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소설/짧은 소설

강아지를 부탁해

멀고느린구름 2011. 12. 12. 13:01


강아지를 부탁해



“애 과외비가 얼만지나 알아! 집안 살림을 좀 하든지! 나가서 일을 찾아보든지!! 이제 아주 지긋지긋해!!!”

지긋지긋한 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아빠는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시 라이터를 가지러 들어온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이에게

“아빠 라이터 못 봤냐?”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이의 아빠는 다시 나갔다. 아이의 엄마는 그 하는 양을 사납게 지켜본다. 아이에게도 아이가 사는 집에게도 이제는 익숙한 풍경. 아이의 아빠가 실직을 한 것은 1년 전이었다. 지금은 보험회사를 다니는 아이의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만 세 식구가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초등학교 방학이 되어 엄마가 출근을 하면 아이는 집에 혼자 남았다. 아빠는 엄마가 출근한 뒤에 곧바로 나가서는 저녁 늦게야 돌아왔다. 아빠는 살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건 자기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나. 아무튼 아이는 집에 혼자 남았다. 과외선생님이 오는 1시까지는 아이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아이는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아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놀이터가 한 곳 있었다. 1년 전에 끊어지는 그네 두 개와, 녹이 슬어 움직이지 않는 시소가 있는 놀이터였다. 지금은 그나마 주차장으로 쓰고 있지만. 

아이는 1시가 되면 중학교 입학을 위한 수학 과외를, 3시부터는 영어 과외를 받았다. 5시가 되면 논술학원에 가야했다. 학원은 7시에 끝났는데, 그 시간에 집에 돌아와도 아이를 맞이하는 건 어둠이었다. 아이는 불을 켜고, 냉장고에서 몇 가지 반찬을 꺼내 밥을 먹었다. 아이가 밥을 먹고 나면 아빠가 돌아와서는 설거지를 했다. 마치 자신이 아이의 밥을 차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그 뒤에 엄마가 돌아온다. 그러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위와 같은 풍경이 구간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절대 울지 않았다. 



하루는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아이는 스타크래프트를 할 수 없었다. 아빠가 집을 나선 시간은 9시. 1시까지 무려 4시간이나 남은 것이었다. 아이는 티비를 켰다. 재미없다. 아이는 문든 창 밖을 보았다. 하늘이 환했다. 나가볼까. 아이는 신을 신고 집을 나섰다. 우선 놀이터로 갔다. 차가 두 대나 주차되어 있어, 귀퉁이에서 하던 흙장난도 하기 어려웠다. 아이는 아파트를 비잉빙 맴돌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제자리에서 돌기도 했다. 어지럽다. 어지럽다. 쿵하고 넘어지며 아이는 까만색 차에 부딪혔다. 삐요옹 삐요옹~.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달려왔다. 아이는 크게 혼이 났다. 아이는 시무룩한 듯 입을 빼죽 내밀고 집을 향해 걸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아직 고작 10시였다. 

문득 아이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달동네. 아파트 뒤편의 천마산 자락에는 달동네라는 곳이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그곳은 절대 가지 말라고 일러두곤 했던 것이다. 아이는 괜한 심통이 나 엄마의 마을 어기기로 하였다. 아이의 발걸음은 타박타박 달동네께로 이어졌다. 

달동네는 조용했다. 아파트도 조용했지만 조금 다른 조용함이다.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비탈을 계속 올랐다. 집집의 옥상에서 빨래들이 펄럭거리는 소리만이 공기를 흔들었다. 얼마쯤 올라가자 비탈이 끝나고 대문이 반쯤 열린 집이 하나 있었다. 아이는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까. 아이는 살금살금 집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집의 벽면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귀신이 사는 곳인가. 아이는 갑자기 바람이 차진 듯해 발길을 돌렸다. 다시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깨갱!”

아이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조그만 까망 강아지의 앞발이 아이의 발 아래에 깔려 있었다. 아이는 황급히 발을 떼었다. 강아지는 아이가 돌아나온 곳으로 황급히 달아났다. 앞발만을 사용해서. 강아지의 뒷발은 양탄자마냥 납작했다. 아이는 오르르 돋는 소름을 느끼며 아파트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도 아빠와 엄마의 정기전이 있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차라리 다 죽자고 했다. 아이는 생각했다. 나는 죽기 싫어 엄마.



다음 날, 집을 나서는 아빠에게 아이가 물었다. 

