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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다정한 사람이 된다는 일의 어려움

멀고느린구름 2011. 12. 23. 21:45

나는 어릴적부터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말은 곧 여자아이들의 이상형이 되고 싶었다는 얘기다. - 물론 예수나, 부처, 공자 이런 분들이 다 다정한 남자들이었다는 것도 반영하여 - 다정한 연인, 다정한 남편, 다정한 아빠. 이상의 3종 세트가 내가 꿈꾸는 나의 이상향이다. 내가 그간 읽어왔던 명상서적이나, 순정만화책 등에서도 항상 내가 가장 좋아했고 흡족했던 남성상은 다정한 남성이었다. 지적이면서도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은 남자. 나는 항상 그런 모습을 꿈꾸어 왔다. 

스무살 적의 나는 내가 완전히 다정한 남자라고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저 매너있고, 다정한 말을 하면 다정한 사람인 줄 알았던 시절의 나였다.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제3자들은 나를 예의바르고 자상한 인간이라고 평가해주었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런 걸까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솔직히 10년이 넘게 고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는 다정함의 본질을 내가 오인했다는 것에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일정부분 다정한 남편이자, 다정한 아빠였다. 하지만 결코 '다정하다'고 종합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다정함이란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나와 함께 즐겁게 전자오락을 즐기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주지만,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만다.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다정한 말과 행동을 한다. 

20대 때 나의 다정함이란 그런 것에 지나지 않았던 거다. 책이나 만화에서 '표현'되는 다정함을 나는 모방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진정한 다정함의 뿌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찰을 하지 못했다. 

나는 나 자신을 포장하고 멋지게 보이기 위한 '다정함'에 집착해왔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다정함이다. 하지만 진짜 다정함이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상대를 위한 것이다. 그건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를 버리는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은 나를 내려놓는 그 마음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그 '일관성'으로부터 진정한 다정함은 발현된다는 것이다. 일주일 중 5일은 다정하고 2일은 다정하지 않은 사람에게 7일 중 5일은 다정하니까, 양적으로 '다정한 사람'이라고 결론 짓는 따위의 계산은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진짜 다정함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 다정함의 뿌리를 잃지 않는 것에서 발현된다. 

1을 다정함의 극으로 두고 10을 냉정함의 극으로 둔다면, 1을 5일 유지하고, 10을 2일 보이는 사람보다는 5를 7일간 유지하는 쪽이 더 다정한 사람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상대를 '다정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표현의 달콤함이 아니라, 이 사람을 언제 어느 때든 의지하고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안정감'으루터 감각하는 것이다. 안락의자가 5일은 푹신푹신했다가 2일은 가시방석이 된다면 우리는 그 물체를 안락의자라고 명명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본질을 깨달았다고 해도 이렇게 되기까지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람이 살아온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상당한 고행이 필요하고,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일단 그 본성을 깨달았으니 차근차근 고쳐가면 될 일이 아닌가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게 그리 녹록치 않다.

항상 대체 어디까지 인내하고 양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종종 봉착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영영 다정한 인간이 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한다. 이건 그동안 종종 양보 받아오고, 상대방의 인내 위에서 관계를 형성해온 나의 타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나 자신의 한계 앞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또 다시 양보하고 희생해주는 관계에 대해 미련을 갖는 것은 퇴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을 위해 노력해 왔고, 여러가지 소중한 것들도 희생해 온 것 아니었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 근래의 내가 많은 부분 성장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여전히 엉망진창인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하지만.. 그래도 이전의 나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더는 자기 부정으로 빠지지도, 타인에 대한 원망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일은 아직까지 있지만... 그럼에도 나아가야 할 방향은 확고하다. 난 '다정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이대로 아버지를 넘어서지 못하면, 진정 자립한 객체로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늪에 빠지지 말고, 신기루에 현혹되지도 말고.
똑바로 걷자.
정말 '좋은' 사람이 되자.  


2011. 12. 23. 크리스마스 이브이브의 다짐.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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