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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페이지 분량의 마지막 자기소개서 



  오늘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마지막 자소서를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이 결정은 매우 심대한 실존적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상당히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한 것이다. ‘사건'이라고 이름을 붙이니 뭔가 또 거대해지는데, 아서 코난도일이나 애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 나올 법한 그런 기묘한 ‘사건'은 물론 아니다. 굳이 그쪽으로 대자면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문을 열고 집을 나선 순간 그 바로 앞에서 범인이 사건에 대한 상세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기다리고 있다가, 탐정에게 건내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그런 사건이다. -성향에 따라 이 비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 


  오전에 의류 판매를 하는 A기업의 공채 면접장에 가서 나는 면접관들로부터 입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네. 저는 오래전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계절이 돌아오면 남들보다 먼저 민감하게 당대의 유행을 체크하고 그에 알맞는 옷을 갖추려고 노력했지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흔히 말하는 된장녀라던가 신상녀라던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매번 신상을 사기보다는,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요, 예전에 사두었던 옷 중에 최근 유행하게 된 디자인이라던가 색상 같은 것을 찾아서 코디를 하는 거죠. 그래서 평소 옷을 살 때도 딱 그 시즌에만 유행할 것 같은 특별한 무늬나 포인트가 가미된 의상보다는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은 심플한 디자인의 옷을 삽니다. 뭐랄까 문학이나 예술작품도 그렇지만 오래 살아남는 것은 역시 클래식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회사에서 클래식이 될 옷을 판매하고 싶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물론, 며칠전 자동차를 판매하는 B기업의 공채 면접장에서는 아래와 같이 대답하기도 했다. 


 “네. 저는 오래전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까페에서 차를 마실 때면 남들보다 민감하게 당대의 차 유형을 체크하고 다음에 유행할 차종은 무엇일지 고민했지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흔히 말하는 오덕녀라던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미래를 위한 사전학습 같은 거죠. 제가 볼 때 차를 구매하는 형태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지요. 예전에 팔리지 않던 차량 중에 최근 유행하게 된 디자인이라던가 색상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 차를 볼 때도 딱 그 시즌에만 유행할 것 같은 특별한 무늬나 포인트가 가미된 차량보다는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은 심플한 디자인의 차를 눈여겨 봅니다. 뭐랄까 문학이나 예술작품도 그렇지만 오래 살아남는 것은 역시 클래식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회사에서 클래식이 될 차를 판매하고 싶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A나 B, 양쪽 모두 면접관들의 반응이나 현장의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정확히 따져보자면 이번 A기업 면접의 탈락이 55번째 탈락이어서 내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보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은 제발 좀 사양하고 싶다. 32번째 탈락했을 때는 ‘양말 벗기 무브먼트’라고 하는 세계적 명상 단체에서 하는 프로그램의 3개월짜리 프로그램에도 참가하기도 했으니까. 그 단체의 3개월 프로그램은 명상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으로 99% 이상의 만족도를 자랑하는 공신력 있는 프로그램이다. 나 역시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거의 매일 눈물을 쏟으며 나 자신을 회고하고 깨달음에 이르렀으며, 33번째 면접부터는 기존의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사소한 사건이라는 것이 오전의 그 면접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면접 이후 불과 2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친절하게도 목소리가 고운 여직원의 탈락 통보를 전화로 받고 난 후의 사건이야 말로 바로 그 사소한 사건이다. 


