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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7일 - 여섯째 날

멀고느린구름 2012. 2. 1. 12:26



여섯째 날


  

   딸아, 손아귀에 좀처럼 힘이 주어지지 않는구나. 펜을 들어 글씨를 쓰는 일조차 온 힘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은 아주 늦잠을 자버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알뜰하게 쓰고 싶었는데 말이다. 정오가 지나서야 눈을 떴다. 하마터면 눈을 못 떴을지도 모를 일이니… 그렇게라도 깨어난 것에 감사해야겠구나. 커튼을 열어보니 햇살이 정말 눈부셨다. 햇볕이란 것이 이토록 따스하고 환한 것이었는지 미처 알지 못하고 살았다. 해변으로 나가 좀 걸었구나. 그 사람과 함께 어머니의 유골을 떠나보낸 곳에 섰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그 사람의 손길 같았다. 그리웠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다. 모든 지나간 것들. 잘못 보낸 시간들. 내가 내 스스로 망쳐버린 아름다운 순간들. 어린 날 즐겨 타던 조그만 자전거. 언제 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강아지 발발이. 엄마의 자장가. 어느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이국의 노래. 내 곁을 지키던 친구들. 기억이 서로를 밀치며 내 앞으로 달려왔다. 그네들을 보니 울컥 울음이 솟더구나. 울었다. 아주 목놓아 울었어. 원없이 울었다. 


  그리고 다시 이 탁자 앞에 앉았다. 너무 운 모양이다. 힘이 다 빠져나갔어. 하지만 써야 한다. 아직은 쓸 힘은 남았어. 마지막 얘기를 하마. 


  1970년 11월 13일 금요일. 전태일 군이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세상은 크게 요동쳤다. 준 계엄령 상태였어. 네 할아버지는 다급해졌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두 다 들고 일어나는 기세였으니까. 나도 할아버지에게 불려 나왔다. 11월 14일 토요일, 근 2개월만에 짐을 모두 챙겨들고 부석사 선방을 나서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내 명의의 라디오 공장을 작은 아버지 명의로 돌려놓았다고 했다. 혹여 뿌띠 브루조아지 타도를 외치며 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서 라고 했다.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우리 가족은 영주를 떠나 서울로 상경하기로 했다. 이사일은 11월 15일 일요일 바로 내일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을 만나고 가야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가능하면 그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가고 싶었다. 그 사람도 어쩌면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사방으로 그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그 사람이 일하는 공장에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다수의 공장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뉴스가 앞다투어 방송 전파를 탔다. 끝내 그 사람과 연락을 취하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1970년 11월 15일 일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품 속에는 미리 사둔 반지를 잊지 않고 챙겨넣었다. 그 사람이 일하는 공장으로 아예 찾아갈 볼 요량이었다. 주말에도 공장에서 농성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말이다. 택시를 타고 그 사람의 공장 이름을 대자 택시 기사가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는 지금 위험하다고 했다. 그쪽 공단 노동자들과 경찰들이, 그리고 비밀리에 출동한 군인들이 밤새 대치 중이라는 것이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불안이 엄습해왔다. 가까운 곳에라도 내려달라고 간청했다. 기사는 그 사람의 공장에서 1킬로 미터나 떨어진 지점에 나를 내려주고 공장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기사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갔다. 공장을 향해 뛰었다. 


  공장 앞에는 수 백명은 되어보이는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뒤에는 군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전장 같은 공포가 감돌았다. 공장 쪽에서 노동자들이 “전태일을 살려내라.”,  “근로기준법 준수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경찰 쪽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최후통첩을 내렸다. 불법 점거를 10분 이내에 해제하지 않으면 쓸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쓸어버리겠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5분이 지났을까. 공장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악!

으악!

꺼! 끄란 말이야!


