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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모든 시민은 학생이다 - 핀란드 교육의 두 번째 대전제는 학습의 목표를 단기 간에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에 모든 학습의 목표가 맞추어져 있는 우리의 공교육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다 적은 시간을 들여 보다 많은 지식을 암기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핀란드에서 대학이란 순수학문을 보다 심화 있게 학습하려는 이들을 위한 고등 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처럼 대학이 취업 준비기관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취업을 위한 각종 사회적 교육기관을 별도로 마련해두고 있다. 따라서 취업을 목적으로는 하는 이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교육기관으로 진학한다. 물론, 취업교육기관에 진학하기 위한 수학능력 시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유롭게 대부분의 영역의 직업에 대한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다. 


10대 청소년들 중 30%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 중 4%는 대학수업을 '청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다. 결국, 26%만이 한국에서 의미하는 이른 바 대학생이 된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08년 최고치를 기준으로 83.8%에 달한다. 2008년 이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청소년 10명 중 8명이 대학생이 되는 기현상의 틀은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이 취업전문학원으로 전락하고 있는 세태는 이 놀라운 세계최고치의 대학 진학률에 비춰 보자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 나라의 청소년 80% 이상이 학문에 좀 더 몰두해보겠다고 나서고 있는 이 기이한 나라에서 순수학문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이하다. 


대한민국은 진정 근대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도올 김용옥 선생은 대한민국이 아직도 조선왕조의 관성에 일부 젖어 있다고 분석한다. 지나치게 문을 숭상하는 경향성, 그것도 순수한 문에 대한 숭상의 본의는 퇴색되어 버리고 관직에 대한 탐욕만이 남아 있다. 조선왕조 시대의 관직에 오르기 위해 평생 공부를 했던 선비들의 모습에서 순수한 요소는 모두 빠지고 입신양명하고자 하는 욕망만이 남은 꼴이다. 오늘날의 관직인 '사'자 들어가는 직업과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모든 청소년과 청년들이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 씁쓸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들이 그토록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많은 여타 원인이 많겠으나 핵심적인 것만 말하자면 '부'와 '철밥통'에 대한 동경 때문일 것이다. 특히, 사회가 불안한 - 혹은 불안하다고 알려진 - 오늘날에 청소년과 청년들은 더욱 더 '안정'과 그 안정을 가져다 줄 '철밥통'에 목숨을 건다. 공무원을 양성하기 위한 대학교육이란 것은 사실 교육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무원은 학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던가. 이 정도로 과잉된 상황이라면 차라리 공무원 응시자를 위한 직업교육기관을 별도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알맞다. 왜 쓸데없이 대학에 입학하여 값비싼 등록금을 낭비하는가. 


한국의 대학 입시율이 이토록 비정상이다 보니, 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대학등록금 전액 면제는 우주 저편에 있는 미지의 행성과도 같고, 반값 등록금만 하려고 해도 나라의 등골이 휜다.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4년만 지나면 아무런 효용을 갖지 못할 - 대부분의 청년들이 전공과 다른 직업을 얻으므로 - 대학교육을 위한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애써 모은 돈을 탕진한다. 모두가 대학을 나오니까 대학을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되어버린 이상한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근원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지금의 지옥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1990년대 초반에 이미 미래사회를 예견하며, 미래사회에서 시민들은 평생에 걸쳐 최소한 5~6개의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각국의 교육 시스템을 전환할 것은 권고했다. 핀란드는 가장 기민하게 대응했다. 그에 따라 나온 것이 바로 '모든 시민은 학생'이라는 핀란드의 교육 시스템이다. 핀란드는 변화될 미래사회의 청사진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앞으로의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간의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학습을 할 수 있는 '배움에 대한 습관'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그리고 교육의 목적을 '지식의 습득'에서 '공부하는 습관 들이기'로 혁신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평생학습이론'이며, '자기 주도적 학습'의 근본 모토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주도적 학습'을 마치 혼자서 공부하면 오히려 더 능률이 올라서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교육 약장수들을 앞장 서서 그런 환상들을 부모들과 학생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며, 돈을 벌고 있다. 험하게 말하면 웃기는 얘기다. 단기간에 학습 능률을 올릴 것이라면 집중 과외나 주입식 교육이 훨씬 '효율적'인 것이 당연하다. 