“아빠, 뒷다리가 양탄자 같은 강아지도 있어? 페르시안 강아진가?”

아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딴 게 어딨냐.”

아빠의 혼탁한 눈이 아이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다. 아빠는 구두끈과 얘기했다. 

“있어.”
“없어.”
“있어 있어 봤어.”
“그래 많이 봐라 그럼.”
“진짜?”
“아빠 간다. 밥 챙겨 먹고.”
“진짜지?”

아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아이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다 이내 문을 박차고 나서는 것이었다. 아이는 유쾌하고 조심스런 걸음으로 달동네의 그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집 문 앞에서 문을 살짝 열어 집 안을 살폈다. 

“꼬마야, 뭐하냐 거서.”

아이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아무리 빨아도 빠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검은 얼룩이 여기저기 진 옷을 입은 아저씨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다. 

“누구냐, 넌? 처음 보는 애네. 어서 왔어?”

아이는 손가락으로 아파트 쪽을 가리켰다. 아저씨의 눈길이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가며 차츰 식어간다. 아저씨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집에 가라. 좋은 집 놔두고 이런 덴 뭐하러 와. 어여 가. 어여 가. 거는 귀신 나오는 집야.”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가던 길을 갔다. 그럼 어제 강아지도! 아이는 다시 집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아가야지. 아이는 비탈길을 패잔병처럼 걸어 내려갔다. 그때 아래쪽에서 웬 까만 털 뭉치가 슥슥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 강아지다. 강아지는 아이를 처음 본다는 양, 아이를 지나쳐 귀신이 산다는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무엇에 홀린 듯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가 서 있던 곳 오른 편 집에서 나온 할머니 한 분도 강아지를 쳐다보았다. 

“쯧쯧쯧쯧. 불쌍한 것. 지 주인들 다 불 타 죽고. 저도 차에 치여 갖고서는... 그래도 지 집이라고 저러네. 가여운 것 같으니.”
“차에 치여요?”
“아, 왜 몇 달 전에 저 혼자 아파트까지 내려갔다가 트럭에 뒷다리가 깔리는 바람에 저래 안 됐냐. 쯧쯧쯧쯧. 근데 넌 늬집 애냐아?”

아이는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있다. 사탕이었다. 두 개가 있었다. 아이는 사탕 하나를 할머니에게 건네고는 그 집 앞으로 달음질이었다. 할머니가 아가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아이는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없다.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집 안까지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아이는 사탕 껍질을 벗겨 문 앞에 놓아두었다. 비탈길을 내려가는 아이의 마음이 사탕의 무게만큼 가벼웠다.



이튿날 아이는 아파서 그 집 앞으로 가지 못했다. 아이는 강아지가 사탕을 먹었을까 무척 궁금했다. 아이는 만약 강아지가 사탕을 안 먹었으면, 이번에는 수박을 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빨리 낫고 싶었다. 아빠는 아이가 아픈 탓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아이를 간호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는 아이 대신 스타크래프트를, 아니 맞고를 했다. 아이는 오후가 되도록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엄마가 돌아와 아이의 이마를 짚었다.

“병원에선 뭐래?”
“병원?”
“병원 안 갔어?”
“돈이 있어야 가지이.”
“나가 죽어 그냥!!”
“뭐어?”
“아니, 애가 이렇게 아픈데 아빠가 돼서 그런 말이 나와? 나오냐!”
“이게 진짜. 그럼 니가 살림 쳐하면 되잖아!”
“그럼 니가 가서 돈 쳐벌어와!”
“그래 아주 죽자. 니 말대로 다 죽자 그냥!!”

아빠는 리모컨을 집어 던지고는 집을 나갔다. 엄마는 울었다. 아이는 생각했다. 나는 죽기 싫어 아빠.



엄마가 밤새 간호한 덕에 아이는 몸이 좀 나았다. 엄마는 아이가 나은 걸 확인하고 아침을 차려 놓은 뒤 지친 표정으로 출근했다. 아빠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엄마가 나간 걸 확인하고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수박이. 없다. 아이가 누워 있는 사이에 다 먹어버린 게다. 아이는 울상을 지었다. 아이는 하는 수 없이 사탕봉지를 쥐어 들었다.