  나는 마시던 오늘의 커피 - 케냐AA- 를 테이블 위에 그대로 내려둔 채 인사동 커피빈의 문을 나섰다. 안국역으로 걸어가 무작정 3호선에 몸을 실었고, 약수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탄 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역으로 향했다. C기업에 보낼 자소서의 접수 마감일이 내일이었다. 딱히 더 이상 그만해야겠다거나, 이제는 지쳤다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분명 내일 자소서를 넣어야겠다는 다짐만은 또렷했다. 다만 자연스럽게 나는 지하철 6호선에 앉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전철 차장 뒷편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창에 비친 나의 모습이 초라했다던가, 어둠 속에서 불현듯 스쳐지나간 귀신의 형상을 봤다던가 하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상암역에서 내린 나는 하늘공원인지 노을공원인지 아직도 명칭이 애매한 공원으로 걸었다. 4년전 두 번째 연인과 헤어진 이후로는 처음. 4년전 아마도 나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던 모양이지만, 어쩐지 오늘은 그런 기억이 부분 소실된 것 같다. 하늘 혹은 노을공원 정상까지 힘겹게 오른 후 수 천개의 바늘 같은 칼바람을 맞으며 공원을 혼자 거닐었다. 고개를 숙인 억새들에 마음이 자연스레 동화되어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왜 떨어졌을까, 어떻게 해야하나 같은 고민따위도 없었다. 그저 무. 텅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서늘한 날씨 탓에 인적이 드문 공원의 사방이 붉은 노을로 가득 들어찼다. 밀회를 나누는 연인이 조용히 침실의 커튼을 내리는 것처럼 노을이 세상을 덮었다. 텅빈 내 마음도 노을에 물들기 시작했다. 바람이 억새들을 쓰다듬는 소리에서 마저 붉으스름한 미열이 느껴졌다. 약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내 이마에도 미열이 감돌았다. 나는 그 순간을 행여 망칠까봐 조심스레 벤치에 앉았다. 더 걸을 수도 없을만큼 지쳐 있기도 했다. 이상스레 발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노을에 휩싸인 도시가 자기 속의 불빛을 하나 둘 켜기 시작했다.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도 전등 스위치가 있어서 그것을 누르기만 하면 달칵 소리를 내며 불빛이 켜졌으면 하고 바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55번이나 그 스위치를 찾기 위해 캄캄한 벽을 더듬어 온 것이 아닌가 하고. 내 속 어딘가에는 반드시 그 스위치가 있다. 그러나 나의 내부가 너무 캄캄해서 찾지 못하는 것뿐이다. 라고. 하지만 노을이 들어찬 마음의 방에서도 그런 스위치는 보이지 않았다. 노을이 세계를 완벽하게 감싸 안자 세계는 캄캄해졌다. 거리는 일제히 낮 동안 감춰둔 저들의 불을 밝혔다. 밤 공기에 손이 시려왔다.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 것이다. 마지막 자소서를 쓰기로. 


  지금 나는 책상에 앉아 얼마 전에 3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입한 스탠드 -시크릿 가든에 등장한 천칭형 디자인의-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자소서를 쓸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번 자소서는 나의 결심에 의하면 마지막 자소서가 될 예정이다. 마지막 자소서답게 이전까지의 자소서와는 다른 형태로 써볼 예정이다. 뭐랄까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소서를 써보고 싶다는 욕구를 나는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었다. 아무런 목적 의식 없이 순정하게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그런 자소서 말이다. 오직 진실만을 100% 함유하고 있는 그런 자소서. 순정하게 나를 드러내서 면접관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들의 감동이나 입사 심사 시의 플러스 마이너스 요인에 대한 고려를 완전히 배제한 그런 자소서. 세상의 그 누구도 독자로 삼지 않는 -나 자신조차도- 쓰고 나면 그대로 증발해버려도 좋을, 오직 그것을 쓰고 있는 순간에만 나에게 무한한 용서와 정화의 기쁨을 안겨줄 그러한 자소서를 쓰고 싶은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써내려갈 자소서는 바로 그런 자소서이길 간절히 바란다. 


