귤에 대해서 잊게 되었으니까.

 

 그리하여 귤을 까먹으며 세상의 모든 저녁으로 가는 방법을 듣고 있던 이는 기계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지구는 멸망했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이름으로 부활했다.

 

 

 

 

2007. 12/3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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