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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읊조리다

강은교 - 사랑법

멀고느린구름 2012. 5. 8. 23:51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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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이 시를 나에게 소개해주던 밤은 참 행복했다.

내 마음 속에도 차갑고 깊은 밤 하늘 위에도 따스한 한 줄기 강이 흘렀다.

시를 읽고 나서도 도시 '사랑법'은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그 한 줄기 강은 참 사랑스러웠다.

도시 사랑할 줄은 모르면서도.


떠나고 싶어 떠난 그대의

홀로 떠나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으나

꽃에 대하여, 하늘에 대하여, 혹은 4월과 봄에 대하여도

침묵할 것. 내게 남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저 침묵할 것.




2012. 5. 8. 어느 날을 회상하며.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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