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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3)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서서히 의식이 사라지는 느낌에 익숙해지려고 하고 있단다. 죽음도 이리 잠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샤프를 쥔 엄지와 검지 손가락이, 그리고 손목이 저리다. 눈은 침침하고. 글을 쓰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아주 간단히 쓰려고 했다. 그래, A4 용지 한 장 정도로 쓰려던 이야기였다. 헌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이리도 많은 말들이 빽빽하게 종이를 채우고 있다. 이제 그 사람과 세번째로 만난 주말에 대해 쓸 차례구나. 주저스럽다. 네 엄마와 연애담이라면 차라리 나을 테지. 하지만 네가 그간 듣도 보도 못한 외갓 여인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네게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이 기억이 나에게서 누군가에게로든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면.. 그 누군가는 필시 네가 될 수밖에 없구나. 사람은 저마다 타고 태어나는 운명이란 게 있다. 딸아, 너는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이어받을 운명을 타고 태어난 거야. 그렇게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사람이 지어낸 역사는 사람의 일들을 기록한다. 어느 나라와 어느 나라가 전쟁을 했고, 어떤 왕이 어떤 폭정을 저질렀으며 그에 대항하는 세력이 어떻게 성장해 쿠데타를 성공하거나 실패했는지. 지배자들이 좋아한 그림과 음악, 음식따위에 대해 또는 자료가 남아 있는 한 피지배자들이 좋아한 그림과 음악, 음식따위에 대해. 왕조가 변하고, 정권이 변하고, 이데올로기가 변하고, 군중들의 의복과, 그릇이 변한다. 민무늬, 빗살무늬, 르네상스,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기억들을 늘어놓지. 그러나 그 기억들을 종합한 것이 사람의 역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조각 나 있는 것들을 모아서 정교하게 짜 맞추면 그것은 완성품이 되는 것일까. 어떤 것들은 깨어지는 순간 영영 사라져버린다. 깨어지기 전의 백자가 가지고 있던 곡선과 순백의 빛깔이 깨어진 후 다시 짜맞춘 유물과 같을 수는 없다. 생명의 빛은 빛을 거둔 순간 없어져 버리는 거야. 사람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나 미라를 대면하고 있는 것에 불과해. 알겠니. 아빠가 너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그거야. 사라져버린 생명의 빛에 대한 거란다. 알겠니.
그 사람과 내가 세 번째 만난 주말이었다. 이번에는 조사당이 아니라 영주 시내의 새마을금고 앞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4월 22일 이른 바 ‘새마을 운동'으로 불리는 잘 살아보세 운동을 제창하고 이제 막 지역 단위에서 시작되려는 움직임이 생길 즈음이었다. 잘 살아보려는 인파들 속에서 그 사람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 사람은 많은 인파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아침 10시였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이었는데 그 사람은 먼저 나와 있었다. 나는 그 사람도 나를 깊이 흠모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우리는 무작정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당시 영주 시내에는 영화관도 없었다. 데이트라고 해봐야 기타를 둘러매고 산으로 들로 가거나, 음악다방에 앉아 ‘1,2년 유행이 지난 최신 팝송’을 듣는 게 고작이었어. 두 차례 산에서 봤으니 음악다방을 가기로 정했다. 마침 장터 근처에 ‘매카트니'라는 음악다방이 새로 생겨나 있어 우리는 거기로 들어갔다.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은 애드 포의 ‘빗속의 여인'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어쩐지 당신이 올 줄 알고, 알맞는 노래를 디제이가 골라 놓았다고 익살을 떨었다. 그 사람이 좋아했다. 너는 어릴 적부터 아빠가 이 노래를 주구창창 틀어놓는 것을 아주 지겨워했었지. 사춘기 때는 제발 헤드폰을 끼고 들으라고 내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었어. 하지만 나는 이 노래를 언제나 듣고 싶었다. 그것도 그 때의 그것처럼 멀리서 흘러나와 공간 전체를 포근히 감싸 안는 소리로 말이다. 너에게도 그런 노래가 있지 않겠냐. 생길 거다 분명.
애드 포의 노래가 끝나고 나온 노래는 역시 ‘비틀즈’였다. 그리고 ‘예스터데이’였다. 그 사람은 눈을 감고 조그만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노래를 따라갔다. 그래, 노래를 따라갔다는 말이 정확하겠구나. 그 사람은 ‘예스터데이'의 음을 따라 멀리로 떠나갔다 오는 느낌이었다. 그 시절의 노동자들에게는 누구나 환상의 공간이 하나쯤 필요했던 것 같다. 음악, 소설, 시, 그리고 영화.
어두컴컴한 실내에 몇 개의 나트륨등만이 켜져 있었다. 모든 사물들이 아주 희미하게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무중력의 공간에 떠있는 사람들처럼 음악 위에 떠있었다. 마주보고 앉아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사람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람은 순순히 자리를 내어줬다. 손을 잡았다. 그리고 라디오 전파도 아직 타지 않은 레넌의 신곡이라는 디제이의 멘트와 함께 ‘러브'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입을 맞췄다.
딸아, 사랑의 기억이라는 것은 고통 중에서도 가장 극점의 고통이다. 고통의 지도가 있다면 사랑은 북극이나 남극 정도에 위치하겠지. 달콤함에 길들여진 미각은 쓴맛에 훨씬 더 민감해지고 만다. 사랑의 달콤함은 인생의 쓴맛을 불러들이게 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일 줄은 몰랐지. 전혀 몰랐다. 손이 다시 아파오는구나. 글씨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이만 쓰는 게 좋겠다. 아직은 가야할 때가 아니야. 해야할 말이 남았다. 아니, 그래 여기서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니야, 써야 한다. 네가 알아야 할 것들이 아직 있어. 아빠는 잠을 자겠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그 이야기를 꼭 하고 싶구나. 기원해다오. 다시 깨어날 수 있기를. 편안한 밤이 되렴. 좋은 꿈 꾸고. 잘 자거라 아가야.
2012. 1. 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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