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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날
마지막 글이다. 간신히 눈을 떠서 손가락에 남은 힘을 모으고 있다. 지금이 여전히 어제인지 다음날인지조차 확실치 않구나. 모텔의 암막창은 굳게 닫혀서 빛 한 조각도 허용하지 않아, 밤인지 낮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쩐지 그것이 이 아빠가 살아온 인생이었던 것만 같구나….
네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너는 기묘하게도 그 사람의 모습을 닮아갔다. 나는 그것을 그 사람이 세상에 원(怨)이 남아 너를 통해 내게 호소하려 한다 여겼다. 너를 아끼는 한 편, 너 이외의 것은 아끼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 곳에 와서 그 사람과 만났던 곳을 걷고, 그 사람의 일들을 다시 떠올려 보니… 내가 오래 착각해왔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이제서야. 이제서야 말이다. 나는 그 사람의 원을 풀기는 커녕 되려 나라는 사람의 원 하나를 세상에 더하며 살아온 것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여, 이 글을 읽고 네가 오해할지도 몰라 당부의 말을 남긴다. 아빠는 너를 나의 사랑하는 딸로서도 분명히 아끼고 사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네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이렇게 문을 닫고 그런 마음이 한 조각도 새어들지 못하도록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었을 거다. 사람은 때로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하는 마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도 있구나.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알면 얼마나 알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바꾸겠다고 말한다.
글을 쓰다 갑자기 숨이 막혀서 창을 조금 열고 왔다. 아침이구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침 햇살만은 봄볕처럼 따스하구나. 창을 아주 조금 열었을 뿐인데도 내가 묵고 있는 방이 훨씬 환해졌다. 바람이 불어오는구나. 떠나간 사람들의 숨결이 모두 저 바람 하나에 더해져 있겠다. 나를 부르고 있다. 정해진 시간이 오니 그걸 알겠어….
금방 네 엄마에게 내가 있는 곳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고마웠고 사랑한다고도 적었다. 네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이전에 했었는지 모르겠구나. 미안한 일이다. 나는 나의 원만을 세상에 더하고 산 게 아니었구나. 나의 원이 결국 또다른 이의 원이 되고, 그 원은 또 누군가의 다른 원이 되겠지. 그렇게 세상은 지옥이 되어가는 거겠구나 싶다. 다음 생에서는 깨끗하게 살고 싶구나. 이제 몇 시간이 지나면 네 엄마나, 네가 혹은 다른 어떤 지인이 나를 찾겠지. 기쁘다. 행복하다. 눈이 감기는구나.
딸아… 내가 정말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두고 죽은 그 사람이었을까.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노동자들이었을까. 아니면 그 상황을 일으킨 세상이었을까. 아니면 결국 마지막 순간에 그 사람을 외면한 나 자신이었을까. 단언할 수가 없구나. 답은 이제 저 곳에 가서 찾아야겠지. 나를 부르고 있다. 그 사람이. 웃고 있구나.
딸아, 마지막이다. 너 자신을 벌하면서 살지는 말거라. 용서하거라. 사랑한다. 잘 있거라.
2012. 2. 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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