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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jiyo) - 갈림길
하트점수 : ♥♥♥♥
 


  자정의 핸드메이드 커피는 특별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잠들기 위해서 라벤더 차 정도를 마시고, 눈을 감은 후 대관령의 별밤 속을 뒤척이는 양떼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일 것이다. 그런 상식이 존재할지는 잘 모르겠는 것과는 별도로.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오히려 손수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마시는 일보다 어수선한 마음을 비우고 떨어지는 물방울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 바로 커피를 내리는 그 순간 잠이 온전히 달아난다. 사랑이 찾아오면 사랑을 하고, 화가 일면 화를 바라보고, 파도가 밀려나면 그 밀려나는 순간을 지킨다. 잠이 오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자연의 하나가 아닐까. 그래서 난 자정의 핸드메이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런 밤이면 언제나 켜는 음악이 있다. 요 근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노래이다. 아마도 헤아려보지 않았지만 수 백번, 아니 수 천번을 돌려 들었을 노래. 지요의 '갈림길'이다. 갈림길은 겨울에 발표된 노래여서 겨울에 가장 어울린다. 봄비가 내리는 봄밤에도 어울린다. 사랑하는 이가 없는 여름의 새벽에도 괜찮을 것이다. 낙엽이 지는 가을에는 제격이다. 잠이 오지는 않는 사계절의 밤을 '갈림길'과 함께 하고 있다. 

지요라는 이름은 만화가 박희정이 그린 걸작 <호텔 아프리카>에 나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름과 같다. 우연일까. 나는 고교시절부터 그 만화 속에서 그려진 지요와 같은 남성이 되는 것을 꿈꾸었다. 현명함과 감성,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아픔을 지녔지만 미소로 그것을 견디어 내는 아름다운 남자를 꿈꾸었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좋은 연인, 좋은 선배, 좋은 멘토가 되어주고 싶었다. 싱어송라이터 지요 씨도 혹 그런 바람을 품었을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 자신의 쓸쓸함을 견디는 일이 필요하다. 심연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 타인의 이야기도 가슴으로 들을 수 있다.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위로 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서는 날이 많다. 그런 밤이면 쓸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자리에 쉬이 누울 수가 없다. 

자정의 핸드메이드 커피를 준비할 때이다. 지요의 '갈림길'을 켤 시간이다. 어디선가 이 노래를 만들어 내 삶을 위로해주고 있는 이 여린 음악가가 지나치게 쓸쓸하지 않기를 바란다. 추운 밤이면 지나간 사랑들도 어디선가 모여 화톳불을 켜고 둘러 앉아 이 노래를 듣기를.


자리에 누워 그대를 떠올려요
무얼 바라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하나 둘 꺼내본 기억속 사진들에 
 
오늘따라 예전과 달리 아름다운 우리 둘이잖아..

 
*함께 했던 날들은 헛되이 애썼던 마음일까  무의미한 낭비였나
 
세월이 지나야 어쩌면 끝내 모를테죠..
 
그대 가장 예뻤던 속눈썹 가득히 맺힌 이슬, 이제는 날려버려요
 
서로를 위한다면 이기적이여야만 해요..

 
살아가면서 백 번쯤 그릴까요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데 그냥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어져요
 
그대 같은 사람과 다시 온전하게사랑하는 일..

 
**

 
- 작사/작곡 지요 <갈림길> 




 
2011. 12. 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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