**


  귀사는 저에게 4페이지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대체 ‘자기'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라고 하는 것을 구성하는 것은 너무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것들 뿐입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자기라고 해야합니까, 아니면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까지 포함하는 것이 자기입니까. 혹은 내가 판단하고 정의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자기입니까, 혹은 타인이 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 자기입니까. 시간의 측면에서도 1세에서 7세까지의 영유아기를 포섭하는 것이 자기입니까 아니면 자기라고 하는 것은 성년이 된 이후부터의 특정한 시기를 기준으로 하는 저입니까.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은 채 ‘자기'를 소개하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고민과 사색을 요하는 것임을 먼저 전제하고 싶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4페이지라는 제한된 분량 내에 기술되어야 한다니요. 그렇지만 다행인 것은 분량 이외에 제한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명백하게 형식적으로 분량 이외에는 아무것도 제한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귀사가 형식상의 이유로 이 자소서를 쓰레기통에 버린다면 저는 취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불만을 늘어놓은 서론을 ‘충실하게' -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읽었음에도 저의 자기소개서를 계속 읽어내려가고 싶다면 제가 ‘두 번째 연인과 헤어지던 날’의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그날은 제가 지금 자소서를 쓰고 있는 2011년 12월 3일처럼 전국에 예비 강설주의보가 내려지고, 강원도 일부 산골에는 이미 함박눈이 푹푹 내리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때에도 한 대통령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촛불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연인과 저는 인사동에 위치한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그 후보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4시 즈음 찻집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러 광화문 근처에 있는 파스타 식당에 가려고 했습니다만 운집한 시위대에 길이 막혀 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나는 즉흥적으로 상암동에 있는 하늘공원 -혹은 노을공원- 에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연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반쯤 얼이 빠진 그를 데리고 저는 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날이 연인과의 마지막 날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계속 이어질 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연인은 상당히 짜임새 있게 이별할 계획을 세운 모양이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나 소개팅을 했던 광화문의 파스타 식당이야말로 최적의 이별장소라고 그는 판단했었던 것입니다. 그의 계획은 나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만 그는 그런 사소한 계획의 차질 정도로는 이별의 결심을 돌릴 의향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6호선 상암역에 내려 공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하늘은 노을로 물들기 전이었습니다. 연인은 걷는 내내 말이 없었습니다. 그는 원래 말이 적은 타입이었기에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를 때 그가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저는 깨닫고 말았습니다. 오늘이 그와의 마지막 날임을 말입니다. 차라리 그런 것을 깨닫지 않았다면 하는 가정을 지금도 해봅니다. 그랬다면 그 이별이 조금은 덜 아팠을까. 내가 기억해야할 상처의 시간들이 조금은 감소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모든 게 부질없는 상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시간을 돌이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으니까요. 초능력자라는 게 고작 숟가락을 구부릴 정도의 능력밖에 가지지 못한 인간이란 종은 참으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계단의 한 단 한 단 위에 수많은 가시가 돋아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 딛을 때마다 견고한 하이힐의 밑창을 뚫고 가시들이 박혀오는 듯했습니다. 맞잡은 그의 손에서 퍼져나오는 온기가 제 몸에 퍼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게 마지막이라니. 이 모든 게 마지막이라니. 


  그와는 3년을 만났습니다. 1년이 되던 해에 육체적인 사랑도 나누었습니다. 그 이후에 자잘한 성향의 차이로 몇 번 헤어질 고비를 넘으며 우리는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었고, 거의 모든 일상을 공유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저에게는 자연이었습니다. 내 속에는 그의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자라나 나무가 되어 무성한 잎을 피웠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잎들이 제 속에서 팔랑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제 속에 뿌리 내린 그 나무는 아무도 베어갈 수 없었어요. 제 손으로 베기 이전에는. 


