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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읊조리다

詩 - 동해기행

멀고느린구름 2011. 12. 21. 00:52


동해기행


가버린 것은 세월만이 아니었다

내가 여행을 떠났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영영 오지 않을 것들이

집의 주인이 되었다

여행지의 밤 하늘엔

별 대신 무수한 이야기들이 총총히 켜져

잠을 쫓았다

나를 채우고 있던 바다가 한꺼번에

세상으로 밀려나가는 꿈을 꾸었다

어느덧 수평선 위였다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성성히 흩날리는 눈발을 보고 싶었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박제된 추억을

손아귀에 힘껏 그러쥐고 싶었다

눈은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일기를 쓰는 날만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상처를 그 위에 기록했다

죄 많은 나는 상처를 쓰다가 지우곤 했다

사랑한 기억들이 

유행한 노래처럼 또렷했다

너를 바라볼 때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낡은 모텔의 거울 앞에서

엔돌핀을 만든다는 미소를 지어본다

텅빈 사내 뒤로

세월이 또 가고 있었다. 
 


2011. 12. 2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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