아이는 달동네 비탈길을 오르며 주문을 외웠다. 사탕 먹어라 얍, 사탕 먹었다 얍, 사탕 먹었지 얍, 사탕 안 먹니 얍얍. 아이는 살그머니 문을 열었다. 사탕을 놓아두었던 자리를 확인했다. 없다. 만세! 아이는 싱글벙글 웃었다. 그러나 너무 기뻐하고 있을 때만은 아니다. 아이는 침착하게 가져온 사탕봉지에서 사탕을 꺼내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고는 쪼그려 앉아 바닥에 놓아두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늘은 아무도 아이를 부르지 않는다. 아이는 자기가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그저 하나하나 사탕을 꺼칠한 돌바닥 위에 수놓을 뿐. 가져온 사탕을 모두 까서 바닥에 놓은 아이는 일어서 사탕의 배치를 살폈다. 제법 괜찮은 구도다 싶었다. 아이는 흐뭇한 마음을 바람결에 하늘하늘 풀어내며 아파트로 돌아왔다. 어제의 아픔이 꿈이었던 것 같았다. 

아빠는 밤이 되자 술에 잔뜩 취해 돌아왔다. 아이의 얼굴에 뽀뽀를 하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아빠가 취한 게 틀림없구나 싶었다.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기 위해 취한다. 아이가 아빠를 떼어내려 하자 아빠는 아이의 뺨을 때렸다. 그것 봐. 아이는 눈을 감아버렸다.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미쳤어! 아주 미쳤구나 이제! 아빠의 목소리. 이 씨발년! 아이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이 들고 싶었다. 꿈속에서도 아이는 되뇌었다. 나는 죽기 싫어.


아이가 잠에서 깨니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조금 슬퍼졌으나, 이내 그 집 앞에 두고 온 사탕들이 떠올라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뺨이 좀 얼얼했지만 견딜만했다. 아이는 비탈길을 뛰어 올랐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힘을 주어 뛰었다. 이전의 그 아저씨가 빗자루를 휘둘러 대고 있었다. 강아지가 힘겹게 이리저리 피하며 짖어댔다. 피를 토할 듯이 도와줘요 도와줘요 하고. 아이는 있는 힘껏 달렸다. 잽싸게 강아지를 주워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가버렸다. 어릴 적에 다닌 태권도 도장의 효과가 나타난 걸까. 아이의 가슴이 쿵쿵쿵 뛰었다. 

“야, 꼬마. 너 뭐야! 개새끼 들고 이리 안 나와! 야, 그 개새끼 어차피 죽을 꺼 사람 좀 이롭게 하고 죽어야지 임마. 너 이거 진짜 안 열어! 들어간다! 셋 셀 동안 안 나오면 들어간다! 하나! 둘!! 셋!!! 에이 씨발. 몸보신 좀 할라 그랬더니 퉤.”

밖이 이내 조용해졌다. 아이는 아저씨가 들어오지 못 할 거라고 예상했다. 어른들은 다 이 집을 무서워했다. 죽은 자들의 집이니까. 아이는 어른들은 모두 죽지 않으려고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죽음이 무서워서 죽음을 피하려고 한다. 죽는 게 무서우니까 자꾸만 죽어야지 죽어야지,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 죽음과 겉으로라도 친해지려고 애쓴다. 엄마도 아빠도 정기적인 죽자 행사를 치르지만 절대 죽지 않는다. 아이는 알고 있었다. 죽음은 아무 말이 없는 거다. 작년에 죽은 아이의 할아버지처럼. 

아이의 가슴이 따끈따끈 달아올랐다. 강아지가 물끄러미 아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강아지는 끙끙대며 울지도, 사납게 짖지도 않았다. 맑은 눈으로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아이는 문 앞바닥을 확인했다. 없다. 아이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탕 좋아하는 구나. 헤헤.”

아이는 강아지를 처음 안아보는 것이었다. 포근하고 따스해서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강아지가 아이의 손을 핥았다. 고맙다는 듯이. 아이는 손이 너무 간지러워 강아지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강아지는 뒷다리를 끌며 집 뒤쪽으로 뛰어갔다. 아이는 강아지를 따라 갔다. 희미하게 낑낑낑 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이는 깜짝 놀랐다. 집 뒤쪽에 다람쥐만한 아기강아지들 다섯 마리가 강아지의 젖을 먹고 있었다. 

“엄마였구나 멍멍아.”