  그는 계속 말이 없었습니다. 확신했어요. 그가 말을 여는 순간, 모든 게 끝이라고. 그가 말을 하기 이전에 그의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모호했습니다. 대체 그의 무엇을 바꾸어야 그가 내뱉을 문장의 토씨 하나라도 고칠 수 있을까. 혼란에 빠져있을 틈조차 없었습니다. 그의 내부에서는 계속 미리 정해둔 어떤 말들이 문장들이 교체를 기다리는 국가대표선수처럼 워밍업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나는 문득 그에게 하지 않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도 중요해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되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을 발설하고 나면 더 이상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그 이야기를 말하기 전의 나와는 영영 결별해야 하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상대도 분명 그 이야기를 말하기 전의 나와 그 후의 나를 구별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였기에 끝끝내 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망설였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 순간마저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아무 곳이나 잠깐 자리에 앉자고 입을 열었습니다. 하늘이 붉기 물들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뜨이는 아무 벤치에나 앉았습니다. 그가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러나 말을 시작한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습니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거 알아? 나는 아빠랑 말을 하지 않아. 이전에는 그 상대가 세상의 모든 남자였어. 아주 어린아이여도 상대가 남자아이면 말을 붙이기 어려웠어. 나는 아빠를 아주 잘 따르는 딸이었어. 세상의 대부분의 아빠들처럼 우리 아빠도 나를 끔찍하게 귀여워해줬지.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큰 탈 없이 자랐어.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던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었어. 항상 문제는 1997년이지. IMF를 우리 집도 피해갈 수는 없었어. 아빠도 엄마도 모조리 실직해버렸어. 거짓말처럼. 아빠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따라 퇴직금을 몽땅 유망한 기업 주식에 투자했는데, 얼마 안가 투자한 기업이 부도를 내버렸어. 엄마의 퇴직금으로 우리 가족은 생계를 유지했어. 아빠는 술에 만취해 들어오기 시작했지. 어느날부터 술에 취하지 않은 아빠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어.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어.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와서 평소처럼 나를 불렀어. 엄마가 아빠를 이해해야한다며 다정하게 대해주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 당시 나는 사춘기였어. 아빠가 술취한 목소리로 날 부르는 것만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날 지경이었어. 하지만 꾹 참고 아빠 앞에 나섰어. 아빠가 나를 끌어안았어.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구역질이 났지. 아빠가 내 볼에 뽀뽀를 하려고 입술을 갔다 댔어. 나는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질렀어. 징그러워 구역질 나. 라고. 그 말이 모든 것을 바꿔 놨어. 아빠는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어. 그리고 내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어. 다시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일으켜 세워서는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지.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끝없이. 끝없이 맞았어. 이제 끝이겠지 생각하고 정신을 차리면 여전히 아빠가 나를 때리고 있었어. 차라리 그대로 죽고 싶었어. 아무리 정신을 차려보아도 아빠의 폭행은 멈추지 않았고, 겨우 손길이 멈추었나 싶어 눈을 떠보니 눈 앞에서 엄마가 맞고 있었어. 엄마… 라고 말했던 것 같아. 눈가에 눈물이 났던 것도 같아. 아주 짧은 순간이었어. 다시 아빠의 발길질이 시작됐어. 정신을 잃어간다기보다는 육체의 에너지가 바닥이 나기 시작했을 즈음 희미하게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어. 웅성 거리는 소리. 비명을 지르는 소리. 거칠게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들. 아빠가 계속 나를 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어.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어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어.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실이었고 곁에서 아빠가 일그러진 얼굴로 울고 있었어. 엄마는 아빠와 이혼을 했어. 나에 대한 양육권을 두고 법적인 다툼이 일었어. 나의 의견도 반영됐어야 했어. 내가 누구를 선택했을 것 같아. 나는 아빠를 선택했어. 아빠는 도저히 나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것 같아. 하지만 이후로 다시는 아빠와 대화를 하지 않았어. 


연인은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심으로 그가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나의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은 앞으로도 영영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의 무엇을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또박또박 말을 했습니다.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헤어져야 한다고요. 나는 더는 그의 무언가를 바꾸어 놓을 만한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나를 표현할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별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니, 이별을 받아들였다기 보다는 그의 떠남을 묵인했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사이로 새어들던 그날의 노을빛만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귀사는 저에게 4페이지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자기소개서입니다. 감사합니다. 




2011. 12. 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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