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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이기는 것은 힘들었지만 죽이는 것은 쉬웠다. 사람을 이긴다는 것은 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 두 가지 항을 충족시켜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죽이는 것은 오직 지지 않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박 군을 죽이는 일은 너무 간단해서 실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늦은 밤 박 군은 동네 편의점에서 디스 한 갑을 사서 나왔고, 곧 흡연을 위해 인적이 드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가 담배를 입에 물고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는 순간 소년은 그의 뒷목에 과도를 내리 꽂았다. 박 군은 피를 쏟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소년은 그 자리를 벗어나 멀찍이 떨어진 건물의 옥상에서 박 군의 숨이 멎어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거리가 피로 물드는 장면은 붉은 장미꽃이 피어나는 장면과 닮았다. 


   다행히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담임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소년은 전화를 걸었다. 김 군의 일로 상담을 할 게 있다고 전했다. 역시 담임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학교에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소년은 학교는 (당신이 죽을 장소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담임은 건방지다고 말했다. 소년은 당신이 김 군의 부모에게 거액의 촌지를 받은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 씨발, 어디냐. 담임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집에서 걸어 나왔다. 소년은 담임의 집 맞으편 옥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의 머리 위로 바위 하나를 떨어뜨렸다. 명중했다. 소년은 좀 더 먼 곳의 옥상으로 장소를 옮겨 담임의 죽음을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죽여야 할 사람이 많았다. 이곳에 태평하게 있다가는 금새 잡힐 것이다. 신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해도 인간적인 노력이 일부는 필요하겠다. 샤워를 하고 소년은 짐을 챙겨 언덕을 올랐다. 언덕 꼭대기에는 폐허가 된 교회당이 하나 있었다. 여름인지라 지내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세상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좋았다. 


  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하루에도 수 많은 사람이 죽고 있는 세상이다. 셀 수 없는 이유로, 셀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은 매 순간 죽고 있다. 한 편에서는 매 순간 삶을 견디고 있다. 소년은 웃음이 나서 웃었다. 소년은 다음에는 누구를 죽이면 좋을까 고민했다. 희열이 느껴져 다시 한 번 웃었다. 소년은 비로소 온전한 자기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날개가 돋아난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당장이라도 누구든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사이코패스가 된 걸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소년은 정신과 의사의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위를 했다. 최고였다. 모든 것이 최고조였다. 나른한 평화에 사로잡혀 높은 교회당의 천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창에는 ‘타겟3’ 이라고 발신자를 알리고 있었다. 학생주임이었다. 나이스 타이밍. 녹음 될 것이 뻔했으므로 받지 않았다. 곧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미친새끼다음은나냐어디야이새끼야. 소년은 언덕을 내려가 동네에 있는 공중전화기로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학생주임의 출근 여부를 확인했다. 역시 결근. 소년은 기분이 좋아졌다. 


  소년은 학생주임의 집을 찾아가 창문으로 돌을 힘껏 던졌다. 유리창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졌다. 학생주임의 성난 목소리가 곧 들려왔다. 어떤 새끼야! 학생주임은 깨진 창문 사이로 거리를 내려다보았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학생주임이 창가에서 사라진 후 소년은 두 번째 돌을 날려 다른 창문도 깨뜨렸다. 더욱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학생주임이 거리에 서있는 검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소년을 발견했다. 학생주임은 애용하는 각목을 들고 거리로 뛰쳐 나왔다. 소년은 힘껏 달렸다. 학생주임이 뒤를 쫓았다. 소년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만을 찾아서 달렸고, 학생주임은 순순히 뒤를 따랐다. 갈림길에서 소년은 잠시 몸을 숨겼다. 따라오던 학생주임이 소년을 놓치고서 어디로 갈지 두리번거렸다. 소년은 가쁜 숨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빈틈이 생겼다. 소년은 놓치지 않고 달려나가 그의 왼쪽 발목을 식칼로 힘껏 그었다. 학생주임은 비명을 지르며 각목을 손에서 놓치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다음 수순은 정해졌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학생주임의 머리통을 소년은 각목으로 내리쳤다. 학생주임은 쓰러졌다. 소년은 그의 온몸을 빨랫감처럼 두들겼다. 물론 전혀 힘을 조절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두들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소년은 때렸고, 학생주임은 맞았다. 때리는 자가 있으면 맞는 자가 있을 뿐이다. 학생주임은 한 동안 몸을 움찔거리다가 동작을 멈췄다. 눈가에는 피눈물이 맺혀 있었다. 소년은 피범벅이 된 트레이닝 복을 벗어 길가에 던져버리고 자리를 떠났다. 소년은 교회당으로 돌아왔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었다. 물티슈로 얼굴과 팔 등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소년은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이 바람을 들이켰다. 소년은 사람은 참 쉽게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칼 한 방, 바위 한 덩이, 불과 몇 분의 각목 구타로도 사람은 죽었다. 그 정도의 생명이 수 십년을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하고 있다. 소년은 웃었다. 밤이 되도록 아무도 소년을 찾아오지 않았다. 




2013. 8. 2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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