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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루 10분 이상의 명상을 하겠다는 다짐을 오늘에야 실천에 옮겼으니 나도 참 게으른 인간이다. 아침에 하는 명상은 수면을 통해 육체적으로 초기화된 몸을 마음 차원에까지 초기화하는 일이다. 매일매일 우리가 먹은 음식을 소화하고 배설해야 하듯이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 욕망들도 소화하고 배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명상은 비물질적인 몸의 찌꺼기를 비워내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주로 하는 명상법은 가장 기초적인 '호흡 명상'이다. 머릿속에 잡념이 떠오르면 그것을 끊어내고 계속 내가 들이마시는 숨에 집중하는 명상이다. 명상 수련법에는 위빠사나, 화두선, 요가, 뇌호흡 등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호흡 명상'이야말로 그 모든 명상의 가장 기초다. 인간이 생각해낸 가장 원시적인 명상이 아닐까 싶다. 그런만큼 정갈한 맛이 있다.
어제 엠비시 다큐 프로그램 '프라임'에서 호흡과 명상에 관련된 내용을 방송했다. 호흡이 인류를 변화시킨다는 거창한 말들을 도입부에 늘어놓길래 시청해봤다. 초반에는 폭력적인 사회환경 속에 놓인 사람들이 호흡을 들여다보는 일을 통해 변화하는 현상을 진단했다.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다.
좋은 다큐로군. 이라고 좀 더 주의깊게 들여다보려는데, 웬걸 금세 삼천포로 새버리고 말았다. 여러 호흡수련법 중에 한국의 뇌호흡 수련법이 가장 우수하며, 뇌를 동시에 발달 시키기 때문에 인간의 '창의성'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창의성은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 시대의 화두이며 영국과 미국 등의 선진국은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을 꾸준히 해오고 있단다. 혹시나 해서 계속 지켜보았으나 역시나였다. 초반부에 소개한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이 호흡 수련을 통해 '창의성'을 길러야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고, 거기에 기여하는 것은 준 선진국인 '대한민국'이라는 늬앙스로 다큐멘터리는 막을 내렸다.
'자본'은 그 자신의 성장을 위해 가장 반 자본적인 것마저 수용해 자기화한다. 자본의 작동원리는 끊임없이 욕심이 날만한 물건을 만들어 매매함으로써 인간의 욕망을 무한히 증폭시키는 것이다. 반면 명상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비워내는 일이다. 하지만 21세기의 교묘한 자본은 명상을 통해 업무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창의성을 개발하여 병들지 말고 더 훌륭한 상품을 개발해내라고 한다. 그래야 너는 성공할 수 있고, 나아가 네가 속한 사회와 국가가 선진국이 될 것이라 명령하고 있다.
많은 매체들이, 유명인사들이, 진보주의자들이 말한다. 전세계의 1%가 나머지 99%를 지배하고 있다고. 나는 다르게 말한다. 누군가가 어떤 존재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100%의 '자본'이다. 100%의 자본에 99% 이상의 인류가 지배 당하고 있다. 인류의 현실은 '자본'이라고 하는 추상에 압도되고 있다.
명상은 그 무도한 지배로부터 해방되려는 운동이어야 한다. 견고한 콘크리트 벽에 조그만 싹을 틔워 균열을 내는 일이어야 한다. 스트레스를 다시 채우기 위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인류 전체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명상으로 얻어지는 부산물인 '창의성'은 자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에 이바지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성공하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 자기가 속한 나라를 일류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라는 것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 어차피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이들은 이미 명상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므로 - 하지만 그 방향은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자본을 위해 시작한 명상이 자본 너머로 귀결되도록 이끄는 방안에 대하여 나와 당신이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음악과 함께 대지의 첫 숨을 들이마시고, 내 속의 묵은 숨을 내쉬며 하루를 연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도 오늘 하루를 그렇게 시작하기를 기원해본다. 아호.
2011. 11. 16. 멀고느린구름.
* 아호(Aho) :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로 '자연의 뜻에 따라' 라는 의미입니다. 기독교의 '아멘'처럼 성스러운 기도 등에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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