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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육'은 없다
우리가 흔히 핀란드 교육, 핀란드 교육이라고 지칭하지만 - 필자마저도 - 엄밀한 의미에서 '핀란드 교육'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3부에 걸쳐 '핀란드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면서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싶을 것이다. 서둘러 해명을 해드리겠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의 공통 교육과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필수 교과니, 학년별 필수 수업 시수니, 일반 교육과정이니 하는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정한 기준에 의해 전국의 모든 공교육 시스템이 일괄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핀란드에는 그런 것이 없다. 국가는 단지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습의 테마를 제공할 뿐이다. 가령, 그래도 학생들이 핀란드어는 배웠으면 좋겠다, 물리, 화학, 생물 등의 교과목에 대해서도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게 좋겠다 등등. 우리로 치자면 공부해야할 교과목만을 국가에서 지정해두고, 그것을 몇 학년에서 몇 시간을 수업을 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 것인지, 무엇을 목표로 아이를 교육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별 학교에 맡겨지고 있다. 어떤 학교는 발도르프 교육법을 적용하고, 어떤 학교는 프레네를, 또 어떤 학교는 서머힐의 방법을 차용한다. 이렇게 핀란드는 사실상 각 학교마다 서로 다른 개성적인 다양한 교육법이 존재하고, 각 학교가 전통적으로 시행해 왔던 방법들 중 지자체 및 부모와 함께 논의하여 가장 효율적인 학습방법을 채택하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은 장학사 제도 역시 핀란드에서는 필요치 않다. 핀란드의 교육 담당 부처는 학교를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아니라 오로지 학교의 교육을 지원하는 지원센터로서 기능하고 있다. 여러 나라들이 '핀란드 교육' 모델을 채택하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는 전적으로 채택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한 마디로 '핀란드 교육'이란 거대한 국가의 통치 시스템 중의 하나이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효과적인 학습법'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논의를 접어야 할까. 그것은 또 아니다. 우리가 아쉽게도 '핀란드 교육 시스템'을 곧바로 국내에 도입할 수는 없겠지만, 그 시스템이 대전제로 삼았던 몇 가지 포인트를 흡수하여 우리 환경에 알맞게 적용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러한 유연한 접근은 국내에서는 대안교육에서 밖에 시행할 수 없다.
핀란드 교육의 대전제
평등 - '단 한 사람의 낙제생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핀란드의 교육 시스템이 내세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모토일 것이다. 핀란드의 대다수 학교에서 교사들이 교육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학습을 잘 하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 학습을 잘 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다. 이미 스스로 학습을 잘 해나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정해진 보통의 수업을 자연스럽게 그대로 진행할 뿐, 그 이상을 종용하지 않는다. 상위 10% 안에 드는 학생들을 어떻게든 더 채찍질을 해서 수도권 대학에 보낼까 골몰하고 있는 국내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핀란드는 궁극적으로 평등한 조건을 갖춘 시민,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는 시민의 양성을 그 근원적 목표에 두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아이들의 학습 수준을 평균으로 맞추기 위한 노력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이 대원칙은 단순히 아이들의 성적을 평균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표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이것은 교육의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아이들을 성적에 의해 분류하지 않는다. 즉, 국내에서 횡행하고 있는 '우열반' 제도 및 암묵적으로 고교 등급을 두는 행위 등은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 정부는 각종 여론조사 및 교육과정 연구를 통해 이러한 우열 나누기 교육방식이 학습 능률 재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조기에 도출했던 것이다. 핀란드 교육 시스템에서는 따라서 석차를 전혀 내지 않는다. 석차를 내는 것은 단 한 순간, 대학 입시의 순간 뿐이다. 그것 또한 대학 입학에 지망한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평생 동안 석차라는 것을 구경하지 못하는 시민도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아니, 대체 석차를 안 내면 어떻게 아이를 평가하고 수업을 하느냐고 푸념섞인 하소연을 할지도 모르겠다. 핀란드 현장 교사의 답은 간단하다. 학급 인원이 적고, 교사가 평소에 작은 테스트들을 통해 개별 아이의 학습 수준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지도를 충분히 나눠서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험'이라는 제도에 사로잡혀 그 근원적인 목표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시험'이란 것은 그 아이가 가진 현재의 수준을 살피고 때로는 그 한계를 넘어서게끔 돕기 위한 장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률적인 평가 기준으로 일괄 시험을 치르는 것보다는 교사가 파악한 각 아이의 개별 특성에 맞는 정말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개별적으로 다른 시험들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한 결과는 현재의 핀란드가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국내에 있는 많은 대안학교에서도 이미 도입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파주자유학교 역시 일반 공교육식의 일률적인 테스트는 시행하지 않고 있으며, '석차'도 물론 측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들은 '당연히' 아이들의 암묵적인 석차를 꿰고 있다. 어떤 아이에게 어떤 과목이 더 보완되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이 강점이고 그 분야가 장래 더 발전가능성이 있는지 등등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시험'은 아이들에게 학습 동기를 유발하기 위한 '신선한 자극제'로서, 제한적인 도구로서 파악하고 있지 공교육처럼 '시험'이 모든 학습의 목표인 것처럼 전혀 강조하지 않는다.
이렇게 소개할 때 그렇게 해서 서울대 간 아이가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전형적인 한국인일 것이다. 혹시 지금 읽고 있는 여러분 중? 어떤 대안학교의 어떤 학생의 경우에는 서울대에 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그 대안학교가 공교육처럼 그 아이를 어떻게든 서울대에 보내기 위한 교육을 시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아이가 스스로 노력했고, 충분한 학습의 자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파주자유학교의 경우를 묻는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등과정이 되면 성실하게 학습에 임하고자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각자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반드시 어떤 기준에 도달하라고, 어떤 대학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답은 모두 아이들이 찾으며 교사는 거기에 적절한 도움을 줄 뿐이다.
핀란드 교육 시스템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도 마찬가지다. 핀란드 교육 시스템은 일류대학에 갈 아이를 육성하기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핀란드 교육 시스템이 지향하는 것은 다음에 소개할 평생 학습이 가능한 인재의 양성이다. 그리고 이 목표로 인해 요즈음 우리가 줄곧 입에 달고 다니는자기주도적 학습과 새롭게 소개할 사회구성주의적 학습 방법이 활용된다.
4부에서 계속
2013. 4. 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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