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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김난도 지음/쌤앤파커스 |
"교수들은 학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고, 학생들은 교수들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한다. 악순환이다.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을 개선할 수 있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학생들이 먼저 시작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먼저 할 일은 학교나 교육당국에 '선생님'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일이다."
툭하면 사고를 치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미안해요'라고 하면 엄마들이 늘상하는 레파토리 같은 말이 있다.
"미안한 줄 알면 하지를 마!"
세월에 시들지 않는 주옥 같은 금언이다.
베스트셀러에 대해서는 일단 경계를 하고, 웬만해서는 읽지를 않는 내가 수 십만부가 팔렸다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를 손에 든 것은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본 진보신당 청소년 당원의 짧은 글을 보고서였다. 그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하여 원색적인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이는 이 책을 읽고 말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한 쪽에서는 열광하고 한 쪽에서는 욕설을 퍼붓는 극단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책에 대해 조금 흥미가 생겼다. 마침 내 방 서가에는 공짜로 얻은 책이 있었기에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정리하자면... '오늘날의 청년들이 참으로 '동화'에 목말라 있었구나.'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사실은 청년층이 아니라 저자와 동년배의 어른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인생시계'라는 도입 부분은 참 좋았다. 감격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음 장부터 시작된 이른 바 성공한 어른의 상투적인 어린애 타이르기 레파토리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대체 서울대학교의 양식 있는 교수라는 사람의 현실 인식이 고작 이 정도이니 고생하는 것은 청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청년들의 자각을 근엄하게 요구하고 있는 이 '자상한 꼰대'의 이야기를 수 십만의 독자가 읽고, 그에게 인세를 지급하게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저자의 현실인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부분이 이 글 도입에 인용한 구절이다. 학부제 도입으로 인해서 학생과 교수들의 거리가 멀어졌다. 교수는 '사실은' 무지하게 바쁘기 때문에 학생들을 만날 시간이 없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학생들이 시간과 용기를 내서 교수들을 만나러 와달라니. 나 역시 교편을 잡고 있지만 어떤 프로세스에 의해 이러한 추론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학생들이 교수를 만나 인생 상담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본인이 생각을 했다면 당연히 학생을 만나러 가는 주체는 교수 본인이 되어야 한다. 팔자 좋게 기다릴 테니 만나러 오라니. 교수에게 불필요한 업무가 많아서 학생을 만날 시간이 없다면, 교수 본인 또는 교수협회 차원에서 학교에 학생을 만날 시간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학생들 더러 학교에 면담시간 보장을 요청하는 청원을 해달라니.
저자의 이러한 이상한 사고방식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사회는 여러분에게 경쟁과 성공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거기에 목을 매지 말아라. 재테크도 하지 말고, 스펙을 쌓지도 말아라. 돈과 안정성을 쫓지 말고 네가 즐거워할 일을 찾아라. 하지만 시간 없다고 핑계 대지 말고 지금을 희생해 미래에 투자해라. 연애도 해봐라. 혼자 놀지 말고 사교성을 길러라. 책을 많이 읽어라. 스펙은 쌓지 않아도 되지만 이것저것 경험은 많이 해봐라. 글도 잘 써야 한다. 부러워하면 지는 게 아니라, 부러워하지 않으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말한대로 하면 여러분은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이상이 이 저자가 이 책에서 짐짓 자상한 옆집 아저씨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 선생(먼저 산 사람)의 충고이다. 어쩌라는 건가. 자기 모순에 가득 차서 스스로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저자는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면 좋지 않은가. 다음과 같이.
"야, 어차피 너희들은 경쟁해야하고 성공해야 하는데~ 그 비법을 전수해줄게. 시간 관리 잘하고, 원서 낼 때 요즘은 스펙보다는 경험치가 대세니까 그쪽으로 투자하고, 재테크는 어차피 큰 돈으로 해야하는 거니까 일단 취직하고 시작하는 게 좋단다. 그리고 세상 원망해봐야 소용없어. 적당히 바닥치고 다시 힘내서 경쟁하는 게 최고지. 넌 반드시 성공할 수 있어! 목표를 너무 크게 잡으니까 문제지. 적당히 니가 할 수 있는 걸로 잡고 죽어라고 노력하면 그 분야에서는 성공할 수 있어. 어때? 좋지?"
이른바 '자기계발서'에서 재탕에 재탕을 거듭하며 반복하고 있는 레파토리를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을 써서 윤색한 것에 지나지 않은 이 책에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들이 열광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이 정도의 이야기를 해주는 '선생'도 이 나라에는 드물다는 거니까. 비극적인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부작용을 지니고 있는 학부제 폐지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나서는 교수나, 학생과의 면담을 위해 불필요한 행정업무 소요를 줄여줄 것을 정부와 학교당국에 주장하는 교수 혹은 교사를 만날 일은 향후 10년 동안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이 세상이 불필요한 '경쟁'과 '성공' 이데올로기로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고 있으며, 여러분이 정말 집중해야할 것은 여러분 자신의 '지금의 행복'이라고 책 한 권을 통틀어 강변할 '스승'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저자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책 뒷편의 '젊은 지성들과 가장 많이 공감하고 아파하는 교수'라는 닭살 솟구치는 광고문구는 민망하기 그지없다는 말을 전한다. 저자가 정말 이 시대의 지성을 자처하는 교수라면 저자는 젊은이들을 위한 '성공한 계론서'를 쓰기 이전에, 이러한 시대를 만든 꼰대들과 교육현장의 폐배주의에 젖은 바로 그대와 같은 교육자들에게 죽비를 내리쳤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쓴소리(딱히 그렇지도 않지만)를 늘어놓고 그대.
그대는 지금 젊은이들을 위해 어떤 세상을 만들어 왔는가.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감히 젊은이들에게 충고하지 말라.
젊은이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당신이 먼저 해라.
교육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교육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로서 '성공'해서 '안정된' 교수직을 역임하고 있는 것이 저자가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저자는 '그 정도'의 선생인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어른밖에 만들지 못한 저자 이전의 어른들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복덕방에 둘러앉은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세태를 한탄하며 하는 말의 종합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잘 읽고 시간 관리를 잘 하라고 조언을 했으니 모쪼록 더 이상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런 류의 글이라면 훨씬 주옥 같은 서적이 서점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까.
혹시, 이 책을 통해 마음의 위로를 받은 이들이 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그대들에게 훨씬 더 큰 위안을 줄 서적들이 세상에는 많다. 모쪼록 이 책의 '허명'이 그런 책들의 빛을 가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있다면 아래의 책들을 읽기를 권한다.
현경 - 미래에서 온 편지 / 결국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공지영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거야
한비야 -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돈 미겔 루이스 -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은 아름다웠다 /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법정 - 산에는 꽃이 피네
김용옥 - 중고생을 위한 철학강의
론다 번 - 시크릿
2011. 12. 2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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