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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동해 여행에서 돌아와 또 혼자 집에 앉아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장한나의 첼로 연주를 듣고 있다는 점이다.
어릴적부터 달동네 단칸방에 살면서도 무슨 심보에선지 나는 중세 귀족 같은 취향이 있었다. 창고로 쓰던 다락방을 개수하여 나만의 공간으로 삼고 밤마다 라디오의 클래식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바로크 음악 따위에 심취했던 것이다. 중학생 시절에는 누구의 음악인지도 모른 채 그저 클래식 음악이라고 뭉뚱그려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랜덤으로 들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모짜르트를 찾아들었다.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과 비범한 광기에 매료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단지 짝사랑하던 여자아이가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여자아이가 나에게 모짜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지끄'라는 음반을 복사해서 선물해주었으니 내가 모짜르트의 신도가 되는 것에는 합당한 사유가 있었던 것이다. 순수하게 시작된 클래식 음악 애호가 불순한 의도와 만나 증폭이 된 셈.
대학생이 되어서부터는 장한나의 첼로 연주를 많이 듣게 되었다. 이 역시 짝사랑하던 여자아이가
"첼로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에 가장 가깝대. 악기를 배운다면 역시 '첼로'야."
라고 말한 것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여자아이가 그 대사를 하던 때는 5월 즈음이었고, 햇살이 봄의 댄서처럼 흥겹게 춤을 추던 날이었던 데다가 그때 나는 스무살이었다. 오리가 태어나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로렌츠를 보고 엄마로 각인했듯이, 나는 스무살의 청년으로 태어나자마자 장한나의 첼로를 들었던 것이다.
장한나의 첼로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한 없이 슬픈 음악이라고 하더라도 가슴 한 켠에서 따스함이 솟아난다. '우리에게 시련이 주어졌다면 그걸 이길 힘 또한 주어졌으리' 라는 헤르만 헤세의 유명한 격언처럼, 그의 음악에는 깊은 생의 긍정이 자리잡고 있다. 천재 첼로 소녀에서 철학자, 지휘자로서 끊임없이 일신 우일신하는 그의 삶은 내게 깊은 영감을 제공해준다. 물론, 백수로서 지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무한한 낮잠을 무상 제공해주기도 하고. 이래저래 감사할 일이다.
2011. 12. 8.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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