강아지는 멍! 하고 한 번 짖었다. 아이의 말이 맞다는 것처럼. 아이는 제 손바닥 크기만 한 아기강아지들을 눈을 반짝거리며 바라보았다. 아기강아지들의 까만 털 위로 햇빛이 조르르조르르 미끄러지고 있었다. 아이는 꿈의 나라에 온 것만 같았다. 강아지에게 남은 사탕을 주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또 그 아저씨가 그러면 어쩌지... 그 집이 있는 한 괜찮을 거야. 아이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논술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와 아빠가 웬일로 먼저 와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아빠와 이혼이라는 걸 하니까, 누굴 따라갈 건지 선택하라고 했다. 이사는 내일 모레 아침에 하니까 엄마를 따라갈 건지, 아빠랑 남을 건지 내일 저녁까지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생각했다. 참 민주적인 엄마 아빠구나. 



뒷날, 엄마는 출근했고, 아빠는 외출했다. 초라한 마지막 하루. 아이는 그래도 제법 의젓하게 엄마와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편지지에 담고 바지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아이는 저녁에 부모님이 오면 앞에서 읽어 주리라 생각했다. 아이는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오늘도 수박은 없다. 아이는 저금통을 깨서 수박을 샀다. 주인아저씨에게 강아지가 먹기 좋게 잘라달라고 했더니 무척 투덜거렸다. 그래도 잘라주었으니 고마운 일이라고 아이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수박조각을 검은 봉지에 담아 들고 비탈길을 올랐다. 수박이 조금 무거워 평소보다 땀이 많이 났다. 비탈길을 반쯤 올랐을 즈음 달동네로부터 요란한 소리가 쾅쾅하고 들려왔다. 아이는 불길한 느낌이 들어 걸음을 빨리했다. 아... 아.. 아! 아이는 온 몸에 힘이 풀썩하고 빠져 버렸다. 포크레인들이 강아지의 집을 부수고 있었다. 전에 보았던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할머니 강아지는요? 네? 강아지는요오?”
“그거는 아까 지 새끼 하나 물고 저어기 산으로 도망 가드라.”
“하나요? 새끼 하나만? 나머진요 그럼?”
“아, 누가 저기 지 새끼까지 있을 줄 알았냐?”

아이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 도망간 그거도 아까 그 김씨가 보신할 거라고 있다가, 아까 막 쫓아 가드라. 니가 그거 뎄고 살라믄 니 빨리 따라 가봐라.”

아이는 뛰었다. 천마산은 넓고 깊은 산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뛰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밀려와 어둠을 만들었다. 아이는 캄캄한 숲 속을 뒤지고 또 뒤졌다. 얼마나 뒤졌을까. 숲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둠에 잠겼다. 아이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이의 젖은 몸으로 찬 기운과 어둠이 더금더금 달라붙었다. 낑낑낑. 아이의 귀가 쫑긋 섰다. 아이는 소리가 나는 곳의 수풀을 헤쳤다. 낑낑낑끼잉. 아기강아지였다. 그리고 강아지가 있었다. 아기강아지가 누워 있는 강아지의 몸을 계속 핥았다. 그러나 강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맞은 아기강아지가 깜짝 놀라 더 소리 높여 울었다. 아이는 옷을 벗어 아기강아지를 감싼 뒤 품에 안았다. 울지마 울지마 괜찮아 그러면서 아이는 울었다. 아이는 비닐봉지에서 수박을 꺼내 아기강아지 입 앞에 대어주었다. 아기강아지는 할짝할짝 수박을 핥아먹었다. 어느 새 어둠은 아이의 앞에 놓인 모든 길을 지웠다. 비는 아이의 체온을 한 도 한 도 낮췄다. 그럴수록 아이는 아기강아지를 꼬옥 품에 안는 것이었다. 비는 밤새 내렸다. 



날이 밝자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아이가 갔다는 천마산을 뒤지고 또 뒤졌다. 네 시간쯤 산길을 헤맸을까. 아이의 아빠의 귀에 웬 강아지가 낑낑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아빠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이의 아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조그만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풀 위에 누운 아이를 핥고 있었다. 아이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아이의 장례식 전 아이의 바지에서 비에 흠뻑 젖은 편지가 발견되었다. 물에 번져 내용을 잘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한 구절은 명확했다.

'강아지를 부탁해.'


2005. 6/19, 장명진.

'소설 > 짧은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에서 2  (0) 2011.12.23
달에서 1  (0) 2011.12.22
4페이지 분량의 마지막 자기소개서  (0) 2011.12.03
우주 어딘가에 또 한 마리의 토끼가  (0) 2011.11.10
어느날 두 개의 벤치가  (0) 2011.10.16
Comments
최근에 올라온 글