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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기행
가버린 것은 세월만이 아니었다
내가 여행을 떠났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영영 오지 않을 것들이
집의 주인이 되었다
여행지의 밤 하늘엔
별 대신 무수한 이야기들이 총총히 켜져
잠을 쫓았다
나를 채우고 있던 바다가 한꺼번에
세상으로 밀려나가는 꿈을 꾸었다
어느덧 수평선 위였다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성성히 흩날리는 눈발을 보고 싶었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박제된 추억을
손아귀에 힘껏 그러쥐고 싶었다
눈은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일기를 쓰는 날만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상처를 그 위에 기록했다
죄 많은 나는 상처를 쓰다가 지우곤 했다
사랑한 기억들이
유행한 노래처럼 또렷했다
너를 바라볼 때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낡은 모텔의 거울 앞에서
엔돌핀을 만든다는 미소를 지어본다
텅빈 사내 뒤로
세월이 또 가고 있었다.
2011. 12. 2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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