  모여 있던 노동자들의 대오가 흩어지고 그 사이로 비틀거리며 불꽃 하나가 걸어나왔다. 전경 지도부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살수차에서 물이 내뿜어졌다. 무전기를 든 군 간부 한 명이 다급하게 엠뷸란스를 요청했다. 불꽃은 이내 꺼지고 전경들의 진과 노동자들의 무리, 그 사이에 잿더미가 된 사람 하나가 쓰러져 누웠다. 노동자들의 무리 곳곳에서 비명과 욕설이 뒤섞여서 쏟아져 나왔다. 엠뷸란스가 도착해 쓰러진 이를 실어갔다. 곧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노동자 한 명이 무리에서 튀어나와 각목으로 전경을 내리쳤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거대한 파도처럼 노동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대기하던 군인들이 일어나서 난타전에 합류했다.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하지만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이 서로 뒤엉켰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사람이 그곳에 있을 것이지만 나는 내 목숨을 부지하고 싶은 본능에 지배 당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마을금고 앞에서 그 사람을 기다렸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젯밤 농성현장을 빠져나와 다른 곳에 묵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사람은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오지를 않았다. 두려웠다. 아까 그 속에 그 사람이 있다면. 나는 비겁한 짓을 한 거다. 다시 가야한다. 다시 가자고 마음 먹고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남루한 회색 점퍼를 입은 중년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그 사내는 내가 그 사람의 애인이 맞느냐고 물었다. 맞다고 하자 그 사람은 내게 편지 한 통을 건냈다. 자기는 그 사람의 공장 동료이며 부탁을 받아 온 거라며, 오늘 그 사람은 나오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 행색을 한 번 훑어보더니 왔던 길을 돌아 걸어갔다.  


  새마을금고 앞 계단에 걸터앉아 바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편지를 읽은 뒤 나는 미치광이처럼 도로로 뛰어들어 달려오는 택시를 멈춰세웠다. 다급하게 문을 열고 좌석에 앉아 병원으로 가자고 외쳤다. 병원 앞에 당도하자 돈을 내동댕이치듯 기사에게 주고는 차에서 내려 응급실로 뛰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들이 한 곳에 모여 웅성이고 있었다. 모여 선 이들을 비집고 들어가 누워 있는 응급환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순간 구토가 치밀었다. 이미 다 타버린 피부 위로 뼈마디가 드러나고, 온통 진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누구냐고 묻는 노동자들을 뒤로하고 병원 로비로 나와 화상을 입은 응급환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민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저앉을 뻔하다 가까스로 몸을 가누어 근처 벤치에 앉았다. 다시 가야 한다. 가서 손을 잡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사람이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K씨.


  미안합니다. 사과부터 하는 것이 의아하시겠지요. 하지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당신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영영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유서라고 여기셔도 무방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지금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한 시대가 저물고 다른 시대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저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시기임은 알고 있습니다.  

 

  노조 지도부의 회의에 따라 결정이 났습니다. 저도 동의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또다른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타오를 불꽃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들의 결정입니다. 다른 이들은 짊어져야 할 것이… 지켜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천애고아가 되었습니다. 오직 당신에게만 사과를 해야겠지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제가 불꽃이 되어 다음 시대를 밝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당신을 만나고 짧은 순간이나마 사랑한 것으로 저는 더 이상 생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제게는 과분한 이였습니다. 부디 저를 잊고 다른 행복을 찾으시길. 안녕. 


                                                                                       1970년 11월 14일. 민아 올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벤치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응급실 쪽에서 통곡소리가 들려나왔다. 그 사람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가 보낸 사람에게 붙들려 나는 서울로 떠났다. 다음 해 봄 네 엄마와 결혼을 했고, 시위가 잠잠해진 후 다시 내 명의로 된 공장을 하나 얻었다. 나는 노동자들을 가축처럼 부리는 악덕 기업주가 되었다. 그들이 저항하면 저항할 수록 더욱 가혹하게 다루었다. 임금을 주지 않았고, 불법 추가근로를 시켰으며, 마음 내키는 대로 해고를 했다. 그렇게 해도 나는 다치지 않았다. 노동자들과 싸우고, 그들에게 욕을 듣는 것은 내가 일선에 따로 배치해놓은 유령 사장이었다. 나는 장막 뒤에서 사장들을 조정하면 그만이었지.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살게 되었다. 그 사람을 잃은 이후로. 

  

  알고 있다. 원망해야 할 것은 그 당시의 엉터리 세상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나는 사람을 더 용서할 수가 없었다. 시대와 정치제도가 저지른 죄악보다 사람이 사람을 합의하에 죽음으로 몬 것을 더 용서할 수 없었다. 모순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용서할 수 없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의 불타버린 얼굴을 두 눈으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었다. 내가 손을 잡아줄 수 있었어. 마지막 가는 길까지 함께 있어줄 수 있었어. 하지만 나는 돌아서서 병실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사람의 마음을 영원히 용서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2012. 2. 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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