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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고양이가 있었다 1

멀고느린구름 2012. 12. 3. 22:06



고양이가 있었다




1


   고양이를 본 것은 검은색 세단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 후였다. 적막한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는 것 같은 희미한 울음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거기 검고 조그만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는 없었다. 그렇지만 한 눈에도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고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양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 울었다. 주변은 캄캄했고, 달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뒤돌아서서 50미터 정도 걸었다. 아기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내 팔꿈치에서라도 새어나오는 듯 선명했다. 안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새로 산 스마트폰을 꺼내 손전등 어플을 구동했다. 앞이 환해졌다. 그러고도 잠시간 망설였다. 어느 순간은 울음이 멈췄다. 몇 걸음을 앞으로 더 걸어나가 보았다. 곧바로 다시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11월의 바람은 매서웠다. 하는 수 없이 뒤돌아서서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조심스런 걸음이었다. 머릿 속에는 이미 어떤 인과관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검은색 세단 차와 아기 고양이의 울음 사이의 인과관계. 


  아기 고양이와의 거리가 불과 10미터 남짓이었다. 스마트폰의 정면을 아기 고양이 쪽으로 돌리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부분은 여전히 물음표였다. 고양이가 냐아아아앙하고 길게 울더니 뚝 울음을 그쳤다. 빛을 비추었다. 아. 고양이의 항문 쪽으로 붉은 것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왼손으로 입가를 막았다. 스마트폰이 꺼지지 않았다. 당황해서 손을 흔들다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불빛이 확 눈으로 날아들었다. 아찔했다. 눈을 질끈 감고서 그 자리에 쭈그려 앉고 말았다. 고양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짧고 반복적인 울음이었다. 냐옹 냐옹 냐옹 냐옹... 한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의 발 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세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시야를 회복하고 남자 쪽을 바라보았지만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었다. 손전등 어플은 어느 새 꺼져 있었다. 키가 작았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였다. 


“아가씨 고양이에요?”

“아니요...”


손사레를 쳤다. 손사레까지 칠 필요는 없었다. 후회가 됐다. 남자는 고양이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고양이를 양손으로 잡아 들었다. 고양이는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잡혔다. 


“익, 이게 뭐야. 누가 이걸 이래 놨어. 쯧쯧쯧쯧”


  남자는 고양이를 든 채로 주차장 가장자리에 있는 풀숲까지 걸어갔다. 고양이를 풀숲에 내려놓으며 무언가 투덜거렸다. 거리가 멀어서 들리지 않았다. 바닥을 더듬어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워들고 서둘러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도망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며칠 전에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빠져들었던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되었다. 긴급구조 안내 전화번호의 첫 번호는 0이었다. 그 외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왜 빨리 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주차장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남자친구에게 도착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일이 떠올랐다. 고양이 울음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염려가 되는 것은 왜일까. 남자친구가 다시 한 번 호통을 쳤다. 10분 내로 오지 않으면 가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서둘러 가겠다고 바로 앞이라고 답했다. 남자친구는 성급히 전화를 끊었다. 키 작은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멀리 어둠에 잠긴 주차장에는 두 대의 차만이 버려진 것처럼 놓여 있었다. 한 대는 요즘 인기가 많은 박스카, 한 대는 승합차였다. 고양이가 놓여진 것은 아마도 박스카 뒤쪽의 수풀. 혹시나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차가운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남자친구가 기다리는 카페까지는 5분이면 족했다. 고양이가 놓여진 곳으로 가만히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누군가 리모콘으로 장난을 치는 양 고양이의 볼륨이 커졌다. 냥 냥 냥. 울음 소리는 더 희미하고 가빠졌다. 박스카 5미터 부근까지 왔다. 주차장의 가장자리로는 조경용 풀이 아니라 어딘가 바람에 섞여 날아온 들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을 풀들이었다. 오히려 아무라도 마구 꺾거나 잘라버릴 풀들이었다. 칠흑 속에서 들풀들은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문득 어린시절의 한 풍경이 떠올랐다. 나는 언니와 함께 쓰던 방에서 산수 숙제를 풀고 있다. 반쯤 열린 여닫이 문 저쪽 부엌에는 엄마가 앉아 있다. 엄마는 검붉은 대야에 절인 배추를 담아놓고 김칫 속을 채우는 중이었다. 볼이 간지러웠는지 고무장갑을 낀채로 볼을 훔친다. 빨간 김치양념이 생채기처럼 볼에 묻어난다. 왜 그랬는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왼쪽 눈에서 주루륵 눈물이 흐른다. 왼쪽 눈가에 물이 고였다. 넘치지 않도록 심호흡을 한다. 떨어지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멈췄다. 상념에 젖은 사이에 고양이가 어디로 간 모양이었다. 야옹아, 야옹아 불러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받지 않았다.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보지 않았다. 고양이가, 고양이가 어디로 갔을까.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소리도 자취도 없었다. 평소에 티비의 자막을 자세히 보는 습관을 들여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고등학교 교과서 어딘가에서도 나오듯이 메모하는 습관을 익혔더라면 좋았을 것이었다. 


  포기하고 남자친구가 기다린다던 카페로 갔다. 남자친구는 없었다. 부재 중 전화는 한 통이 와 있었다.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간다.’


용건만 간단히. 남자친구는 어쩌면 아버지한테 그런 가르침을 받고 자란 걸까. 창 밖이 환히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가 자리에 앉아 라벤더차를 주문했다. 오늘의 일에 대해서는 조만간 남자친구에게 설명을 요구받게 될 것이었다. 그때의 일과 말에 대해 생각했다. 라벤더 차가 곧 나왔고, 내 주변으로 향기가 퍼져나갔으며 달을 가리던 구름이 걷혔다. 만월의 밤이다. 라벤더 차가 나오지 않았고 향기가 퍼지지 않았으며 달을 가리던 구름이 걷히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었다. 저리도 환한 달이 가리워져 있었다는 것은. 차를 마시자 상념이 녹아내렸다. 카페에서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음악이 흘렀다. 라이프이즈 노이즈. 차를 다 마시고 곧 일어서서 카페를 나섰다. 구름이 다시 달을 가리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내일 퇴근하고 집으로 오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달이 가득 차는 때면 생리주기였다. 남자친구는 만월의 밤마다 집을 찾고는 했다. 괴로운 일들이 많은 겨울이 될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창가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늘 하던 버릇이었다. 좀 다른 것은 어쩐지 팔꿈치 쪽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리는 점이었다. 그날 밤 잠을 설쳤다. 




2012. 12. 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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