자기 주도적 학습 - 자기 주도적 학습은 '느린' 학습법이다. 몸에 익히려면 보다 많은 시간을 요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학원 강사가 수능 시험에 나올 문제들을 쪽집게 처럼 쪽쪽 짚어주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디게 자기만의 배움의 길을 닦아가는 과정이다. 이 학습법은 장거리 마라톤을 위한 학습법이지 100m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기 위한 학습법이 아니다. 


핀란드는 미래의 교육이 장거리 마라톤이라고 보았다.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도 10년이 되지 않을 것이다. 평생 직장은 사라졌다. 미래의 직장인들은 일할 수 있는 기간 동안 5 ~ 6개의 직장을 옮겨 다녀야 한다. 그것도 자기가 학습한 한 가지 분야의 직장만을 옮겨 다닐 수는 없다.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직업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가령,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를 하던 이가 출판사의 에디터로 직장을 옮기게 될 수도 있으며, 에디터로 일하던 이가 커피 제조 기술을 배워 바리스타로 전업할 수 있다. 바리스타로 활동하다 몇 차례의 직장 경험을 살려 시민들을 위한 직업교육 강사로 다시 전업하게 될 것이고, 60대에는 보육원에서 보육교사를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들은 취직과 퇴직을 반복하며, 이 취직과 퇴직의 사이에 있는 취업기에 '학습'을 하게 된다. 핀란드 교육 시스템은 이 평생에 걸친 '학습'의 능률을 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자기 주도적 학습법'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고, 그것은 적중했다.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고, 새로운 일을 위해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핀란드의 시민들은 큰 고통없이 한 직업에 다음 직업으로 옮겨 같다. 평생동안 하나의 기술 및 한 분야의 학습만을 한 우리나라에서 실업은 곧 '사회적 사망선고'와도 같다. 한국의 시민들은 자기가 배운 분야 외의 일을 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지 못한다. 실업을 하게 되면 그 전에 자기가 하던 일을 어떻게든 계속 이어갈 궁리를 할 뿐, 다른 일을 하기 위한 '학습'에 좀처럼 나서지 못한다. 실업률은 증가하고, 사회적 약자는 갈 수록 많아질 것이며, 그들을 책임 지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좁은 고랑 속에서 물은 바다로 흐르지 못하고 썩어 갈 것이다. 


핀란드 대부분의 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자기 주도적 학습'의 풍경은 다음과 같다. 교사는 수업 시간에 들어와 학습해야할 주제와 내용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실시한다. 대략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마련된 교재에 있는 과제들을 아이들 스스로 풀어나간다. 풀어나가다가 막히면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도움을 요청한 아이에게 교사는 성심성의껏 그 원리와 풀이법에 대한 상세한 지도를 한다. 아이는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한 후 다시 스스로 다음 문제를 풀어나간다. 대체로 교사가 강의를 하는 시간은 10분 내외를 넘지 않는다. 수업을 시행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보다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발견되면 그 아이들에 대한 보충학습이 시행된다. 보충학습은 전담 교사를 따로 두고 있다. 뒤쳐진 아이들은 보충학습을 위한 클래스에서 충분히 기초를 다시 다진 뒤에 원래의 클래스로 복귀한다. ADHD 등의 정서 장애나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국가에서 직접 보조교사를 지원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클래스는 서로 비슷한 보조를 맞춰서 함께 걸어가게 되도록 한다. 


자기 주도적 학습이라고 하면, 집에 가서도 혼자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를 떠올리기 쉽다. 허나 대다수의 핀란드 아이들은 집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 과제량은 많지 않다. 학습은 대체로 학교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학교 내에서 충분히 소화된다. 방과 후 시간은 개인적인 취미활동과 탐구활동 시간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학교 공부만이 '학습'은 아니라는 것이 핀란드 교육의 입장이다. 오히려 학교가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이 학교 외에서 더 많이 학습할 수 있도록 권장해야 한다. 



* 5화(최종편)에서 계속 



2013. 5. 2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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