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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처를 인정하는 일의 어려움 2 



동명의 제목으로 한 편의 글을 썼다. 비공개 글이다. 지난 십 여년 간 내 마음의 궤적을 정리해보았다. 흐릿하던 감정들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며칠 전, 우연히 동료 교사와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꺼내게 되었다. 그러자 술에 취한 한 교사가 불현듯 나의 약점들을 지적하기 시작해, 나는 다소 불편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2차로 학교 교사들의 멘토격인 전 교장 선생님과 이사장님 댁에 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두 분에게 여러 좋은 말씀들을 많이 들었다. 이미 자각하기 시작했던 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겸허하게 경청했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생을 사셨고, 여러 문제에 깊이 고민해보셨을 두 어른은 정중하게 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셨다. 그 고마움에 숙연해졌다. 


내게 깊이 와닿은 말은 "자신의 상처에 공감할 수 없으면, 타인의 상처에도 공감할 수 없다."는 말씀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상처를 살뜰히 돌보지 않았다. 상처는 극복해야할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아프다고 주저앉아 슬퍼하고 있으면 살아갈 수 없었던 시절을 나는 살아왔다. 


자수성가를 이룬 이들이라면 타인이 아픔에 더 관대해야할 텐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다. 당장 전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그저 이를 악물고 상처를 이겨낸 사람들은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도 이를 악물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가장 사랑하고 아꼈던 이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대했고,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기억은 다시 나에게 되돌아 상처가 되었고, 나는 그 상처마저 이를 악물고 견디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내가 이를 악물면 악물 수록, 나는 사람과 세상,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고통은 저기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그곳에 머물러 슬퍼하고 아파하는 이들은 나약하고 현명하지 못한 인간들이라고 여겼다. 교만함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 상태에서 장교로 임관하여 수하에 병사들을 거느리게 되었으니 사단이 난 것은 당연했다. 군 생활에 힘들어 하는 한 친구에게 나는 역시 이를 악물라는 해법을 내놓았고, 견디지 못하면 지고 만다고 강요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그 친구는 자살을 시도했다. 


그 일은 나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나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괴물이 되어가는 나를 교정시키기 위해 나는 또 한 번 이를 악물었다. 명상 수련을 하고, 과거와 단절하자면서 무리하게 여러 인간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러고도 어쩐지 나는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오래전 사랑했던 한 여인은 자꾸만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려고 했었다. 비슷한 상처를 지녔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이의 헌신에 대해 나는 이미 극복했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답했었다. 그 사람이 나보다 나를 더 잘 본 거였다. 나는 상처를 덮어놓은 채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을 뿐, 극복한 것이 아니었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으면서도 고개를 저으며 애써 괜찮다고 웃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온전히 알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내 상처를 인정하는 일이 두렵다. 나 역시 상처받았고, 슬퍼할 자격이 있으며, 조금은 상대의 잘못을 비난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 나를 비난했던 말들이 선명히 떠오른다. 나는 아직 용서 받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다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스스로 나를 용서하는 것은 또다른 오만이고, 자기 합리화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나도 힘들었다고 얘기하는 일이 나에게는 어째서 이리도 어렵고 무서울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분명한 것은 이대로 머물러서는 결코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바다와 같이 마음이 넓고, 상대를 좀 더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을 믿으며 한 없는 선함을 흘려보내주고 싶었다. 인생의 전반부에는 결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달라질 수 있을까? 늘 마음 속으로 되묻는다. 달라질 수 있을까. 


당신이 내게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두 분의 멘토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에게 공감하려고 하지 마세요.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공감할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해보세요. 경중을 떠나 누구나 어떠한 일로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이해해보세요.


올 한 해는 최대한 도망치지 않고, 상처가 난 그 자리에 서서 당신들이 던진 모난 돌들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도 볼 참이다. 참말로 이해해볼 생각이다. 



2014. 1. 3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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